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유니레버의 2000년과 2017년

머니투데이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 2024.06.12 02:03
글자크기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사진=권다희 기자/로이터=뉴스1 /사진=권다희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사진=권다희 기자/로이터=뉴스1 /사진=권다희


유니레버는 2000년 베스트푸드를 인수하면서 대망을 품었지만 그 후 10년 동안 주가는 변변치 않았다. 세계 최대 소비재회사에서 업계 3위로 추락했고 단기 수익목표 달성에 급급한 상황이었다. 2009년 구원투수로 폴 폴먼 회장이 취임했다.

폴먼 회장의 변화전략은 크게 3가지였다. 첫째, 조직을 개편했다. 핵심가치 기반으로 미래전략을 마련했는데 이것이 유명한 USLP(유니레버지속가능리빙플랜)였다. 이사회도 다양성을 증대하고 장기적 사업모델을 지원토록 바꿔놓았다. 그리고 직원들을 사명(mission)과 연결했다. '우리는 유니레버다!'(We are Unilever!)라는 슬로건하에 기업의 3가지 목표와 개인의 1가지 목표를 작성하는 '3+1' 계획을 수립했다. 둘째, 경영진을 개편했다. 대표적으로 커뮤니케이션, 마케팅, 지속가능성 업무를 '최고마케팅책임자' 직책으로 통일했다. 여기까지는 여느 구조조정 기업과 별반 다르지 않다. 유념할 포인트는 직원들에게 올바른 신호를 보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직원의 연금펀드를 유엔책임투자원칙인 PRI에 기반해 투자한다는 원칙을 수립했고 공급업체 선정시 USLP가 규정한 지속가능성 목표와 우선순위를 반영토록 수정했다. 혁신적인 것은 직원의 핵심성과지표(KPI)를 장기적으로 다중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지지하는 방향으로 개편한 것이다.



목적(Purpose)을 가진 사람은 번창하고 목적을 가진 회사는 롱런한다는 신념을 경영 전반에 장착시켜 유니레버를 '넷포지티브' 기업으로 발전시키겠다는 야심찬 구상이었다. 10년을 염두에 둔 목표였는데 2020년 이들 목표는 대부분 달성했고 일부는 초과달성했다. 아울러 USLP의 내재화를 위해 임원 대상으로 ULDP(유니레버 리더십 개발프로그램)를 시작했는데 이는 10년 내 어떤 유형의 기업이 필요할지를 탐구하는 1주 간의 훈련프로그램이었다.

이제 2017년으로 가보자. USLP가 한창이던 2017년엔 경쟁사 크래프트하인즈가 유니레버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당시 크래프트하인즈의 최대주주는 브라질 사모펀드 3G캐피탈과 워런 버핏의 버크셔해서웨이였는데 이들은 당시 시가총액보다 18%나 많은 1430억달러라는 거금을 제시하며 유니레버 인수를 적극 추진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폴먼 회장은 이 사건을 크래프트하인즈라는 주주우선주의 대표 기업과 USLP로 대변되는 넷포지티브 기업 유니레버의 상징적인 대결로 비유했다. 이때 유니레버는 USLP 전략하에 탄탄한 매출과 지속적인 자본수익률을 유지함으로써 신뢰할 만한 주주가치를 창출해냈다. 무엇보다 업계 내 NGO들과 노동조합이 솔선수범해 유니레버를 전폭적으로 지지했고 유니레버는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2000년과 2017년 사이의 변화를 폴먼 회장은 '투명성이 뒷받침되는 신뢰'(Trust backed by Transparency)가 핵심이며 이를 통해 넷포지티브 작업이 가능했다고 강조한다. 결국 성장을 추구하면서 세상에 의미 있는 기여를 하고자 하는 넷포지티브 전략이 유니레버의 오늘이 있게 한 핵심이라 하겠다. (나석권 사회적가치연구원 대표이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