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못 태워 속 타는 은행주…갈 길 먼 밸류업, 발목 잡혔다

머니투데이 이병권 기자, 이창섭 기자, 김남이 기자 2024.06.05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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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 금융지주사법에 발목 잡힌 '은행주 밸류업'(下)

편집자주 '코리아 밸류업'의 최대 수혜주로 꼽히는 은행주. 하지만 은행법에 근간을 둔 금융지주사법이 은행주 밸류업을 가로막고 있다. 안정적인 수익률, 전 국민에게 돌아가는 배당수익으로 국민연금이 최적의 투자자로 꼽히지만 매수하는데 제한이 따른다. 일부 은행지주사는 대주주 지분율이 높다는 이유로 자사주 소각을 못 할까 고민할 정도다. 은행주가 밸류업 모범생이 되고 국민 배당주로 거듭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본다.

소각하고 싶어도 못한다...'지분제한'에 은행주 밸류업도 '반쪽'
금융지주법에 발목 잡힌 '은행주 밸류업'/그래픽=윤선정금융지주법에 발목 잡힌 '은행주 밸류업'/그래픽=윤선정


일부 은행지주회사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자사주 소각은 대표적인 기업가치 제고 방안이지만 금융지주회사법의 '지분 제한' 조항이 발목을 잡았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 대주주 지분율이 제한선을 넘어갈 수 있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JB금융지주의 대주주 삼양사는 지분 14.75%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는 삼양사 14.28%, 수당재단 0.45%, 김윤 삼양홀딩스 회장 0.01%가 합쳐져 14.75%를 구성하고 있다. 수당재단은 삼양그룹의 장학재단이다.



2대 주주인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은 14.18%를 갖고 있다. 얼라인은 JB금융이 적극적으로 자사주를 매입·소각하는 방식으로 기업가치를 높일 것을 요구 중이다. JB금융에 올해 새 사외이사 2명(이희승·김기석)을 합류시키기도 했다.

자사주 매입·소각은 가장 효과적인 밸류업 방안 중 하나다. 매입만으로도 시장에 매수 신호를 주는데, 소각까지 하면 전체 주식 수가 줄어들면서 주당 가치가 증가한다. 같은 금액을 배당한다면 DPS(주당배당금)이 오르는 효과도 있다. JB금융도 주주가치 제고 차원에서 지난해 매입한 300억원 규모의 자사주 중 200억원가량을 지난 2월 소각했다.



하지만 JB금융은 추가 자사주 매입·소각을 두고 고민에 빠졌다. '대주주 지분율 제한'이라는 제약 때문이다. 금융지주회사법 8조2에 따르면 비금융주력자(산업자본)는 지방은행지주회사의 15%를 초과해서 주식을 보유할 수 없다. 만약 JB금융이 자사주를 추가 소각하면 전체 발행주식수가 줄면서 대주주 삼양사의 지분율이 15%를 넘길 수 있다.

자사주 소각에 제동이 걸리면 밸류업에도 부정적인 요인이 될 수 있다. 최정욱 하나증권 연구원은 "삼양사가 보유한 지분을 줄여주면 은행도 자사주 소각을 더 할 수 있지만 강제적으로 처분하라고 할 수 없다"며 "소각은 제한적일 것이고, 주주가치 제고를 하는 데에 제약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얼라인과 삼양사의 지분 격차가 0.57%P(포인트)에 불과해 삼양사도 지분을 줄이기 어려운 구조"라며 "얼라인의 입김을 삼양사가 막아주는 구도를 생각해봤을 때 JB금융이 삼양사에게 지분을 줄여달라고 할 가능성도 아주 낮다"고 말했다.


JB금융은 소각 대신 배당 정책으로 밸류업을 이어갈 예정이다. 분기 균등 배당을 도입해서 배당주 투자 매력을 높일 방침이다. 김기홍 JB금융 회장도 1분기 컨퍼런스콜에서 "분기 균등 배당이 바람직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마친 DGB금융지주도 비슷한 상황에 놓였다. DGB금융의 최대주주 OK저축은행은 9.55%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지방은행지주회사때는 동일인의 15% 지분 제한이라 여유가 있었지만, 시중은행지주사가 되면서 제한선인 10%에 바짝 다가섰다.

황병우 DGB금융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이 최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기도 했는데, JB금융과 마찬가지로 소각을 두고 계산기를 두드려야하는 상황을 겪을 수 있다. 다만 DGB금융은 아직 보유한 자사주를 소각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DGB금융 관계자는 "OK저축은행이 대구은행의 시중은행 전환을 염두에 두고 배당·지분제한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10% 가까이 채운 게 아닐까 판단이 든다"며 "구체적인 밸류업 정책은 4분기쯤 시장과 소통할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 은행주 지분 제한 풀릴까…"지금도 이론상 10% 초과 가능"
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금융위김주현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29일 서울 마포구 마포 프론트원에서 열린 대출 갈아타기 서비스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제공=금융위
금융당국이 금산(금융·산업)분리 규제 완화 카드를 다시 꺼냈지만 은행주 밸류업을 가로막는 은행주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은 당분간 쉽지 않을 전망이다.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은행주 10% 초과 보유는 지금도 가능하다는 게 금융당국의 입장이다.

