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한채 물려받았는데…"내가 부자?" 상속세 공포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세종=박광범 기자, 세종=유재희 기자 2024.06.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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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중산층 사다리' 걷어차는 상속세(上)

편집자주 1950년 제정된 상속세법은 숱한 개정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세금이다.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세금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속세 대상이 중산층으로 넘어오고 있다. 1997년 이후 상속세 공제액을 조정하지 않은 결과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에게 상속세는 재앙이다. 어렵게 형성된 중산층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상속세를 알아본다.

'중산층 사다리' 걷어차는 세금…서울에선 7명 중 1명 상속세 냈다
상속세 과세자 비율 추이/그래픽=김지영상속세 과세자 비율 추이/그래픽=김지영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으로 바뀌고 있다. 물가와 자산 가치는 치솟았는데 상속세 과세기준은 요지부동이다. 그만큼 상속세 대상자가 늘었다. 어렵게 자산을 형성해 중산층에 진입한 서민들 입장에선 상속세가 공포로 다가온다. 혹은 중산층으로 올라설 사다리를 걷어차는 도구로 전락했다.

12일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속세 과세자(이하 결정인원)는 1만5760명이다. 과세자와 과세미달자를 분모(34만8159명)에, 과세자를 분자에 뒀을 때 과세비율은 4.53%다. 해당 비율은 2005년 0.8%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2년에도 2.16% 수준이었다. 기울기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국세청은 이번달 중하순 경에 지난해 상속세 결정현황을 발표한다. 최근 추세로 봤을 때 과세비율은 5~6%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집값이 다소 주춤했지만 상속세가 6개월의 신고기한, 이후 9개월의 최종 결정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비율도 2022년 집값 상승분을 반영할 전망이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부분 회원국의 상속세 과세비율은 1%대 미만"이라며 "4~5%대의 과세비율을 두고 아직 부자 세금이라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국가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공제 제도/그래픽=김지영상속세 공제 제도/그래픽=김지영
집값 상승률이 두드러진 서울로 지역을 한정하면 상속세 과세비율은 두자릿수를 훌쩍 넘는다. 2022년 서울의 상속세 과세대상자 4만3734명 중에서 과세자는 6106명(13.96%)이다. 7명 중 1명 꼴이다. 2012년 4.77%였던 서울의 상속세 과세비율은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중산층 세금이 돼 버린 상속세…27년째 제자리인 상속세 공제 탓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채무를 뺀 재산에 대해 유가족이 납부하는 세금이다. 물려 받은 재산이 각종 공제액 이상이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대표적인 공제로는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가 있다. 통상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 때는 10억원, 자녀만 있을 때는 5억원을 상속세 과세기준으로 본다.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는 1996년 말 상속세 전부개정 때 도입해 이듬해부터 적용했다. 이후 공제액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당시 5억원의 가치는 지금과 다르다. 당시 집값 기준으로는 서울 강남의 50~60평대 아파트 가격이다. 집값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물가상승률로도 지금 8억원 이상의 가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상속세 사정권에 들어온 1주택자가 많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773만원이다. 상속세는 공시가격를 기준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시가를 따진다. 별도의 채무가 없다면 서울 1주택자는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

현행 상속세 기준/그래픽=김지영현행 상속세 기준/그래픽=김지영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에게 의뢰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홀어머니를 여읜 A씨가 물려 받은 13억5000만원의 서울 길음동 아파트 상속세는 1억8624만원이다. A씨 어머니의 채무가 없다는 전제에서다. 어머니와 같이 살던 A씨 입장에선 날벼락이다.

상속세는 또 다른 '부자 세금'인 종부세와도 엇박자를 낸다.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액은 12억원(공시가격)이다. 공시가격이 대략 시가의 70% 정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상속세 대상자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 1주택자에 한해 상속세 공제액을 종부세와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른나라 국민들보다 자식에 대한 상속 동기가 아주 강한데 상속세는 이를 부의 세습이라고 잘못 규정하고 높은 세율을 부과한다"며 "상속세가 중산층의 세금이 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세제인 한국의 상속세

상속세를 강화해 온 한국과 달리 주요 국가들은 상속세를 완화하는 추세다. 38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호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14개국이다. 한국처럼 유산세(사망자 기준) 방식의 상속세를 운영하는 4개국 중에서 한국을 뺀 나머지 국가는 배우자공제를 모두 면제한다.

