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경색 환자 63%는 골든타임 놓쳐"…10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다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5.31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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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병원, 9개 지역별 환자 14만4014명 비교 연구
지역 따라 병원 도착시간 격차 커
가벼운 뇌졸중> 기존 장애> 당뇨병> 고령 순 늦게 와

"뇌경색 환자 63%는 골든타임 놓쳐"…10년 동안 달라진 게 없었다


급성 뇌경색 치료의 핵심은 '골든타임'인 4시간 30분(4.5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급성 뇌경색 환자가 골든타임 내 병원에 오는 비율이 여전히 낮고, '병원 도착 지연'에 대한 지역 간 격차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 신경과 정근화 교수와 이응준 공공임상교수 연구팀이 2012~2021년 9개 행정 지역의 전국 61개 병원에서 치료받은 급성 뇌경색 또는 일과성허혈발작 환자 14만4014명을 대상으로 병원 도착 지연의 추세와 지역별 격차를 평가하고, 4.5시간을 초과하는 지연과 관련된 요인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이번 연구에서 환자의 '병원 도착 지연'은 증상 발현 시간부터 병원 도착 시간까지의 시간으로 정의했다. 4.5시간(270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의 비율이 주요 지표로 사용됐다.

그 결과, 병원 도착 지연의 중앙값은 460분이었으며, 4.5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한 환자는 36.8%에 불과했다. 63.2%가 늦게 온 것이다. 병원 도착 지연 시간은 2016년에 429분으로 가장 짧았으나, 이후 소폭 증가해 그 수준을 유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변화 추세에 통계적 유의성은 관찰되지 않았다. 즉, 뇌경색 치료의 핵심인 환자의 '빠른 내원'과 관련된 병원 도착 지연은 지난 10년간 개선되지 않았다.
병원 도착 지연(>4.5시간)과 관련된 요인들. /자료=서울대병원병원 도착 지연(>4.5시간)과 관련된 요인들. /자료=서울대병원
또 병원 도착 지연 시간의 지역별 격차는 지니계수(Gini coefficient)가 0.3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높은 불평등'이 지속해서 관찰됐다. 지니계수란, 소득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0은 '완전 평등', 1은 '완전 불평등'을 뜻한다.



연구팀이 지니 계수를 사용해 지역 간 병원 전 단계 소요 시간의 격차를 평가한 결과, '지역 간 불균형'이 0.3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지속해서 유지됐다. 이는 병원 도착 지연 시간에 있어 상당한 수준의 지역 간 격차가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높은 불평등에는 응급의료 서비스와 자원의 분포, 지역별 교통 상황, 의료 인프라 접근성 등 다양한 요인이 영향을 미치며,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지역별 맞춤형 대책과 자원 배분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뇌졸중 환자의 지역별 4.5시간 이내 병원 도착 비율. (전북은 KSR 참여기관 없어 제외함)/자료=서울대병원뇌졸중 환자의 지역별 4.5시간 이내 병원 도착 비율. (전북은 KSR 참여기관 없어 제외함)/자료=서울대병원
병원 도착 지연의 지역 간 격차 흰색(낮음), 중간(연회색), 높음(회색), 극심한 불평등(진회색). /자료=서울대병원병원 도착 지연의 지역 간 격차 흰색(낮음), 중간(연회색), 높음(회색), 극심한 불평등(진회색). /자료=서울대병원
병원 도착 지연에 독립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경미한 뇌졸중 증상(1.55배), 기존 신체적 장애(1.44배), 당뇨병(1.38배), 65세 초과 고령(1.23배), 흡연(1.15배), 고혈압(1.12배), 여성(1.09배) 순으로, 이 요인들을 가진 환자들이 골든타임 이내에 병원에 오지 못할 위험성이 높았다.

반면, 과거 뇌졸중 또는 일과성허혈발작 및 관상동맥 질환의 병력이 있는 경우, 심방세동을 진단받은 경우, 외래진료와 비교해 응급실을 통해 내원한 경우, 지역 내 인구 10만 명당 구급차 수가 많은 경우에는 4.5 시간 이내에 병원에 방문할 가능성이 높았다.


한편, 병원 도착 지연이 4.5시간을 초과한 환자들은 기능적 독립성(수정랭킨척도 0~2)을 갖추고 퇴원할 가능성이 작았다. 즉, 4.5시간 이내에 병원에 방문하면 뇌경색 입원 치료 후 퇴원 시에 독립적 일상생활이 가능한 것과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뇌경색 증상 발생 후 4.5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야만 시행할 수 있는 정맥 내 혈전용해술 치료를 받은 환자의 비율은, 2014년 9.2%에서 2021년 7.8%로 줄어들었다. 이는 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환자가 적절한 시간 내에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병원 도착 지연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악화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했다.

(사진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신경과 정근화 교수, 이응준 공공임상교수. /사진=서울대병원(사진 왼쪽부터) 서울대병원 신경과 정근화 교수, 이응준 공공임상교수. /사진=서울대병원
정근화(신경과) 교수는 "병원 도착 지연에 지역 간 격차가 크다는 것은 전국 어디에 거주하더라도 동일한, 높은 수준의 뇌졸중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뇌졸중 안전망' 구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라며 "격차를 해소하려면 이번 연구에서 확인된 병원 도착 지연과 관련된 요인을 기반으로, 일반인 대상의 교육·홍보뿐만 아니라 취약 계층 및 각 지역의 특성에 기반한 맞춤형 정책을 통해 뇌경색 발생 환자들의 병원 방문까지 소요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특히 오히려 뇌경색 증상이 가벼울수록 병원 방문까지 소요 시간이 길었다는 것은 환자들의 뇌졸중에 대한 인지도가 아직 낮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앞으로 국민 뇌졸중 인지도 제고를 위한 연구를 지속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는 질병관리청 및 대한뇌졸중학회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유럽 뇌졸중 저널(European Stroke Journal)' 최근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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