4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금산분리와 관련한 업계 의견을 듣기 위해 이달부터 은행권 관계자와 만난다. 지난달 2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금산분리 규제 완화를 다시 언급하면서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는 은행 등 금융회사가 핀테크 등 산업자본을 소유하도록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다. 반대인 산업자본이 은행을 소유하는 금산분리 규제 완화와는 거리가 있다. 김 위원장은 금산분리 완화를 언급하면서 "재벌이 무슨 은행을 갖게 해주는 개념이 아니라 금융산업이 첨단 기술을 이용해 서비스 질과 경쟁력을 높이기 위함"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금융당국은 현재로선 동일인의 은행주 지분 보유를 제한하는 금융지주회사법 개정은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금융지주회사법은 동일인이 은행지주회사 주식 10%를 초과해(지방은행지주는 15%) 보유해선 안 된다고 규정한다. 특정인의 영향력이 은행을 좌지우지하는 걸 막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밸류업 모범생인 은행주를 더 이상 사기 어려워지고 일부 금융지주회사가 기존 대주주 지분율이 높아 자사주 소각을 결정하는데 고민에 빠지면서 연기금이나 기존 대주주만이라도 지분율 제한을 풀어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10% 제한을 한 번에 풀기가 어렵다면 12%, 15% 등 단계적으로 완화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다만 금융당국은 이론적으로 국민연금이 은행주를 10% 초과해 보유할 수 있기 때문에 법 개정까지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을 보이고 있다. 금융지주회사법 제8조3항은 동일인이 금융위 승인을 얻어 한도를 초과하는 은행주를 보유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국민연금이 은행주 보유에서 해당 조항을 활용한 사례는 없다. 이에 금융당국 관계자는 "비금융 조력자(산업자본)의 경우 은행주 지분율이 4%로 제한되지만 금융위 승인을 얻어 초과 보유한 경우가 있다"며 "아직 국민연금의 활용 사례가 없다고 해서 의미가 없는 조항이라고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예금 금리보다 배당률이 더 좋네"…밸류업 바람 탄 은행주
4대 금융, 올해 주가 추이/그래픽=김지영4대 금융, 올해 주가 추이/그래픽=김지영
'밸류업'의 중심에 선 은행주가 역대 최고가를 고쳐쓰며 고공행진 중이다. 적극적인 배당 등 주주환원 정책이 효과를 내는 모습이다. 정기예금 금리보다 은행주의 배당수익률이 훨씬 높을 정도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은 주식시장에서 지난달 20일 장중 8만3400원까지 오르면 역대 최고가를 경신했다. 올해 초 5만3600원(종가 기준)에서 시작한 것과 비교하면 55.6% 상승한 수준이다. 이날 KB금융은 7만7600원에 장마감을 했다.

올해 최고가를 경신한 것은 KB금융뿐만이 아니다. 하나금융도 지난달 13일 6만5300원까지 오르며 최고가를 기록했고, 신한금융은 지난 3월14일 5만1500원을 터치하며 최고가를 다시 썼다. 지난해 말과 비교해 하나금융은 39.2%, 신한금융은 13.1%(4일 종가 기준) 상승했다. 우리금융도 지난 3월 52주 최고가(1만5500원)를 기록했다.

은행주의 고공행진은 은행의 주주환원 확대와 정부가 추진 중인 '코리아 밸류업 프로그램'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지난해 4대 금융주주의 주주환원율은 △KB금융 37.5% △신한금융 36% △하나금융 32.7% △우리금융 33.7%로 모두 전년 대비 늘었다.

2023년 배당을 기준으로 한 주당 현금배당 수익률은 이날 종가기준 3.94~7.11%에 형성됐다. 최근 주가 상승이 반영되면서 수익률이 떨어졌는데 지난해말 종가를 기준으로 하면 배당수익률은 5.66~7.83%로 높아진다.

금융그룹 관계자는 "은행에 정기예금을 하는 것보다 은행주를 사 배당을 받는 것이 수익률이 훨씬 좋은 상황"이라며 "배당 수익률 외에도 주가 상승으로 인한 평가가치 증가도 기대해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근 주요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1년만기)는 3.50~3.55%다.

은행주는 보통주자본비율에 따른 주주환원 정책을 제시해 투명성과 예측가능성을 높였다. 하나금융의 경우 보통주자본비율 13~13.5% 구간에서 전년 대비 증가한 자본비율의 50% 규모를 주주환원하는 정책을 수립했다. 이와 함께 올해부터 KB금융은 '배당총액 기준 분기 균등배당'제도를 도입했다. 자사주 소각에 따른 DPS(주당배당금)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주가 상승에도 불구하고, 은행주의 PBR(주가순자산비율)은 0.3~0.5배에 형성돼 있다. PBR은 1배 미만이면 시가총액이 장부상 순자산가치(청산가치)에 못 미친다는 의미인데, 은행주는 절반도 안되는 상황이다. 주요 금융그룹은 우선 PBR 0.8배를 목표로 자사주 매입·소각을 진행할 예정이다.

CEO(최고경영자)도 주주환원에 적극적이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열린 IR(투자설명회)에서 양종희 KB금융 회장은 "수익이 창출된다면 가급적 많은 부분을 주주 환원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진옥동 신한금융 회장은 "충분한 손실 흡수 능력이 갖춰진 상태에서 발행주식을 줄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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