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여의도 콩국수를 위한 변명

머니투데이 반준환 증권부장 2024.06.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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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증권부장 /사진=임성균머니투데이 증권부장 /사진=임성균


얼마전까지 포근했던 것 같은데, 벌써 후텁지근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날씨가 더워졌다. 사람마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른데, 나의 경우는 점심식사 메뉴에서 변곡점을 찾곤 한다. 더위를 많이 타지만, 정작 차로 통근하고 냉온방이 되는 사무실에서 일하는 터라 오히려 날씨에 둔감해진 것 같기도 하다.

식사메뉴에는 상대방의 입맛도 영향을 미치지만 쌀쌀할 때는 매운탕을 찾아 일식집으로 많이 가는 편이고, 봄 가을에는 비빔밥, 불고기, 장어덮밥 집도 자주 간다. 여름에는 시원한 음식이 단연 인기인데, 몇일 뒤 점심장소로 제안 받은 게 냉면이라 본격적인 여름이 왔구나 했다. 여의도에도 여름음식으로 유명한 콩국수집이 있다.



사시사철 붐비긴 하지만 여름이 되면 그야말로 북새통을 이룬다. 평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점심식사 때마다 지하 식당 입구에서 줄 선 사람들이 몇바퀴를 돌아 건물 밖까지 삐져나온다. 차마 기다릴 용기가 없어 근처 식당으로 발길을 돌린 적이 많은데, 그럴때마다 기분이 언짢다. 콩국수 한그릇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참을성이 없는 사람이라니.

이 식당은 여의도의 가혹한 물가를 말해주는 대표 사례로 꼽히기도 한다. 콩국수 한 그릇에 1만5000원이다. 물가가 싼 동네는 콩국수 한 그릇이 아직 7000원이고, 비싼 곳도 1만2000원 정도다. 서울시내 유명한 노포의 설렁탕보다 20% 이상 비싸다.



걸쭉한 콩국을 만들어 내려면 원가가 상당할테지만 사실 이 식당은 맛을 인질로 매년 1000원정도씩 가격을 올려온 곳이다. 2013년 가격은 8000원이었는데 그 때도 비싸다는 인식이 많았다. 당시 서울(평균)에서 자장면 한 그릇이 4409원, 김치찌개 백반이 5455원이었다. 자장면 두 그릇이 콩국수 한그릇이니 비싸긴 했다.

콩국수 가격이 2013년 8000원에서 2023년 1만4000원으로 75% 오르는 동안 다른 물가가 멈춰있던 건 아니다. 오리구이는 1만9000원에서 2만8000원으로 47% 올랐고 서여의도에 가끔 가던 중국집 자장면 가격은 4500원에서 7500원으로 67% 올랐다. 이 밖에도 커피, 꽃다발, 양복 셔츠, 아파트 가격, 임대료 등 안오른게 없다.

빌딩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가장 많이 오른건 뭘까. 바로 사람 물가다. 성과급이 많기로 유명한 메리츠증권을 놓고 보면 직원 1인당 평균급여가 2013년 7113만원에서 2023년 1억8273만원으로 157% 늘었다. 임원을 제외하고 직원들이 받은 급여에 상여와 성과급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같은 기준으로 NH투자증권은 5800만원에서 1억3800만원으로 138% 올랐고 한국투자증권은 5541만원에서 1억3764만원으로 148% 늘었다.


이런 여의도에서 멈춰있는 것도 있다. 금융 서비스 이용 가격이다. 대표적으로 홈트레이딩 시스템, 모바일 트레이딩 시스템 수수료는 20년 전과 거의 같은 수준이고, 상장지수펀드(ETF) 보수는 오히려 더 낮아졌다. 1억원을 투자하면 연간 운용수수료가 9900원 수준까지 내려간 ETF도 나왔다.

일종의 투자 인프라로 볼 수 있는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직원(임원제외)들의 평균급여도 최근 10년간 각각 7% , 14% 오르는데 그쳤다. 40대 임원이 상당한 증권, 자산운용업계와 비교해 50대 나이에도 직원에 머무르는 거래소, 금감원의 사정을 생각하면 젊은 직원들의 실질 처우는 제자리라는 지적이다.

지난해 말 금감원 퇴직자 49명 중 20~30대 퇴직자가 13명으로 10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근무강도에 비해 열악한 처우에도 사명감으로 일한다는 얘기가 젊은 직원들에게 받아들여지지 못한다는 방증이다. 금감원을 떠난 직원들이 급여가 월등한 법무법인이나 가상자산 거래소로 이직했다. 같은 고민을 한국거래소도 하고 있다. 급여가 아니라면 처우라도 좋아야 하는데 여건이 만만치 않다.

모든 물가가 10년에 두배가 되는 상황에서 보람, 사명감, 동료애 같은 추상적인 가치만 강조하기에는 콩국수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 직원들이 원하는 처우를 만들어주는 직장이 되지 못한다면 삼투압처럼 급여의 농도에 따라 직원들이 빠져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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