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회장의 소송쟁점...'제2이동통신 특혜는...'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06.05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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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플레이스 남대문'에서 열린 연임 기념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했다.최태원 대한상의 회장이 2일 서울 중구 '프레이저플레이스 남대문'에서 열린 연임 기념 출입기자단 간담회에 참석했다.


'남의 싸움에 칼을 빼들' 생각은 없다. 가족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다투는 이혼소송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소송 재산분할 과정에서 벌어진 이동통신 특혜 및 '비자금' 논쟁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 있다.

SK 이혼 소송과 관련한 항소심 재판부는 지난달 30일 두사람의 재산총액(약 4조원)의 분할 비율을 최회장 65%, 노 관장 35%로 정했다. 노 관장의 몫을 1조 3800여억으로 정한 이유는 그의 부친인 노태우 전 대통령이 SK 그룹 성장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SK 측은 부인했지만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중 300억원이 최종현 SK 선대 회장에게 넘어갔고 이를 비롯해 노 전 대통령의 정치적 보호막이 SK 그룹 성장에 기여했다고 재판부는 봤다.

실제 그럴까? SK그룹이 통신사업에 관심을 가진 것은 1984년경부터다. 다가올 미래는 정보통신의 시대라는 것을 직감한 SK(당시 이름은 선경)는 미주 경영기획실 산하에 텔레커뮤니케이션팀을 두고 이 사업의 꿈을 키웠다. 그리고 1991년 대한텔레콤을 설립해 제2이동통신사업권 획득을 위한 전진기지를 만들었다.



노태우 정부는 당시 통신장비업을 하는 4대 그룹인 현대, 삼성, 대우, LG 등은 경제력 집중을 막겠다는 이유를 들어 제2이동통신사업권 입찰 참여를 제한했다. 이에 따라 통신장비업을 하지 않는 SK를 비롯한 포항제철, 코오롱, 동양, 쌍용, 동부 그룹 등이 입찰에 뛰어들었다.

1차 심사에서 SK그룹의 대한텔레콤(8127점)이 1위를, 코오롱그룹의 제2이동통신(7783점)과 포항제철 계열의 신세기이동통신(7711점)이 평균 이상의 점수를 획득해 2차 심사대상 업체에 올랐고, 최종엔 SK가 사업권을 획득했다. 당시 여야 할 것 없이 SK가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로 문제를 삼자 최종현 선대 회장은 1주일만에 제2이동통신사업권을 반납했다.

당시 "법에 따라 제2 이동통신사업권을 획득한 만큼 굳이 반납할 필요가 없다"는 SK법무실의 조언과 "여론이 좋지 않고 정권이 바뀌면 분명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기자들의 의견이 지배적이다"는 SK홍보실의 의견이 엇갈리자 최 선대 회장은 후자의 의견을 수용해 제2이동통신 사업권을 반납했다는 얘기가 항간에 돌았다.


사돈인 노 전 대통령이 SK 성장에 기여했다기보다는 오히려 SK가 역차별로 인해 어려움을 겪은 사례다. 기업이 정치권과 엮이면 이런 경우가 자주 있다. 2009년 하이닉스 인수전에 나섰다가 MB(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돈기업이라는 이유로 논란 끝에 인수의향을 철회했던 효성그룹도 비슷한 경우다. 효성이 놓친 하이닉스는 아이러니하게도 SK가 인수해 복덩이가 됐다.

SK는 김영삼 문민정부가 들어선 후 진행된 제2이동통신사업자 재입찰에도 참여하지 않았다. 사업자 선정 작업을 당시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맡겼는데 전경련 회장이 최종현 회장이어서 특혜시비를 우려해 포기한 것이다. 그 후 1994년 한국이동통신의 민영화 때 시세보다 비싼 4271억원에 인수한 것이 현재의 SK텔레콤이다.

이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2011년 발간한 회고록에도 나와 있다. 노 전대통령은 "제2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과정에 나와 청와대는 전혀 관여하지 않았는데 지금도 '사전 각본대로 움직였다'는 모함을 받고 있다"고 회고했다. 2심 재판부의 판단과는 다른 대목이다.

유공 인수도 마찬가지다. 유공 인수에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이 컸다는 주장들이 많다. 핵심 주장은 최동규 전 동력자원부 장관이 1999년 낸 에세이집에서 "지난 94년 골프를 치면서 전두환 전 대통령이 '그때 유공을 선경에 넘기도록 한 사람은 보안사령관인 노태우야. 나도 잘 몰랐어'라고 말한 걸 들었다"고 전한 대목이다. 당시 최고권력자였던 전 전 대통령조차 몰랐던 일을 뒤늦게 전해 들었다는 전언이다.

1970년대부터 정유사업 진출을 준비했던 SK가 유공을 인수한 것은 1980년이고, 최 회장과 노 관장이 결혼한 것은 그로부터 8년 후인 1988년 노 전 대통령이 취임한 그 해다. 결혼 8년 전에 미리 사돈 기업이 될 것을 감안해 밀어줬다는 얘기가 된다. 또 SK가 유공을 인수할 당시 노 관장은 10대(19세)였고, 최 회장을 만난 것은 그로부터 5년 후인 1985년 미국 시카고대 유학시절이니 시기적으로 밀어줬다고 하기엔 어색하다.

정치권 혼맥으로 몰아줬다고 주장할거면 오히려 중앙정보부장을 지낸 이후락씨의 3남 이동욱씨와 SK 창업자인 최종건 회장의 4녀 최예정씨의 사돈관계를 끌어들이는 게 더 그럴 듯해보인다. 이 또한 중정부장직의 경질 이후 10.26과 12.12 등 여러 변란으로 그럴 처지가 못된 것은 알려진 사실이다.

또 설사 노 전 대통령이 최 선대 회장에게 300억원의 비자금을 줬다하더라도, '그 돈은 우리 아빠 돈'이라는 노 관장의 논리도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비자금의 원출처는 '국민의 세금'이거나 '기업 자금'이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국민의 피 땀 흘린 세금이나 과거 정치권이 부당하게 기업에 압력을 가해 뺏은 돈을 '통치자금'이라는 명목으로 운영하다가 만약 빼돌렸다면 그 돈이 되돌아가야할 곳은 다른 곳이 아닌 원래 주인의 주머니다. 대법원 상고심 재판부가 법과 원칙에 따라 현명한 판단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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