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만원 중고 모자 샀다가…1000만원 뺏겼다" 기막힌 수법

머니투데이 김지은 기자, 이강준 기자 2024.06.05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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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거래 가장한 사기 주의보…서울 금천경찰서·서부경찰서 수사 착수

사기 대응방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라온 피해자 채팅 내용. /사진=김지은 기자사기 대응방 오픈 카카오톡 채팅방에 올라온 피해자 채팅 내용. /사진=김지은 기자


"사기라는 게 영혼을 갉아먹는 것 같아요."

지난 4일 '사기 대응방'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올라온 일부 글이다. 이곳에는 사기 피해를 입은 사람이 166명 정도 있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물품 구매를 하다가 신원 미상의 사람들에게 사기를 당했다. 피해자는 대부분 20~30대 청년들. 피해자들끼리 확인한 피해액만 2억원에 달한다.

사기 수법은 교묘했다. 'OOO 안심 결제', '레츠몰'이라는 가짜 사이트를 만들어 가상계좌로 입금을 유도했다. 트위터나 게임 아이템 사이트 등을 악용해 돈을 뜯어낸 경우도 있었다.



"유명 포털사이트 페이랑 똑같은데…" 가짜 링크에 감쪽같이 속았다
A씨가 사기 피해를 당한 네이버 안심결제 가짜 사이트. 링크에 적힌 가상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입금자명을 적어야 되는 구조다. /사진=독자제공A씨가 사기 피해를 당한 네이버 안심결제 가짜 사이트. 링크에 적힌 가상계좌로 돈을 입금하고 입금자명을 적어야 되는 구조다. /사진=독자제공
20대 대학생 A씨는 지난달 30일 유명 포털사이트의 중고거래 카페에서 87만원짜리 팔찌 판매글을 보고 문의했다. 판매자는 'OOO 안심 결제'가 적힌 링크 하나를 보내주더니 이곳에서 결제를 해달라고 했다.



겉보기에는 포털사이트 페이 결제창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링크에 적힌 가상계좌로 87만원을 따로 입금하고 입금자명을 적어내야 했다.

A씨가 돈을 보내고 판매자에게 연락을 하자 왜 수수료를 보내지 않았느냐며 수수료 포함 87만700원을 추가 입금해야 이전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했다.

깜짝 놀란 A씨가 돈을 입금하자 이번에는 처음에 수수료를 안낸 것 때문에 오류가 생겼다며 126만원, 126만700원을 각각 요구했다. 돈을 보내자 환불 오류 문제를 언급하더니 각각 274만700원, 500만700원을 또 요구했고 총 1200만원2800원을 받아냈다.


돈이 모두 입금된 뒤에도 판매자는 2000만원을 채워야 모든 돈이 환불된다고 말했다. A씨는 결국 포털사이트에 문의했고 해당 링크는 포털사이트 결제와 상관없는 가짜 사이트라는 것을 알게 됐다. 이 모든 일은 2시간만에 일어났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지난달 A씨 진정서를 접수해 수사 중이다. A씨는 "물건을 살 때 꼼꼼하게 살펴보는데 이런 일을 당했다"며 "어렵게 모은 돈인데 한숨만 나온다"고 말했다.

'17만원 모자' 중고 거래하다가… 1000만원 잃었다
B씨가 피해를 입은 레츠몰 가짜 사이트. 마일리지 출금 신청을 하자 '출금 불가입니다. 상담센터로 문의해달라'는 글이 등장했다. /사진=독자제공B씨가 피해를 입은 레츠몰 가짜 사이트. 마일리지 출금 신청을 하자 '출금 불가입니다. 상담센터로 문의해달라'는 글이 등장했다. /사진=독자제공
20대 대학생 B씨는 지난달 30일 중고거래 플랫폼에 17만원짜리 모자 판매글을 올렸다. 한 사람이 구매하고 싶다며 메시지를 보냈고 '레츠몰' 사이트 링크를 보내면서 이곳에서 결제하자고 말했다.

레츠몰은 일명 중고제품 사이트. 가상계좌에 일정 금액을 입금하면 마일리지가 충전돼 제품을 구매할 수 있다. 판매자는 구매자가 보낸 마일리지를 출금 신청하면 본인 계좌로 돈을 돌려 받을 수 있다.

구매자는 B씨가 회원가입을 하고 상품을 똑같이 등록해주면 5분 이내에 구매하겠다고 했다. 구매가 이뤄지고 B씨는 17만원 마일리지 출금 신청을 했다. 그 때, 사이트에는 B씨 계좌가 불법 세탁 계좌로 인지됐다며 계정이 동결돼 고객센터에 문의하라는 메시지가 나왔다.

깜짝 놀란 B씨가 상담사에게 문의하니 동결된 계정을 풀려면 가상계좌로 17만원을 입금해야 한다고 했다. 5분 이내로 돈을 돌려주겠다고 했지만 입금이 되자 수수료를 포함해 34만3400원을 다시 보내라고 했다.

B씨가 추가 입금을 하자 이번에는 시스템 오류로 1000만원까지 돈을 채워야 은행에서 자동 환불이 된다고 했다. 7번째에 340만원까지 추가로 보내면서 결국 총 1000만원을 송금했다.

B씨는 뒤늦게 사기를 인지하고 서울 서부경찰서에 진정서를 접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통장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 받아 계좌 명의자를 파악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직 범죄 가능성… 피해 사례 얽히고 설켰다

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사이트경찰청 사이버범죄 신고시스템 사이트
피해자들은 사기 수법은 다르지만 조직적 범죄가 의심된다고 주장했다. 피해자들이 사기 피해 정보공유 웹사이트 '더치트'에서 피해 사례를 취합한 결과 이들은 실시간으로 계좌주명과 계좌번호를 바꾸며 범행을 저질렀다.

포털사이트 안전 결제 사기 피해자들의 경우 계좌주명이 김O, 김미O, 이낙O 등으로 다양했다. 이들 이름은 레츠몰 사기 계좌, 트위터 사기 계좌 등에도 등장한다. 이런 식으로 특정된 대포통장 공통 계좌주만 10명이 넘는다.

피해자는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B씨는 "지금 1000만원 때문에 은행 2곳에서 대출까지 받았다"며 "지방에서 올라와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은데 착잡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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