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미플루부터 진단까지…韓R&D 예산을 매년 연구에 쓰는 이 회사

머니투데이 바젤(스위스)=김훈남 기자 2024.06.19 08:31
글자크기

[월드베스트 기업을 만드는 힘]③스위스 혁신의 제약사 '로슈'

편집자주 여러 나라, 시장마다 돈을 잘 버는 기업은 많다. 하지만 돈을 잘버는 기업을 무조건 좋은 기업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오랜기간 꾸준히 성장하면서 시장을 선도하고, 동시에 벌어들인 이익을 바탕으로 나라와 지역사회에 경제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회사를 좋은 기업으로 평가한다. 머니투데이는 반도체와 화학, 제약, 패션 등 주요 분야의 '월드 베스트 기업'을 찾아 기업의 성장 비결과 기업을 일궈낸 환경을 조명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월드 베스트 기업을 탄생시킬 묘안을 찾아본다.

스위스 바젤 로슈 본사 R&D(연구개발) 센터에 설치된 로봇 설비. 로슈 관계자는 "2022년 신사옥에 로봇 설비 등을 적극 활용해 신약 개발 등 과제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로슈스위스 바젤 로슈 본사 R&D(연구개발) 센터에 설치된 로봇 설비. 로슈 관계자는 "2022년 신사옥에 로봇 설비 등을 적극 활용해 신약 개발 등 과제를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사진제공=로슈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어린 아이를 둔 집이라면 '만병통치약'마냥 쓰는 '비판텐'도 로슈에서 탄생한 의약품이다.

하지만 300조원 넘는 기업가치의 로슈가 130년 가까이 제약시장을 주도하는 것은 이들 '히트상품' 덕이 아니다. M&A(인수합병)를 통한 꾸준한 변화, 우리나라 국가 R&D(연구개발) 예산에 맞먹는 돈을 매년 투자하는 '혁신'이 로슈를 월드 베스트 기업으로 만들었다.



지난 6일 스위스 북부도시 바젤 소재 로슈 본사에서 만난 요르그-미카엘 루프(Jorg-Michael Rupp) 파마 인터내셔널 리전 헤드(Head of Pharma International Regions)는 로슈의 성장에 대해 "스위스 바젤 지역은 산학협력과 스타트업이 활성화돼있고 인근 독일과 프랑스 등과 교류가 활발한 점 등 헬스케어 분야 생태계를 만드는데 유리하다"며 "낮은 세율과 매우 안정적 정부 정책 등 환경적인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요르그 헤드는 아프리카, 아시아, 중동, 유럽 및 라틴 아메리카 전역에 걸쳐 100개가 넘는 국가의 로슈 제약 사업 운영을 책임지고 있다.

바젤은 스위스 제3대 도시 중 하나로 제약과 정밀산업이 발달했다. 프랑스와 독일 인근 도시와 함께 경제권을 형성하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취리히 연방대학 등 학계와의 협력·교류도 활발하다는 게 요르그 헤드의 설명이다.



 요르그 루프(Jeorg Rupp) 로슈 파마 인터내셔널 헤드(Head of Pharma International)가 지난 6일 스위스 바젤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요르그 루프(Jeorg Rupp) 로슈 파마 인터내셔널 헤드(Head of Pharma International)가 지난 6일 스위스 바젤 본사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 하고 있다. /사진=김훈남
루프 헤드는 "로슈는 학계와 스타트업, 바이오테크 등 영역과 긴밀히 연계된 글로벌 R&D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며 "한국을 포함해 150개 국가에 진출, 임상시험 등 중요한 R&D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의약품 1개를 만드는 데 실험실에서 양산까지 12년이 걸린다. 이 과정에 총 28억달러 가량을 투입한다"고 덧붙였다.

루프 헤드는 "최근 몇년간 매출의 22%를 R&D에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로슈는 글로벌 제약업계에서 가장 많은 R&D비용을 투입한다. 2023년 기준 로슈의 연매출은 587억 스위스프랑(CHF), 원화로 90조원이 조금 넘는다. 이 중 22%인 20조원 가량을 매년 R&D에 쓴다는 얘기다. 올해 한국정부의 R&D 예산(26조5000억원)과 비슷한 규모의 R&D투자가 스위스 인구 17만명 도시의 기업 1곳에서 발생한다.

최근에는 AI(인공지능)를 통한 데이터 분석 등 4차 산업기술을 접목한 혁신도 꾀한다. 루프 헤드는 "앞으로는 매 80일마다 의료관련 지식이 두배씩 늘어나난다는 전망이 있다"며 "헬스케어 생태계와 연구, 파트너십 강화와 더불어 AI를 통한 데이터 분석 등이 유망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과의 협력에 대해서도 "한국에 550명 정도의 지사를 갖고 있고 10개 중 4개 제품에 대한 임상시험을 하는 등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며 (한국이 뛰어난) AI나 데이터 이용 등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제약업계에서 로슈는 국경을 넘나드는 M&A로 새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회사로 알려져있다. 로슈는 1994년 미국 '신텍스'에 이어 △2002년 일본 주가이 파마슈티컬스와의 전략적 제휴 △1998년에 베링거 만하임(Boehringer Mannheim) △2009년 미국 제넨텍 △2014년 미국 '제니아 테크놀로지' △유방암치료제 전문 '세라곤 파마슈티컬즈' △ RNA 타깃 희귀질환 치료제 전문 '산타리스 파마' 등을 인수해 몸집을 키웠다. 최근에는 종양(암) 치매 등 전문 의약품과 진단분야에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루프 헤드는 "로슈는 창업주 가문이 지분 65%를 소유하고 있는 기업"이라며 "로슈 가문은 경영에 직접 참여하진 않지만 이사회 구성원으로 그룹 방향 설정에 중요한 의사를 밝힌다"고 말했다.

이어 "'환자에 집중하고 사회에 공헌한다'는 기업 이념을 지키면서도 진단과 제약 등 두분야의 기민한 협력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며 "스위스 정부는 기업활동을 통해 거둬들인 세금이 개발이나 혁신에 환원될 수 있도록 기업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스위스 바젤 로슈 본사 전망대에서 살펴본 바젤시 전경. 제약과 정밀산업이 발달한 이곳에는 산학협력, 독일·프랑스 등 국가간 협력이 활발하다. /사진=김훈남스위스 바젤 로슈 본사 전망대에서 살펴본 바젤시 전경. 제약과 정밀산업이 발달한 이곳에는 산학협력, 독일·프랑스 등 국가간 협력이 활발하다. /사진=김훈남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