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T시평]식품사막

머니투데이 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2024.06.05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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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김성훈 충남대 농업경제학과 교수


요즘처럼 먹거리가 넘쳐나는 세상은 없다. 동네 마트에 가면 다양한 신선식품과 가공식품이 가득 진열돼 있고 주위를 둘러보면 다양한 음식을 파는 식당이 눈에 들어온다. 온라인 세상에서도 식품이 넘쳐나는데 온라인몰에 있는 식품을 손가락 터치 몇 번으로 주문하면 몇 시간 만에 문앞에 도착하는 시대다. TV나 신문을 봐도 비만과 식단관리에 관한 기사가 항상 지면을 장식하고 있어 먹거리를 못 구하는 문제는 남의 나라 얘기로 들린다.

'식품사막'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는 식품을 제공하는 상점이 인근에 없어 건강유지에 필요한 식품을 구할 수 없는 지역으로 마치 물이 없는 사막과 같이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지역이다. 식품사막이라는 말을 들은 사람 대부분은 아프리카나 중동 등의 오지를 머릿속에 떠올리겠지만 우리나라에도 식품사막이 이미 많다. 관련 통계를 보면 2020년 기준으로 전국의 2만8000여 농촌마을에 식품소매점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우리나라 전체 마을의 73.5%에 달하는 수치다. 즉 전국 농촌마을 10곳 중 7곳 이상이 식품사막에 해당하는 것으로 도시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슬슬 걸어가서 쉽게 사는 계란, 라면, 쌀 등을 이곳 주민들은 차를 타고 멀리 떨어진 지역까지 나가서 구해야 한다. 예전에는 자신이 사는 마을에 식품소매점이 없으면 옆 마을의 소매점을 이용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옆 마을에도 식품소매점이 없어 차를 타고 30분~1시간 운전해 나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전국적으로 차를 타고 1시간 이상 나가서 식품을 구매해야 하는 농촌마을은 파악조차 어렵고 그 숫자가 매년 늘어나고 있다.



식품사막 문제는 농촌지역의 인구소멸, 고령화 문제와 함께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인구가 갈수록 줄어들어 지역상권 자체가 소멸되는 농촌에 새로운 식품소매점이 들어설 리 없고 65세 이상 고령층이 스스로 차량을 몰고 식품을 구하러 쉽게 나갈 수도 없기에 식품사막 지역에 사는 사람은 심각한 영양학적 문제와 건강의 위협을 마주하게 된다.

농촌보다는 사정이 좀 낫지만 도시에도 식품사막이 확산하고 있다. 중소도시 중 구도심의 공동화가 진행되는 곳에서 식품소매점이 철수하면서 식품사막화가 진행되고 있는데 체력이 떨어져 오래 걷지 못하고 자동차 등 이동수단을 이용할 수 없는 고령취약계층은 이미 식품사막 속에 살고 있는 경우가 많다.



식품사막의 개념은 1990년대 영국에서 처음 도입된 후 많은 국가가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일본은 거주지 반경 500m 이내에 식품소매점이 없는 곳에 사는 노령층을 '장보기 약자'로 규정하고 지원방안을 도입하고 있고 미국은 주민의 3분의1 이상이 반경 800m(0.5마일) 이내에서 식품소매점을 접근할 수 없는 지역을 식품사막으로 규정하고 이들의 식품구매 여건을 개선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식품사막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일부 지자체와 지역공동체가 무인식품판매점을 설치하고 주기적인 이동판매사업을 시작해 사막의 '오아시스'가 되고 있으나 역부족이다. 식품사막이 우리나라 식품취약계층의 삶을 위협하는 상황에서 적극적인 대응이 요구된다.(김성훈 충남대학교 농업경제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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