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부가 시장 겨냥한 현대제철 후판…'체질개선' 현장 가보니[르포]

머니투데이 당진(충남)=박미리 기자 2024.06.11 06:30
글자크기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후판 생산 현장 /사진제공=현대제철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내 후판 생산 현장 /사진제공=현대제철


후판 생산라인에 들어서자 거대한 압연기 위로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정사각형의 주황빛 쇳덩이가 보였다. 섭씨 1200도로 달궈진 후판용 슬라브(반제품)였다. 설비를 수차례 드나들며 얇고 긴 형태로 변한 슬라브는 점차 은빛 후판의 모습으로 바뀌어갔다.

지난달 29일 현대제철 당진공장 후판 생산라인은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두꺼운 철판으로 선박, 해양구조물, 교량, 파이프라인 등을 만들 때 활용한다. 연간 260만톤의 후판을 생산하는 이곳은 국내 산업 인프라의 버팀목이자 현대제철의 유일한 후판 생산기지 역할을 해왔다.



당진 후판 생산기지는 자원이 부족한 한국 철강산업이 세계시장에서 고군분투해 온 현장이기도 하다. 후판 원료인 철광석과 석탄 모두 호주와 브라질, 러시아 등 해외에서 요동치는 원자재가 시세를 뚫고 들여온다. 그렇게 현대제철 연료부두에 도착한 원료는 100km 길이의 주황색 파이프라인을 타고, 돔 경기장처럼 생긴 원료 보관실로 이동한다. 이후 철광석을 시루떡처럼 만들었다가 부수는 소결 공정을 통해 섭씨 1500도의 쇳물을 만든다. 열간 압연, 가속 냉각, 열처리 과정을 거쳐 최종 제품이 생산된다. 물샐 틈 없는 공정을 통한 품질로 자원의 한계를 극복했다.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철광석 원료 보관실 /사진제공=현대제철현대제철 당진제철소 철광석 원료 보관실 /사진제공=현대제철
그랬던 후판 생산라인에 위기가 찾아왔다. 저가의 중국산 후판이 국내에 대거 유입되면서 부터다. 기술과 품질은 자신있지만, 가격과 물량 앞엔 버거웠다. 저가 물량이 밀려들자 조선업계와의 후판 가격 협상력을 잃었다. 이익을 내기 힘든 구조다. 현대제철 뿐 아니라 국내 철강업계 모두 직면한 위기다.

이에 후판 생산기지는 체질 개선 작업이 한창이었다. 후판의 조선 의존도를 낮추고 해상풍력 발전 하부 구조물, LNG 터미널 등 다른 고부가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내년 1월 가동을 목표로 당진 후판공장 안에 열처리로를 증설하고 있다. 체질 개선의 키워드 역시 기술과 품질이다. 천승환 현대제철 후판개발팀장은 "별도의 열처리를 통해 강도, 인성(질김)을 높이는 식으로 물성을 개선하는 것"이라며 "고부가 후판 시장을 공략하기 위한 투자"라고 말했다. 완공시 현대제철의 열처리 후판 생산능력은 지금의 2배로 늘어난다.
현대제철 후판 완제품 /사진제공=현대제철현대제철 후판 완제품 /사진제공=현대제철
현대제철은 해상풍력 후판 수요가 2024~2030년 연평균 39% 늘 것으로 보고 제품 생산 준비에 나섰다. 성과는 이미 가시화했다. 현대제철은 지난해 대만 해상풍력 프로젝트 물량을 약 11만톤 수주했다. 올해 상반기에도 영광낙월 해상풍력 프로젝트 물량을 4만톤 확보했다. 천 팀장은 "중국의 기술이 많이 올라오긴 했지만, 아직 시행착오를 더 겪어야하는 수준"이라며 "우리는 시행착오를 통한 노하우가 있어 중국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