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하자 미국은 감사의 표시로 1000만달러의 원조를 약속했고 이는 한국 정부의 출연금과 함께 대한민국 공업발전을 위한 종합연구소 설립자금으로 쓰였다. 이듬해 서울 홍릉에 만들어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보릿고개 시대에도 해외유학을 한 박사들을 적극 모집하고 파격적인 보수와 함께 당시 없던 의료보험까지 제공하며 최고의 연구환경을 만들었다.
1982년 전길남 박사는 전자기술연구소에서 '시스템 개발 네트워크'(SDN) 프로젝트를 진행해 시스템과 인터넷 전용망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구축한 국가가 되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이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전 박사는 제자양성에 힘써 국내 정보기술업계의 선두주자들을 배출했다. 휴먼컴퓨터 정철 박사, 아이넷 허진호 박사, 넥슨 김정주,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전 박사 연구실 출신이다.
1996년 이용태 박사는 두루넷을 설립해 한국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섰다. 두루넷이 당시 한국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터넷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인재와 자금이 기술벤처로 이동하면서 신기술 창업이 급성장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등장은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코스닥을 통해 벤처기업들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양복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업문화가 형성됐다.
디지털 창업 1세대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가진 스타트업 생태계는 과거 디지털 창업 1세대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디지털 창업가들이 멘토링, 교육 등을 통해 젊은 AI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사업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면서 잠재적 창업가들이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 국내외 기업간 협력을 이끌어내고 정부기관과 연계를 통해 정책개선을 이뤘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 우리의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 디지털 창업 1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