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슈퍼 엔저는 지속될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06.0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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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지난 4월 일본 외환시장에서 1달러가 160엔을 돌파했다. 1990년 4월 이후 34년 만이다. 금년 초 140엔이던 환율이 가파르게 상승한 것이다. 6월 2일 현재 157.25엔이다. 일본 입장에서 엔저 현상은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고, 해외투자자들이 몰려들면서 주식시장에는 긍정적이지만, 그 정도가 지나쳐 지금과 같이 '슈퍼 엔저(低)'라 부를 정도로 과도해지면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작년까지 엔화 약세의 마지노선을 1달러당 150엔으로 봤지만, 금년에 160엔을 넘었다. 지금은 170엔도 갈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엔화 약세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5.25∼5.50%인 미국과 0∼0.1%인 일본의 엄청난 금리 차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금리 차는 매우 적었다. 때로는 0에 근접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이 2022년 3월 금리 인상을 시작한 이후, 양국의 금리 차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래 가장 큰 폭으로 확대됐다. 달러화 강세로 신흥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통화 가치가 급락한 가운데, 엔화는 올해 들어 달러 대비 10% 이상 떨어지며 가장 큰 하락 폭을 기록했다.



지난 3월 일본은 -0.1%였던 기준금리를 17년 만에 소폭 올리면서 8년간 이어오던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끝냈다. 그러나 추가 인상은 여러 가지 이유로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시장의 기대와는 달리 미국의 금리 인하도 빠른 시간 내에 쉽지 않을 거란 전망이 우세하다. 결국 5% 이상의 미·일의 금리 차가 상당 기간 유지된다는 의미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엔저의 장기화 예상으로 기업들이 수출대금이나 해외투자에 대한 배당금 등 외화자금을 일본으로 송금하지 않고 해외에 보유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환율 악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또한 슈퍼 엔저는 금리 차 이외에, 플라자 합의에 따른 후유증과 일본 정부의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많다. 지난 1980년대 초 일본은 높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니의 워크맨을 비롯한 수많은 전자제품을 미국을 비롯한 전세계에 활발하게 수출했다. 또한 석유파동이 일어나면서 연비가 뛰어난 토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의 인기가 높아졌다. 여기에 더해 그 당시 낮은 엔화 가치로 엄청난 대미 무역 흑자를 연이어 기록하자, 꾸준히 경상수지 적자에 시달리던 미국은 1985년 소위 '플라자 합의'라는 프랑스, 서독, 영국, 미국, 일본 등 G5 재무장관 회의를 통해 인위적으로 달러-엔 환율을 250엔에서 120엔으로 대폭 조정하여 일본의 수출 경쟁력을 무력화했다. 엔화 가치가 한순간에 2배 이상 올라가면서 일본은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플라자 합의를 '일본에 대한 미국의 경제적인 원폭투하'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 후 IT, 반도체, 자동차를 포함한 일본 경제의 주축이 붕괴되고, 장기 침체기에 들어가면서 심각한 디플레이션 상태에 빠졌다. 그런 상황에서 2000년대 후반부터 생산거점을 해외로 옮기는 off-shoring을 본격화하면서 수출은 늘지 않고, 무역수지 적자폭은 확대되었다. 심각한 경제 불황을 타개하고자 2013년부터 일본 정부는 대규모 금융완화정책인 '아베노믹스'를 시작했다. 아베노믹스는 돈을 무제한 풀어서 금리를 낮추고 엔의 가치를 아주 낮게 만들어서 기업들의 부담을 줄이고 수출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기업들의 실적이 좋아지고 투자도 늘어나고 임금도 올라가고 소비도 늘어나면서, 경제가 다시 살아날 것이라는 기본 프레임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다. 엄청나게 풀린 유동성 때문에 엔화의 가치가 급격히 떨어져서 기업들의 수출경쟁력이 생기기는 했지만, 장기간 경기침체를 겪은 기업들이 엔저로 발생한 이익을 미래를 위한 투자나 인건비에 쓰는 대신 비상금 상태로 회사에 쌓아 두기만 하면서 오히려 회사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점점 더 떨어지고 민간 소비는 더욱 둔화되었다. 또한 높아진 환율로 천연가스, 농산물 등 수입 물가가 폭등하여 실질소득이 줄어든 국민들은 상당한 경제적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심지어는 엔저로 해외에서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인한 갈등과 불편함을 겪는 오버투어리즘(overtourism)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아베, 기시다 정권이 10여 년 간 심혈을 기울인 아베노믹스의 결과는 엔저를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제의 선순환과는 거리가 먼 '값싼 일본'이 됐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일본 엔의 '실질실효환율(Real Effective Exchange Rate)'은 73 정도로 54년 전인 1970년 이후 최저치를 기록하며, OECD 회원국 중 가장 낮았다. 실질실효환율은 각국의 물가수준과 무역액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통화 가치를 나타내는 수치다. 수치가 낮을수록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가 하락했다는 뜻이다. 1995년에는 무려 200에 가까웠었다. 1/3수준으로 떨어진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 원화는 일본, 튀르키예, 노르웨이, 이스라엘에 이어 5번째로 저평가된 것으로 나타났다. 그래서 우리나라 대미 환율도 많이 높아졌지만 상대적으로 일본 물가가 더 싸진 것이다. 일본에 한국 관광객이 늘어나게 된 이유다.


과거엔 일본 기업들의 생산기지가 대부분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엔저는 일본 경제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 대외 가격경쟁력 강화로 기업들의 수출이 늘고 벌어들인 외화를 다시 엔화로 환전하는 과정에서 엔저 압력을 막아줬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대다수 기업들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옮기면서 수출 증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졌다. 오히려 수입 물가 상승으로 이어져 가계 소비와 기업 투자를 위축시키는 등 경제 부담만 키우고 있다. 저렴해진 엔화보다 달러화나 유로화 등 다른 통화를 선호하게 되면서 핵심 인재 및 자본의 해외 유출도 가속화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엔저로 인한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지면서 일본 정부의 엔화 가치에 대한 고민이 커지고 있다.

엔화 가치가 올라가려면, 무엇보다 먼저 일본은행이 금리를 대폭 올려야 한다. 또한 미국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내려야 한다. 동시에 일본 기업들의 경쟁력이 획기적으로 높아지고 산업구조도 바뀌어야 한다. 뭐하나 만만한 게 없다.



그러나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는 금리를 올리는 것에 극히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아베노믹스로 인한 막대한 국가부채 때문이다. 작년 일본 국가부채 비율은 252.4%로 OECD 국가 중 단연 최고다. 2위인 미국(122.1%)의 2배가 넘는다. 현재 세출의 30% 이상을 이자 등 국채 관련 비용으로 사용하고 있다. 여기서 금리가 인상되면 감당하기가 어렵다. 초저금리로 간신히 힘겹게 버티고 있는 '좀비기업'이 급속히 늘어난 것도 선뜻 금리를 올리지 못하는 이유다.

또한 부진한 다른 국가 경제와는 달리 홀로 잘나가는 소위 '미국 경제 예외주의(US Exceptionalism)' 상황이라 미국이 당분간 금리를 내릴 가능성도 크지 않다. 그렇다고 일본이 짧은 시간에 첨단기업을 육성하고, 혁신을 통한 생산성을 향상시킨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슈퍼 엔저가 지속되는 이유다.

일본이 직면한 딜레마는 여러 가지로 우리 경제에도 많은 시사점을 던져 주고 있다. 우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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