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정신과 진료 없었어도 우울증 의심되면 자살 사망보험금 지급"

머니투데이 박다영 기자 2024.06.04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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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정신과 진료 없었어도 우울증 의심되면 자살 사망보험금 지급"


정신과 진료 기록이 없더라도 정신질환과 유사한 증상을 보이다가 극단적 선택을 한 경우 보험금 지급 대상에 해당한다는 취지의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A씨의 유족이 현대해상화재보험 등 보험사 5곳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지난달 9일 창원지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8년 2월 야근을 마치고 귀가해 안방 욕실에서 숨졌다. 수사기관은 A씨가 업무상 스트레스와 육아휴직 문제로 숨졌다고 보고 내사종결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업무상 사유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저하됐다며 A씨의 사망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A씨의 유족은 A씨가 보험을 들었 현대해상 등에 사망보험금을 신청했으나 보험사들은 '피보험자가 고의로 자신을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면책 약관을 근거로 보험금 지급을 거절했다.



이에 A씨 유족 "A씨가 면책사유의 예외에 해당한다"며 보험사들을 상대로 보험금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 계약 약관에는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경우'에는 면책약관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기재돼있다.

1심 재판부는 보험사 5곳이 보험금 1억8900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항소심은 이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항소심은 "A씨가 생전에 정신질환 진단 또는 진료를 받은 적이 없고, 사망 직전 우울증이나 공황장애 등 정신질환이 있었던 것으로 평가하는 의사의 진단서나 소견서 등이 없다"며 면책사유의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자살에 이를 무렵 주요우울장애를 겪고 있었고 이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사망에 이르게 됐을 여지가 없지 않다"며 다시 항소심 판단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원심은 A씨가 사망하기 전의 상태를 알 수 있는 객관적 자료, 유족 등 주변인의 진술 등을 비롯한 모든 사정을 토대로 A씨의 정신적 심리상황 등에 대한 의학적 견해를 확인하는 등의 방법으로 주요우울장애 발병가능성과그로 인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살에 이른 것인지 여부 등을 심리했어야 한다"고 밝혔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에 대해 "생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은 경우에는 그 증명이 없어 보험금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판결은 생전에 정신과 진료를 받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심리적 부검 등을 통해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심리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일보 진전된 판례로 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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