OECD 국가들의 상속세 과세 방식/그래픽=김지영OECD 국가들의 상속세 과세 방식/그래픽=김지영
전반적인 공제액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상속세 공제액은 1361만달러(약 188억원)다. 이른바 '슈퍼리치'를 제외하고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상위 20%라고 할 수 있는 소득5분위의 순자산이 2012년 6억2822만원에서 2022년 10억2723만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상속세 공제는 27년 전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유산취득세(유가족 기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자 감세'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상속세 일괄공제를 1억~2억원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 과세기준은 소비자물가와 연계해서 올려야 한다"며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에 더해 배우자 상속에는 세금을 물리지 말고, 1주택자가 상속 받고 그 상속인이 그 집에서 거주한다면 상속 공제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강북 집 한 채만 받아도 '2억 상속세'…"급매로 팔아 세금 낼 판"
유일한 상속 재산이 서울 아파트 1채일 때 예상 상속세/그래픽=김현정유일한 상속 재산이 서울 아파트 1채일 때 예상 상속세/그래픽=김현정
#최근 어머니를 여읜 40대 직장인 A씨는 세무 상담을 받고 깜짝 놀랐다. 다른 재산 없이 아파트 한 채만 물려받았는데 상속세로 2억원에 가까운 돈을 납부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어머니가 2015년 청약해 분양받은 서울 성북구 길음동 아파트 가격(13억5000만원)이 분양가(약 5억4000만원)보다 2배 이상 뛴 영향이다.

이 아파트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할 생각이었던 A씨의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당장 2억원에 가까운 세금을 낼 현금을 마련하려면 대출을 받거나 집을 팔아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부자들의 세금'으로만 여겨졌던 상속세가 중산·서민층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몇 년 새 집값이 급등하면서 웬만한 서울 아파트 한 채 가격이 10억원을 훌쩍 넘은 탓이다. 반면 상속세 공제액은 27년째 요지부동인 까닭에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는 고령층 거의 대부분은 상속세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12일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에게 의뢰해 A씨 사례를 시뮬레이션(다른 금융재산 및 부채는 없다고 가정)한 결과 A씨가 내야 할 상속세는 1억8624만원이다.

상속재산가액에서 장례비용 공제(1000만원)를 받아 산정된 13억4000만원에서 자녀일괄공제(5억원)가 적용된 과세표준(8억4000만원)에 대한 상속세(신고세액공제 3% 적용)다.

아버지가 살아계셔 배우자 상속공제(5억원)를 추가로 받으면 5626만원의 상속세를 내면 되지만 A씨는 이 경우에 해당하지 않았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집을 파는 것도 쉽지 않다. 급매로 헐값에 팔아야 할 수도 있고 그에 따른 양도소득세도 추가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상속세가 '징벌적 과세'가 될 수밖에 없다.

내로라하는 자산가들만 내던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으로 변질된 건 아파트를 중심으로 자산가격이 급격히 오른 결과다. 그동안 중산층은 상속세를 걱정할 필요가 크지 않았다. 일괄공제(5억원)에 배우자상속공제(5억원)를 감안하면 사실상 10억원 넘는 순자산을 자식들에 물려줄 수 있는 집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집값이 크게 오르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773만원으로 12억원에 육박한다. 통계를 처음 작성한 2009년 5월(5억2104만원)의 2배 이상으로 집값이 뛰었다.

평균적인 서울 아파트 한채를 물려받을 경우 자녀가 내야 하는 상속세는 약 1억4193만원이다. 만일 사망자의 배우자가 살아있다면 배우자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약 2664만원의 상속세는 피할 수 없다. 이마저도 다른 현금이나 금융자산 없이 말그대로 아파트 한채만 물려받았을 때 얘기다.

상속세 과세표준 및 세율/그래픽=윤선정상속세 과세표준 및 세율/그래픽=윤선정
우리나라의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 재산을 모두 합산해 과세한다. 현행 상속세율은 10~50%로 5단계의 누진 구조를 갖고 있다. 과세표준 구간별 상속세율은 △1억원 이하 10% △1억원 초과~5억원 이하 20% △5억원 초과10억원 이하 30% △10억원 초과~30억원 이하 40% △30억원 초과 50%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의 최고 상속세율 평균은 약 25%(상속세 운영 국가 기준)로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이다.

특히 상속세에서 아파트 가격은 '시가'로 평가한다. 피상속인 사망일 전후 6개월간 유사한 아파트의 실거래가(유사매매사례가액)로 평가하거나 감정평가 기준으로 시가를 계산한다. '공시지가'로 따지는 종합부동산세와 차이가 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같이 살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집 한 채 물려받았다고 상속세를 내게 하는 건 국가가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같이 살던 집에서도 내쫓는 것'과 같다"며 "상속세는 설계 당시 상위 0.1% 내외의 슈퍼리치를 염두에 두고 만들었지만 지금은 자산가격이 너무 많이 올라 중산층 과세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이어 "적어도 서울 중산층이 살만한 아파트 한 채 값에 더해 어느정도의 금융·현금자산까지는 상속세 공제액을 상향하는 게 맞는 방향"이라고 밝혔다.

상속세를 걱정해야 하는 서울 중산층은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통계청 '2023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말 기준 전체 가구의 10.3%는 순자산이 10억원 이상이었다. 특히 서울 가구 평균 순자산은 6억5986만원으로 10년 전(3억6614만원)보다 3억원 가까이 증가했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는 소득세를 보완하는 세금"이라며 "현재 중산층은 소득세를 거의 다 내고 있기 때문에 중산층의 상속세 부담은 완화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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