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뇌경색·패혈증' 발견…골든타임도 잡아내는 AI닥터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2024.06.20 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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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기획-10년후 AI 의사]⑤AI의료, 기대와 우려

편집자주 한국의 의료 접근성은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10년 뒤에도 유효할까. 의대 증원으로 정부와 의료계 간 뿌리 깊은 갈등이 '폭발'했다. 과학계에선 그동안의 관심 부족으로 의과학자를 더이상 배출할 수 없는 환경이 됐다고 지적한다. 그 대안으로 'AI 의사'가 떠오른다. 병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의 일부 역할을 AI가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속속 나온다. 10년 뒤 한국은 여전히 안전한 의료 시스템을 자랑할 수 있을까. 국가의 미래전략으로 살펴본 10년뒤 의료시스템을 미리 그려보고 이를 위해 정부와 의사들이 무엇을 준비해야할지 진단해본다.

혁신의료기기 허가·인증 현황 및 대표적인 의료 AI 제품/그래픽=윤선정혁신의료기기 허가·인증 현황 및 대표적인 의료 AI 제품/그래픽=윤선정


지난해 7월, 50대 A씨는 의정부을지대병원에서 뇌동맥류 수술 후 퇴원을 하루 앞두고 뜻밖에 '재검'을 결정받았다. 의료 인공지능(AI)인 '뷰노메드 딥카스'가 혈압·맥박 등 활력징후를 분석한 결과 심정지 발생 위험도가 기준인 85점을 넘은 87점으로 나왔다. 당일 오전 퇴원을 결정한 A씨는 "오후부터 미열이 있고 기운은 없지만 괜찮았다"며 오히려 몰려든 의료진을 보며 당황스러워했다고 한다.

그러나 CT 촬영과 혈액검사 등을 진행한 결과 실제 그는 신우신염에 의한 패혈증이 발생한 상태였다. 신장이 균에 감염돼 염증이 발생했고 이로 인해 혈액까지 오염된 것이다. 다행히 병을 일찍 발견한 A씨는 치사율이 50%를 넘나드는 패혈증을 예상보다 빨리 이겨내고 일반 병실로 복귀한 뒤 안전히 퇴원할 수 있었다.



의료 AI가 의료 현장을 '침공'하고 있다. 뷰노 (33,650원 ▼1,000 -2.89%)·루닛 (42,250원 ▼1,850 -4.20%)과 같은 의료 인공지능(AI) 기업이 길게는 수십 년간 진행한 연구개발 성과가 정부의 정책 지원에 맞춰 꽃을 피운다. 의사를 보조해 빠르고 정확하게 병을 진단하고 치료를 결정하는 것은 큰 장점이다. 하지만 아직 의사를 대체하기는 심리적·기술적 한계가 뚜렷하다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연도별 인공지능(AI) 의료기기 허가·인증 현황/그래픽=윤선정연도별 인공지능(AI) 의료기기 허가·인증 현황/그래픽=윤선정
20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AI 의료기기 허가·인증 건수는 2019년 10건에 불과했지만 2020년 50건, 2021년 37건, 2022년 48건에서 지난해 64건으로 크게 늘었다. 기존 의료기기나 치료법보다 안전성·유효성을 눈에 띄게 개선한 '혁신의료기기' 중 대다수가 의료 AI에 해당한다. 2020~2023년 혁신의료기기(수출용 제외) 허가·인증을 받은 25개 제품 중 의료 AI 제품이 19개에 달한다.



국내 의료 AI 기업은 특히 △영상 진단 △디지털 병리 △활력징후 분석 등에 특화돼 있다. 영상진단은 CT, MRI 등 영상 결과를 보고 병이 의심되는 부위와 확률(%)을 표시해주는 방식이다. 디지털 병리는 환자의 몸에서 채취한 조직 검체를 디지털 영상으로 변환한 뒤 진단하는 것을, 활력징후 분석은 나이·성별·혈압·맥박·호흡·체온 등 생체신호를 토대로 AI가 24시간 이내 심정지, 패혈증 위험을 알려주는 것을 말한다. 지금까지는 모두 의사·간호사가 도맡아왔던 일이다.

