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로 간 러시아 핵 잠수함…"냉전 2.0, 다시 90년 이전으로"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24.06.12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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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무기로 러시아 내 목표물 공격 승인하자 맞대응,
신규 극초음속 미사일 탑재한 군함 쿠바에 정박·훈련

11일(현지시간)러시아 해군의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이 대서양을 지나 쿠바로 향하고 있다.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은 신형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국방부11일(현지시간)러시아 해군의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이 대서양을 지나 쿠바로 향하고 있다.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은 신형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사진=러시아 국방부


신규 극초음속 미사일이 탑재된 러시아의 군함이 12일(현지시간) 대서양에서 훈련을 마치고 쿠바로 향하고 있다. 미국이 우크라이나가 자국 무기로 러시아 영토 내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승인해준 데 따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맞대응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푸틴의 응수
로이터통신과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이날 러시아의 카잔 핵 추진 잠수함과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을 포함해 군함 3척이 하바나만을 가로질러 쿠바에 정박한다. 5년 전 트럼프 정부에 의해 정박이 금지되기 전까지 미국 유람선이 정박했던 장소다.



고르시코프 제독 호위함은 신형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로 무장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르콘이 음속보다 9배 빠른 속도로 1000㎞ 이상 비행해 기존 미사일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강력한 무기라고 선전한 바 있다.

러시아가 카리브해에 군함을 보낸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엔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군이 미국산 무기로 러시아 영토의 목표물을 타격할 수 있게 승인한 데 따른 응수다. 푸틴 대통령은 이에 발끈해 자국이 서방에 적대적인 많은 국가들을 무장시킬 수 있다고 맞받아쳤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위해 어떤 핵무기 사용도 필요하지 않다. 불필요하게 핵 주제를 논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7일(현지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상트페테르부르크 국제경제포럼(SPIEF) 회의에 참석해 “우크라이나에 승리를 위해 어떤 핵무기 사용도 필요하지 않다. 불필요하게 핵 주제를 논하지 말라”고 밝히고 있다. /AFPBBNews=뉴스1
캐나다 왕립군사대학의 역사 및 전략 명예교수 할 클레팍은 "쿠바에 대한 러시아와 미국의 관계는 항상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같은 맞대응 전략(tit for tat)이었다"며 "러시아가 미국에 보내려는 메시지는 한 마디로 '그래, 우크라이나에서 우리에게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지만 우리도 완전히 무력하지 않고 귀찮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쿠바는 오랫 동안 미주 지역에서 러시아의 가장 가까운 동맹국이었다. 러시아는 쿠바가 '전략적 파트너'로 간주하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다. 쿠바와 중국, 베네수엘라 등 다른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약화된 반면 러시아와의 관계는 냉전시대 이후 최고로 밀접해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깊어진 러-쿠바 밀월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외교적 지원이 필요한 러시아에는 쿠바가 구애할 만한 가치가 있는 나라다. 개발도상국들 사이에서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어서다. 쿠바의 집권 공산당은 계획경제로 생산량이 줄어든 데다 관광업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경제침체에 허덕이고 있다. 에너지 부족으로 수백만명이 매일 12시간의 정전에 시달리고 있다.


쿠바 하바나에서 관광객들이 2층 버스에 탑승해있다. /로이터=뉴스1쿠바 하바나에서 관광객들이 2층 버스에 탑승해있다. /로이터=뉴스1
러시아는 이에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인 2022년 냉전 이후 최대 규모의 석유를 쿠바로 보냈다. 쿠바에서는 러시아인도 신용과 직불 결제를 할 수 있어서 러시아 관광객도 떼지어 쿠바로 몰리고 있다. 올해 1분기에만 작년의 2배 수준인 6만6000명이 쿠바를 찾았다. 호텔, 설탕, 럼주 등에 대한 러시아의 민간 투자도 발표됐다.

쿠바는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유엔 결의안에 지속적으로 기권해왔다. 최근엔 중립이 아닌 아예 '친러'로 기울었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해 "모든 특별군사작전(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침공을 특별군사작전으로 호칭)이 성공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양국의 제재가 "같은 적에 기원한다-바로 양키제국"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구 소련은 1962년 핵 미사일을 쿠바에 배치해 미사일 위기를 야기했는데 당시가 인류 역사상 핵 전쟁에 가장 근접했던 순간으로 꼽힌다. 쿠바 외무부는 러시아 군함이 12일 쿠바에 정박할 것이나 핵무기는 탑재하지 않고 "이 지역에 위협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도출한 미-쿠바 관계 정상화를 역으로 되돌렸고 바이든 정부에서 기존의 경제 제재를 유지하며 일정 거리를 유지했다. 그러나 이같은 입장은 미국의 적들이 틈을 비집고 쿠바와 손잡을 여지를 줬다. 아메리칸대학교 빌 레오그란데 정부학 교수는 "우리는 1990년 이전으로 돌아가고 있다"며 "냉전 2.0에 접어들면서 쿠바는 다시 한 번 적대적 진영으로 간주되고 있다"고 FT에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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