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약계층 어려움만 커질 것"…섣부른 금리인하 경계한 한은 총재

머니투데이 김주현 기자 2024.06.12 10:00
글자크기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진=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23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부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뉴시스 /사진=


"섣부른 완화기조의 선회 이후 인플레이션이 재차 불안해져 다시 금리를 인상하는 상황이 된다면 감수해야 할 정책비용은 훨씬 클 것입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2일 한국은행 창립 74주년 기념사에서 "물가가 제대로 안정되지 않으면 실질소득 감소와 높은 생활물가 등으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은 가중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물가가 목표 수준으로 수렴할 것이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현재의 통화긴축 기조를 충분히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1분기 성장률 등 통화정책 여건에 대해서도 진단했다. 이 총재는 "지난 1분기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이 예상을 상회하는 등 경제 회복세가 당초 우려보다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성장지표 뒤에는 수출과 내수의 회복세 차이가 완연하고 내수 부문별로도 체감 온도가 상이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물가상승률도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예상보다 양호한 성장세, 주요국 통화정책의 불확실성에 따른 환율 변동성 확대 등으로 물가의 상방 위험이 커진 데다 지정학적 리스크도 여전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명언 '천천히 서두름(Festina Lente)'도 인용했다. 이 총재는 "너무 늦게 정책기조를 전환하면 내수 회복세 약화와 연체율 상승세 지속 등으로 시장불안을 부를 수 있고 반대로 너무 일찍 정책기조를 전환하면 물가상승률의 둔화 속도가 늦어지고 환율변동성과 가계부채 증가세가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마지막 구간에 접어든 지금, 상충관계를 고려한 섬세하고 균형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며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정책 결정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 '천천히 서두름'의 원칙을 되새겨볼 때"라고 말했다.


또 "국가별로 정책운영 성과가 차별화되면서 각국 중앙은행의 실력이 뚜렷이 드러나기 마련"이라며 "경제예측의 정확성을 높이고 다양한 시나리오별 리스크를 종합적으로 점검해 정교하게 정책을 운용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경제전망을 더 세분화하고 기준금리 전망 견해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이 총재는 "8월부터 반기에서 분기 단위로 세분화된 경제전망을 발표하고 현재 공개하고 있는 금통위원의 '3개월 내 기준금리 전망 견해'에 대해선 효과와 장단점을 검토해 개선방안을 고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은행·비은행예금취급기관에 대해 예측가능한 유동성 지원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며 "필요시 유관기관과의 협의 하에 한은법을 개정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한은은 실리콘밸리은행(SVB) 사태 이후 유동성 안전판 강화를 위해 한은 대출 적격담보 범위를 대출채권까지 확대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이밖에 저출생·고령화와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등 구조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저출생·고령화 문제가 지역불균형과 수도권 집중 문제 등 악순환을 통해 성장잠재력을 훼손해온 지 오래"라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기후위기와 인공지능 혁신 등 사회 대전환을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구조적 문제들에 대한 해결 노력 없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며 "한은이 구조개혁과 관련해 목소리를 높이고 우리나라 최고의 싱크탱크가 돼야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한은이 사회 구조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한 비판적 여론도 언급했다. 이 총재는 "법적 권한이 없는 한은이 사회적으로 민감한 문제를 다루는 것에 대해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다"며 "오히려 권한이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운 한은이 더 중립적으로 분석하고 장기적 시각에서 해결방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은이 '한은사'에서 벗어나 '시끄러운 한은'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것이 취임 때부터 밝혔던 포부"라며 "지식의 소비자나 중개인에 머무르지 않고 지식 생산자로서의 역할을 강화해 나가야 하고 이 과정에 수반되는 고통과 논란은 실력으로 이겨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