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디지털 창업 1세대의 기업가정신

머니투데이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2024.06.14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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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AI(인공지능)가 우리 생활방식을 빠르게 변화시키고 있다. AI는 의료, 금융, 제조 등 다양한 산업분야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데 이를 이끄는 핵심동력은 바로 AI 스타트업들이다. AI 스타트업은 기존 기업들보다 빠르고 유연하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굴하고 실험하며 독창적인 AI 솔루션을 개발해 시장에 선보인다. 이런 AI시대의 기업가정신은 어디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을까.

1965년 한국이 베트남전 파병을 결정하자 미국은 감사의 표시로 1000만달러의 원조를 약속했고 이는 한국 정부의 출연금과 함께 대한민국 공업발전을 위한 종합연구소 설립자금으로 쓰였다. 이듬해 서울 홍릉에 만들어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보릿고개 시대에도 해외유학을 한 박사들을 적극 모집하고 파격적인 보수와 함께 당시 없던 의료보험까지 제공하며 최고의 연구환경을 만들었다.



이때 삼보컴퓨터 창업자 이용태 박사도 KIST에서 일을 시작했다. 마이크로프로세서의 잠재력을 알고 있던 이용태 박사는 KIST 안에 전자계산기 국산화 연구실을 설립하고 한국 인터넷의 아버지로 불리는 전길남 박사를 스카우트했다. 하지만 정부를 설득해 마이크로컴퓨터 개발을 추진하려는 그의 열정은 공무원들의 느린 의사결정 과정에 부딪쳤다. 1981년 이용태 박사는 서울 청계천에서 한국 최초 상용 개인용 컴퓨터 SE8001을 제조했다.

1982년 전길남 박사는 전자기술연구소에서 '시스템 개발 네트워크'(SDN) 프로젝트를 진행해 시스템과 인터넷 전용망을 자체적으로 개발했다. 이는 한국이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구축한 국가가 되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이후 KAIST 전산학과 교수로 자리를 옮긴 전 박사는 제자양성에 힘써 국내 정보기술업계의 선두주자들을 배출했다. 휴먼컴퓨터 정철 박사, 아이넷 허진호 박사, 넥슨 김정주, '바람의 나라' '리니지' 개발자 송재경 등 쟁쟁한 인물들이 전 박사 연구실 출신이다.



이용태 박사는 오명 체신부 차관의 제안으로 데이콤 초대 사장을 맡았다. 그는 전자정부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행정전산망 사업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대학에도 PC와 모뎀이 마련되면서 대학교 연구실이나 동아리에서는 남들이 쓸 수 없었던 전산장비를 활용해 얻은 기술지식을 사업화하는 움직임이 일어났다. 이는 대학원생, 대학생 신분에도 불구하고 영리목적의 창업을 하는 데 허들이 낮았고 동시에 실패에 대한 두려움(fear of failure)이 매우 낮게 관리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디지털 창업가 배출의 산파 역할을 했다.

1996년 이용태 박사는 두루넷을 설립해 한국 초고속 인터넷 시대를 여는 데 앞장섰다. 두루넷이 당시 한국에서 가장 빠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인터넷 이용자 수가 급증했다. 1997년 외환위기는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동시에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냈다. 외환위기를 계기로 인재와 자금이 기술벤처로 이동하면서 신기술 창업이 급성장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등장은 벤처기업의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만들었다. 코스닥을 통해 벤처기업들은 필요한 자금을 확보하며 빠르게 성장했고 이 과정에서 양복에서 벗어난 새로운 기업문화가 형성됐다.

디지털 창업 1세대의 역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지금 우리가 가진 스타트업 생태계는 과거 디지털 창업 1세대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디지털 창업가들이 멘토링, 교육 등을 통해 젊은 AI 스타트업 창업가들에게 사업 노하우와 경험을 전수하면서 잠재적 창업가들이 꿈을 키울 수 있었다. 그뿐 아니라 네트워킹을 통해 국내외 기업간 협력을 이끌어내고 정부기관과 연계를 통해 정책개선을 이뤘다. 오늘의 우리는 어제 우리의 경험에 영향을 받는다. 디지털 창업 1세대의 경험과 지혜를 발굴하고 활용하는 것은 한국 경제의 발전과 미래를 위한 중요한 과제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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