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홀대가 곧 기업 경쟁력 약화"...총선 후 불안한 재계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4.06.21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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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스크의 시대, 기업의 생존법]⑤

편집자주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예상보다 길어지는 고물가·고금리, 중동 분쟁, 미국 대선 결과에 따른 불확실성 등으로 세계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4월 총선 이후 국내 정치 리스크도 커졌다. 이른바 '리스크의 시대'다. 굴지의 대기업들은 '비상 경영'을 선언하고 활로를 찾아 나섰다. 사업구조 개편, 희망퇴직 등 '마른 수건 쥐어짜기'로 위기 돌파에 나선 기업도 적지 않다. 우리 기업들이 우려하는 대내외 핵심 리스크를 살피고 돌파구를 모색해본다.

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


글로벌 경쟁이 날로 격화하는 가운데 우리 기업들이 외롭고도 불리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국, EU(유럽연합) 등 주요국이 자국 기업을 위해 막대한 지원을 쏟아붓는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빈약한 정부 지원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우리 기업 '홀대'가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머니투데이와 대한상공회의소의 '대내외 경영 리스크 인식 공동조사' 결과 기업들은 "정부의 규제는 강하고, 반대로 지원은 약하다"고 평가했다. 정부 지원에 대한 기업들의 낮은 평가가 마냥 주관적인 것은 아니다. 반도체 산업의 경우, SK하이닉스는 2019년에 경기도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투자를 발표했지만, 첫 팹 완공 시점은 8년 후인 2027년이다. 인허가 문제로 애를 먹으며 5년 가까이 겨우 땅 고르기를 하는데 그쳤다. 반면 미국의 마이크론은 공장 투자 발표부터 생산 시점까지 총 3년안에 마무리할 예정이다.



보조금으로 지원 항목을 바꿔봐도 사정은 비슷하다. 미국은 반도체지원법(칩스액트, CHIPS Act)으로 기업 투자액의 최대 15%를 보조금으로 지급하지만, 한국은 보조금이 없다. 세액 공제 역시 한국은 대기업의 경우 15%를 '장비'투자액에만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은 장비와 인프라 모두에 25%까지 공제를 한다.

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
반면 기업을 옥죄는 법안은 줄줄이 발의됐거나, 곧 발의가 예고돼 있다시피 하다.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이 대표적이다. 산업계는 노란봉투법이 산업 현장의 질서를 흔들고 노동경쟁력을 후퇴시킬 것이라고 반대해왔다. 노란봉투법은 21대 국회에서 한 차례 통과됐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무산됐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과 범야권인 조국혁신당까지 이 법안을 22대 국회에서 당론으로 두고 우선 추진하겠다고 했다. 노란봉투법은 원청 업체의 책임 범위를 하도급 노동자로까지 넓히고, 쟁의행위(파업)를 이유로 회사가 무분별하게 노조원에게 손해배상 청구하는 것을 막는 것을 골자로 한다.



법인세도 그 하나다. 민주당은 세수 확충을 위해 법인세 인상을 추진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윤석열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당초 25%에서 3%포인트(p) 인하하려했지만, 민주당의 반대로 1%p 인하하는데 그쳤다. 한국의 법인세 최고세율(24%)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인 21.2%(2019년 말 기준)보다 높다. 오는 11월 미국 대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법인세 최고세율을 21%에서 15%까지 낮춘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산업계가 간절히 원해 여야가 공감대를 이뤘어도 지난 국회 때 폐기돼 아까운 시간만 보내버린 법안도 적지 않다.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 AI기본법, 산업기술보호법 모두 22대 국회 때 입법 절차를 꼬박 도돌이표로 밟게 됐다. 그만큼 기업들의 시간도 허비된다.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경제 관련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점도 장애물이다. 디스플레이 산업은 2022년 1월 국회를 통과한 국가첨단전략산업 특별법에서 제외됐다가 10개월 후인 11월 다시 국가첨단전략산업에 포함됐다.

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
전문가들은 정치권이 경제계와 한 뜻으로 기업 활동에 힘을 불어넣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상헌 대한상의 규제혁신팀장은 "지속되는 저성장을 타개하기 위해선 기업이 의욕을 갖고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는 "우리나라 기업은 글로벌 경쟁에서 다른 기업들과 싸워 이겨야 하는데, (정치 규제가) 글로벌 기준과 추세에 어긋난 게 너무 많다"며 "여야 정권에 따라 이념이 섞인 결정은 내려놓고, 국가 경제를 위해 힘을 합칠 때"라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수도권의 한 경영학과 교수는 "냉정히 말해 우리 경제환경이 기업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할 수는 없다"며 "보조금이나 노조 문제, 높은 세율 등 최우선 과제를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산업계가 원하지만 21대 국회에서 폐기된 주요 법안/그래픽=김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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