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 사다리' 걷어차는 세금…서울에선 7명 중 1명 상속세 냈다

머니투데이 세종=정현수 기자, 세종=박광범 기자, 김주현 기자, 세종=유재희 기자 2024.06.12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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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중산층 사다리' 걷어차는 상속세①

편집자주 1950년 제정된 상속세법은 숱한 개정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상속세는 부의 대물림을 억제하기 위해 도입된 세금이다. 한마디로 부자들을 위한 세금이었다. 하지만 최근 상속세 대상이 중산층으로 넘어오고 있다. 1997년 이후 상속세 공제액을 조정하지 않은 결과다. 집 한 채 가진 중산층에게 상속세는 재앙이다. 어렵게 형성된 중산층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상속세를 알아본다.

상속세 과세자 비율 추이/그래픽=김지영상속세 과세자 비율 추이/그래픽=김지영


부자들의 전유물이었던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으로 바뀌고 있다. 물가와 자산 가치는 치솟았는데 상속세 과세기준은 요지부동이다. 그만큼 상속세 대상자가 늘었다. 어렵게 자산을 형성해 중산층에 진입한 서민들 입장에선 상속세가 공포로 다가온다. 혹은 중산층으로 올라설 사다리를 걷어차는 도구로 전락했다.

12일 국세청 국세통계연보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상속세 과세자(이하 결정인원)는 1만5760명이다. 과세자와 과세미달자를 분모(34만8159명)에, 과세자를 분자에 뒀을 때 과세비율은 4.53%다. 해당 비율은 2005년 0.8%에 불과했다. 10년 전인 2012년에도 2.16% 수준이었다. 기울기가 눈에 띄게 가팔라졌다.



국세청은 이번달 중하순 경에 지난해 상속세 결정현황을 발표한다. 최근 추세로 봤을 때 과세비율은 5~6% 수준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집값이 다소 주춤했지만 상속세가 6개월의 신고기한, 이후 9개월의 최종 결정 과정을 거친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해 상속세 과세비율도 2022년 집값 상승분을 반영할 전망이다.

원윤희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 교수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대부분 회원국의 상속세 과세비율은 1%대 미만"이라며 "4~5%대의 과세비율을 두고 아직 부자 세금이라고 하겠지만 대부분의 국가와 비교하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준"이라고 말했다.



상속세 공제 제도/그래픽=김지영상속세 공제 제도/그래픽=김지영
집값 상승률이 두드러진 서울로 지역을 한정하면 상속세 과세비율은 두자릿수를 훌쩍 넘는다. 2022년 서울의 상속세 과세대상자 4만3734명 중에서 과세자는 6106명(13.96%)이다. 7명 중 1명 꼴이다. 2012년 4.77%였던 서울의 상속세 과세비율은 전체 평균보다 더 빠르게 올라가고 있다.

중산층 세금이 돼 버린 상속세…27년째 제자리인 상속세 공제 탓
상속세는 피상속인(사망자)의 채무를 뺀 재산에 대해 유가족이 납부하는 세금이다. 물려 받은 재산이 각종 공제액 이상이면 상속세를 내야 한다. 대표적인 공제로는 일괄공제(5억원)와 배우자공제(5억~30억원)가 있다. 통상 배우자와 자녀가 있을 때는 10억원, 자녀만 있을 때는 5억원을 상속세 과세기준으로 본다.

일괄공제와 배우자공제는 1996년 말 상속세 전부개정 때 도입해 이듬해부터 적용했다. 이후 공제액은 한번도 바뀌지 않았다. 당시 5억원의 가치는 지금과 다르다. 당시 집값 기준으로는 서울 강남의 50~60평대 아파트 가격이다. 집값을 고려하지 않은 순수 물가상승률로도 지금 8억원 이상의 가치다.


특히 최근 몇 년 사이에 집값이 많이 오르면서 상속세 사정권에 들어온 1주택자가 많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은 11억9773만원이다. 상속세는 공시가격를 기준으로 하는 종합부동산세와 달리 시가를 따진다. 별도의 채무가 없다면 서울 1주택자는 상속세를 걱정해야 한다.

현행 상속세 기준/그래픽=김지영현행 상속세 기준/그래픽=김지영
머니투데이가 우병탁 신한은행 압구정역기업금융센터 부지점장에게 의뢰한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홀어머니를 여읜 A씨가 물려 받은 13억5000만원의 서울 길음동 아파트 상속세는 1억8624만원이다. A씨 어머니의 채무가 없다는 전제에서다. 어머니와 같이 살던 A씨 입장에선 날벼락이다.

상속세는 또 다른 '부자 세금'인 종부세와도 엇박자를 낸다. 1주택자의 종부세 공제액은 12억원(공시가격)이다. 공시가격이 대략 시가의 70% 정도를 반영한다는 점에서 종부세를 내지 않는 사람 중에서도 상속세 대상자가 적지 않다. 일각에서 1주택자에 한해 상속세 공제액을 종부세와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우리나라 국민들은 다른나라 국민들보다 자식에 대한 상속 동기가 아주 강한데 상속세는 이를 부의 세습이라고 잘못 규정하고 높은 세율을 부과한다"며 "상속세가 중산층의 세금이 돼선 안된다"고 말했다.

'갈라파고스' 세제인 한국의 상속세
상속세를 강화해 온 한국과 달리 주요 국가들은 상속세를 완화하는 추세다. 38개 OECD 회원국 중에서 상속세가 없는 나라는 호주, 캐나다, 스웨덴, 노르웨이 등 14개국이다. 한국처럼 유산세(사망자 기준) 방식의 상속세를 운영하는 4개국 중에서 한국을 뺀 나머지 국가는 배우자공제를 모두 면제한다.

OECD 국가들의 상속세 과세 방식/그래픽=김지영OECD 국가들의 상속세 과세 방식/그래픽=김지영
전반적인 공제액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상속세 공제액은 1361만달러(약 188억원)다. 이른바 '슈퍼리치'를 제외하고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은 상위 20%라고 할 수 있는 소득5분위의 순자산이 2012년 6억2822만원에서 2022년 10억2723만원으로 빠르게 늘고 있지만 상속세 공제는 27년 전 기준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변화의 조짐도 보인다. 기획재정부는 유산세 방식의 상속세를 유산취득세(유가족 기준)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자 감세'에 극도로 민감한 반응을 보였던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상속세 일괄공제를 1억~2억원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염두에 두고 있다. 상속세가 중산층 세금이 됐다는 판단에서다.

안창남 강남대 세무학과 교수는 "상속세 과세기준은 소비자물가와 연계해서 올려야 한다"며 "이른바 인플레이션 택스(Inflation Tax)에 더해 배우자 상속에는 세금을 물리지 말고, 1주택자가 상속 받고 그 상속인이 그 집에서 거주한다면 상속 공제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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