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배터리에서 '검은 황금'을 찾는 포항광산에 가다[르포]

머니투데이 포항(경북)=김훈남 기자 2024.06.0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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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RE, 배터리<2회>:배터리 순환경제의 '검은 황금'①

편집자주 "건전지를 또 써?" 어린 시절 장난감 미니자동차에 들어갔던 AA 사이즈 충전지는 신세계였습니다. 한번 쓰고 버리던 건전지를 다시 쓸 수 있다니. 지금은 장난감이 아닌 진짜 자동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를 다시 쓰는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전기차가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차'가 되기 위해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과 폐기, 재사용·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에 걸친 순환경제 조성이 필수적입니다. 머니투데이는 2022년 '오염의 종결자 K-순환경제' 시리즈를 시작으로 매년 주요 순환경제 분야를 조명하고 올바른 순환경제 모델을 고민해왔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배터리. 앞으로 30년 뒤 600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사용 후 배터리 시장을 고민해봅니다.

에코프로 CnG를 포함한 에코프로 그룹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제공=에코프로 에코프로 CnG를 포함한 에코프로 그룹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 전경 /사진제공=에코프로


이차전지 특성을 결정짓는 양극재는 원가의 43%를 차지하는 핵심소재다. 배터리 제조업체엔 양극재 공급망 확보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우리 배터리 업계는 리튬이나 니켈, 코발트, 알루미늄 같은 원료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유럽-중동의 지정학적 불안 등 '공급망 폭탄'을 안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에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에서 소재를 추출해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배터리 순환경제'가 불안정한 배터리 공급망을 강화할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완전 순환' 통한 배터리 양극재 공정…포항 배터리 산단에 가보니
KTX를 타고 포항역에서 내려 차로 15분 남짓 달리니 '배터리 특구'가 조성 중인 포항 영일만 산업단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곳엔 양극재 생산업체 에코프로의 에코배터리 포항캠퍼스가 있다. 기술전쟁이 치열한 산업현장인 터라 휴대전화 카메라를 비롯해 노트북의 각종 슬롯까지 구멍이란 구멍은 다 밀봉해야 공장 진입이 가능하다.

52만㎡(15만7323평) 부지에 4개 캠퍼스로 구성된 이곳에는 △에코프로비엠과 에코프로이엠(양극재) △에코프로머티리얼즈(전구체) △에코프로이노베이션(수산화리튬) △에코프로CnG(재활용) △에코프로AP(가스) 등 에코프로 그룹의 소재별 자회사 생산라인이 조성돼 있다.



전구체에 수산화리튬을 더해 만드는 배터리 양극재 공정을 수직계열화 한 것이 에코배터리 캠퍼스의 특징이라고 회사 관계자는 설명했다. 각 계열사의 공정 순서에 따라 파이프 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파이프라인을 이용할 수 없는 소재는 지게차로 분주히 실어 나른다. 캠퍼스 입구에서 차를 타고 순서대로 계열사를 찾으면 출하 대기 상태의 양극재를 트럭에 싣는 작업까지 대략 20~30분안에 살펴볼 수 있다.

캠퍼스 가운데 눈에 띄는 계열사는 에코프로CnG다. 이 회사는 사용 후 배터리를 재활용해 전구체와 리튬을 추출한다. 폐배터리를 분쇄해 검은색 가루인 '블랙파우더'를 만드는 건식공정을 거친 후 황산을 넣어 니켈이나 리튬을 액체 형태로 추출한다.

추출한 MCP소재는 에코프로머티리얼즈로 보내 전구체를 만들고 LS용액은 에코프로이노베이션으로 옮겨 수산화리튬으로 전환한다. 사용 후 배터리에서 추출한 전구체와 수산화리튬이 다시 양극재로 탄생하는 '클로즈드 루프'(닫힌 순환) 공정이다.


에코프로 관계자는 "원래 리튬이나 코발트 등 양극재 원료는 100% 해외에서 수입해왔다"며 "폐배터리를 투입해 블랙파우더, 소재 추출까지 재활용 공정을 통해 국내 최초로 클로즈드 루프 공정을 구축했다"고 말했다.

에코프로CnG 생산라인에서 사용 후 배터리에서 나온 재생 공정 원재료가 투입되고 있다. /사진제공=에코프로 에코프로CnG 생산라인에서 사용 후 배터리에서 나온 재생 공정 원재료가 투입되고 있다. /사진제공=에코프로
생산비용은 내리고, 공급망 자립도는 오르고…배터리 순환경제에 따라오는 것들

에코프로 그룹이 CnG를 설립해 재활용에 나선 2020년까지만 해도 배터리 재활용 산업에 대해 "얼마나 남겠느냐"라며 회의적 반응이 업계의 반응이었다. 새 원료를 수입해서 만드는 게 간단하고 싼데 굳이 재활용까지 할 이유가 있냐는 얘기다. 아직 선형경제 구조에 머물러 있던 배터리 업계의 모습이다.

회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에코프로CnG를 통한 재활용 사업에서 양극재 원가를 줄이는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에코프로뿐만 아니라 경쟁사에서도 배터리 순환경제 조성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에코프로CnG의 연간 생산능력(CAPA)은 블랙파우더 기준 1만톤 남짓. 에코프로 계열사의 원료의 5~6%를 공급하는 수준이다. 회사는 이 비율을 2025년 10%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블랙파우더에서 소재를 추출하는 효율을 끌어올리는 기술도 필요하지만 사용 후 배터리 물량을 확보하는 게 사업 확장의 가장 큰 난관이다. 업계는 전기차 보급 시기와 수명을 고려하면 2027~2028년쯤 본격적으로 사용 후 배터리가 쏟아져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에코프로CnG역시 2028년 본격적인 배터리 재활용 시장에 맞춰 추출 기술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회사 관계자는 "올해 배터리 산업전에서 '클로즈드 루프 버전2'를 공개하면서 리사이클링 사업의 방향을 소개했다"며 "현재 기술은 전극단계에서 배터리 소재를 추출하는데 버전2에선 전극보다 큰 단위인 셀 단계에서 소재추출을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의 클로즈드루프 버전1이 수직계열화를 통한 원가절감을 목표로 한다면 버전2는 순환경제를 통한 사용 후 배터리 활용을 늘리는 게 목표"라며 "추출할 수 있는 광물 범위를 늘리고 폐수까지 재활용하면 원가의 30%까지 절감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덧붙였다.

에코프로CnG의 소재 재활용 공정 /사진제공=에코프로 에코프로CnG의 소재 재활용 공정 /사진제공=에코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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