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라 볼수 없어"…제 발등 찍은 레미콘노조, 올해 파업 명분 뺏겨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4.05.31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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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노위 "노조로 볼 수 없어" 첫 공식 판단
"대법원 판단 뒤집을 수 없어...근로자 아닌 개인사업자"
'운송기사=특고노' 주장도 있지만...대리운전기사 '고용'하기도
운송노조 위원장, 사무처장, 본부장도 '고용주'
운송비 단체협상 판 엎어져...2년 전 셧다운 직전으로 몬 파업도 명분 뻇겨

2021년 6월 대구의 한 레미콘 제조 공장에 파업으로 발 묶인 레미콘 믹서트럭들이 주차돼 있다. 당시 믹서트럭 차주들은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사진=뉴스12021년 6월 대구의 한 레미콘 제조 공장에 파업으로 발 묶인 레미콘 믹서트럭들이 주차돼 있다. 당시 믹서트럭 차주들은 운송료 인상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했다./사진=뉴스1


전국레미콘운송노동조합(운송노조)을 노동조합법의 노조로 볼 수 없다는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노동위원회의 판단이 나왔다. 운송노조의 지위를 부정하는 첫 공식 결정이다. 운송노조가 한달 뒤로 예고했던 운송비 '단체협상'의 판 자체가 엎어졌고, 2년 전에 전국 공사장을 '셧다운' 직전으로 몰았던 파업도 할 수 없게 됐다.

31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 산하 레미콘 운송노조가 경기도 레미콘 제조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교섭요구 사실의 공고에 대한 신청'을 기각했다.



운송노조는 이달 초 수도권 레미콘 제조사들에 운송비 단체협상을 하자는 공문을 보냈다. 사측은 관련법상 노조의 교섭 요구를 받으면 그 사실을 사업장 게시판 등에 공고해야 하지만 하지 않았고, 운송노조는 경기지노위에 공고를 강제해달라고 신청했다.

하지만 지노위는 운송노조가 현행법이 정한 노조로 볼 수 없고, 단체협상 자체가 성립할 수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 운송노조 측은 "지노위가 '대법원 판단을 뒤집을 수 없다'며 신청을 기각했다"고 했다. 여기서 거론된 대법원 판단은 2006년에 있었다. 당시 대법원은 "레미콘 운송기사들을 노동조합법상 근로자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전국 레미콘 트럭의 85.9%(지난해 기준)는 레미콘 운송 '개인사업자'가 운행한다. 이들은 본인 명의의 레미콘 트럭을 갖고, 제조사들과 도급계약을 맺어 레미콘을 운반한다.

일각에선 운송기사들이 레미콘 제조사들에서 운반비를 임금처럼 받고 산업재해보상보헙법상에도 특수고용직으로 분류돼 근로자로 봐야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들 중에는 레미콘 트럭을 여러대 갖고 운전기사들을 고용한 기사들도 있어 이들의 노동자성을 순수히 인정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운송노조의 임영택 위원장을 비롯해 일부 본부장들도 자신 소유의 레미콘 트럭을 직접 운행하지 않고 대리운전기사를 고용했다. 지노위도 이들이 특수고용직 근로자보다 실제 사업자에 가깝다는 점을 결정에 반영했다. 운송노조는 "노동조합 업무와 레미콘 운반을 병행할 수 없어 벌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2년 전 셧다운 몰았던 '파업', 이제 못할듯..."개별교섭할것"
운송노조와 레미콘 제조사들은 2022년에만 2년치 운송비를 한번에 인상했고, 그전까지는 매년 운송비 단체협상을 했다. 제조사들이 교섭사실을 공고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올해는 운송노조가 행정기관의 조처를 구하다 노조의 지위를 부정당한 셈이 됐다.

운송비 단체협상의 판 자체도 엎어졌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단체협상을 할 지위를 잃었다"며 "당사와 계약된 운송기사들의 상조회와만 개별협상할 것"이라 말했다. 운송기사들은 제조사마다 상조회라는 단체를 운영한다.

협상 때마다 운송기사들은 파업 등 단체행동으로 운송비를 올려왔다. 2022년은 생존권사수결의대회와 파업으로 전국의 레미콘 공장들이 셧다운 직전까지 몰렸다. 올해는 파업할 명분이 없다. 다만, 운송기사들은 6월22일에 서울 여의도에서 운송비 인상을 요구하는 집회는 강행할 계획이다.

레미콘 제조사들은 지난해 시멘트(12%)와 골재(7~8%)의 가격 인상분을 레미콘 단가 인상(5.6%)에 온전히 반영하지 못해 운송비를 올려줄 여력이 없다고 호소한다. 최근 5년 동안 레미콘 운송단가는 48.3% 올라 레미콘 판매단가(33.8%)보다 인상폭이 크다.

운송기사들은 건설경기가 위축돼 레미콘 운반량이 줄면서 생계가 위협받아 운송비 인상이 절실하다고 호소한다. 레미콘 제조사 관계자는 "최근 골재 가격이 가파르게 올랐는데 레미콘 판매는 줄어 추가적인 운송비 인상을 감당할 수 없다"며 "현재도 어렵게 운영하는데 올해 운송비는 반드시 동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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