그동안은 비용 장벽이 문제였다. 의료진이 원해도 돈이 되지 않으니 병원에서 사용을 주저했다. 하지만 혁신의료기기(기술), 신의료기술 평가유예 등 정부가 의료 AI 비급여 사용의 '길'을 열면서 의료 현장에서 AI 기술을 만나는 것이 어렵지 않게 됐다. 지난해 보건복지부는 의료 AI에 대해 처음으로 보험급여 기준을 설정하며 시장 진입 문턱을 한층 더 낮췄다.

의정부을지대병원 신속대응팀이 심정지 예측 시스템 모니터링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의정부을지대병원의정부을지대병원 신속대응팀이 심정지 예측 시스템 모니터링 결과를 살펴보고 있다./사진=의정부을지대병원
의료 AI를 사용하는 의사들은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지난해 뷰노메드 딥카스를 도입한 의정부을지대병원 선현우 중환자의학과 교수는 "수백 명에 달하는 일반 병동의 환자를 적은 수의 의료진이 지속적으로 가까이서 관찰하기 어렵다"며 "눈여겨볼 중증 환자를 AI의 도움으로 선택해 자주 진찰할 수 있어 업무 효율이 높고 환자 안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제이엘케이 (13,730원 ▲80 +0.59%)의 뇌졸중 진단·유형 분석 솔루션 'JBS-01K(현재 JLK-DWI)'를 사용 중인 김치경 고려대구로병원 신경과 교수는 "뇌졸중 전문의가 부족한 상황에 골든타임을 지키고, 아주 작은 병변도 놓치지 않는 데 AI가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30분간 신체 오른쪽에 마비가 와 응급실을 찾은 62세 환자는 마치 점처럼 보이는 작은 뇌경색을 AI가 알아채 조기 약물 치료를 시행할 수 있었다. 심장에서 혈전(피떡)이 날라와 뇌경색을 일으킨 63세 남성의 경우, AI 유형 분석을 통해 혈전 예방약으로 치료제를 변경하는 등 '맞춤 처방'으로 더욱 효과적인 치료가 가능했다고 한다.

국내 1세대 의료 인공지능 전문기업 딥노이드 (5,810원 ▼40 -0.68%)의 AI기반 뇌동맥류 검출 진단보조 솔루션 'DEEP:NEURO(딥뉴로)'는 건강보험 비급여 수가를 책정받았다. 현재 딥노이드의 솔루션을 도입한 국내 병원은 약 20곳이며, 올해 중 8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다만 AI가 의사를 대체하긴 아직 이르다는 게 의료계의 대체적인 견해다. 부족한 의사를 AI로 채운다는 건 아직 '신기루'일 뿐이란 것이다. 의사·환자 간 신뢰 관계(라포)를 형성할 수 없고, 의사에서 의사로 수술 기술이 전수되는 외과계는 AI 접목이 어려운 점 등이 한계로 거론된다. 전통적인 진찰과 검사로는 이상이 없는데도 AI가 '오진'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가천대 길병원이 2016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암 환자 진료에 적용한  IBM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의 구동 장면./사진=가천대 길병원가천대 길병원이 2016년 국내 최초로 도입해 암 환자 진료에 적용한 IBM ‘왓슨 포 온콜로지(Watson for Oncology)’의 구동 장면./사진=가천대 길병원
기존 논문 등을 토대로 진단법을 제시하거나, 환자 상담을 진행하는 챗 GPT 형태의 AI도 윤리적·법률적 문제 등을 이유로 결국 의사의 최종적인 개입과 판단이 요구된다. 환자·병원 입장에서 꼭 돈을 들여 의료 AI를 써야 하느냐는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실제 1세대 '인공지능 의사'로 최적의 암 치료법을 제시해 화제를 모은 미국 IBM사의 '왓슨'은 암 치료 분야에서 별다른 비용 효용성을 입증하지 못하고 2021년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김치경 교수는 이런 이유로 "미래 의학에서는 의료 AI의 역할이 확대될 수밖에 없지만 결국 사람(의사)의 선택을 받고 도움이 되는 '도구'로 인정받아야 지속해서 발전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임재준 이듬법률사무소 대표(연세대 의료기기산업학과 겸임교수)는 "정부의 적극적인 제도 개선과 의료 AI의 성공모델이 나오면서 다양한 제품이 쏟아지고 있다. 이제 의료 AI에 대한 '옥석 가리기'도 필요하다"며 "기업은 완성도 높은 기술과 임상 연구로 성능을 입증하고, 정부는 의료현장이 필요한 AI가 계속해서 사용·발전할 수 있도록 수가제도 개선과 정당한 보상방안 등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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