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일씨가 이슬람 과격단체 '유일신과 신앙'에 살해당하기 전 찍힌 마지막 장면이다./사진=MBC '뉴스투데이'
그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약 400㎞ 떨어진 미군 기지 '리브지 캠프'에 물건을 배달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김 씨를 납치한 단체는 잔인하기로 악명높은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 단체 '알 타우히드 왈 지하드(유일신과 성전)'.
국민은 큰 충격에 빠졌다. 혹자는 당시를 '대한민국에서 9.11사건 정도 급의 테러가 발생한 것과 같은 사건이었다"고 회상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가 전쟁 중이던 2003년3월21일 공습을 당한 직후 찍힌 사진이다. /사진=로이터
이런 이라크에 김 씨가 미국과 전쟁 중이었던 이라크에 어떤 이유로 갔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아랍어과를 졸업한 뒤 동시 통역대학원에 진학하고 싶어 했던 그가 학비를 벌기 위해 미군 군납업체 가나무역에 1년 계약직으로 들어가게 됐다는 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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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 선교를 하기 위해 이라크에 갔다는 정황도 있다. 그가 가나무역 입사를 위해 작성한 자기소개서로 알려진 글에는 '중동선교에 대한 비전을 품게 됐다', '영어와 아랍어와 미용 기술로 복음으로 다가가겠다' 등 표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김 씨는 한 인터넷 카페에 올린 자기소개 글에 장래 희망을 '중동선교사'라고 적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그 인터넷 카페는 폐쇄됐다.
이러한 정황들을 고려했을 때, 김 씨의 이라크 방문은 '학비를 마련할 겸, 중동에 선교하기 위해서'라고 보는 견해가 대부분이다.
무장단체, '한국군 철군 요구'… 구조에 최선 다했지만
외교통상부 관계자가 언론에 김선일씨가 2004년6월22일 오전8시쯤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하고 있다./사진=MBC 뉴스
이 영상엔 김씨가 "한국 군인들! 제발 여기를 떠나세요. 저는 죽고 싶지 않습니다. 저는 살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명은 소중하고, 제 생명도 중요합니다"라며 절규했다.
'유일신과 성전'이 내건 김 씨의 석방조건은 '24시간 안에 한국군을 이라크 아르빌에서 철수시키고, 더 이상의 군대를 보내지 말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김 씨를 참수할 것이라며 협박했다.
청와대는 모든 정보력을 동원해 김 씨의 신병을 확보하는 데 전력을 다했다. 최영진 당시 외교 차관을 반장으로 한 긴급 대책반을 가동했고, 국외 테러 대책본부를 설치했다.
또 장재룡 당시 외교부 본부대사 등이 현지에 파견됐고, 반기문 외교부 장관도 알자지라 방송에서 직접 출연해 김 씨의 석방을 호소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고심 끝에 '파병 철회는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공표했다. 정부는 2004년 6월18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에서 정부는 자이툰부대의 이라크파병을 본격적인 궤도에 올린 바 있었다.
6월22일. 바그다드에서 35㎞ 떨어진 지점에서 김 씨의 시신이 발견됐다. 유일신과 성전이 공개한 테이프엔 김 씨가 살해당하는 모습이 그대로 공개됐다. 국민들은 어떻게 김 씨가 피랍된 지 20여일이 지난 6월21일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된 건지, 자국민을 끝까지 보호하지 못했는지 등에 대한 책임을 정부에 돌렸다.
또 김씨가 이미 사망한 이후 정부 대책반이 뒤늦게 협상을 위해 요르단에 도착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한국의 부실한 해외정보력이 도마에 올랐다.
물론 김 씨 피랍 사실을 대사관 측에 알리지 않고 자체 해결하려고 했고, 뒤늦게 한국 대사관에 접촉했을 때 그의 피랍 날짜를 여러 차례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한 모습을 보인 가나무역 사장 김천호 씨에게도 일부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선일 씨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재외 국민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지만 패소했다.
전 국민 충격과 분노…그 이후의 이야기들
외교부는 2007년부터 이라크를 여행금지 구역으로 지정했다./사진=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캡쳐
김 씨를 살해한 유일신과 성전의 지도자인 아부 무사브 알 자르카위는 2년 후 미군에게 사살됐다.
그가 사살된 뒤 유일신과 성전의 세력이 크게 약화했지만, 3대 수장인 아부 바크르 알바그다디(1971~2019)가 새로운 세력을 규합하는데, 그들이 바로 IS다.
이들은 인질을 사로잡고 참수하는 영상을 공개하는 수법을 사용하는데, 이건 IS의 전신인 유일신과 성전이 사용하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김 씨 사망 사건을 계기로 연중무휴 24시간 운영되는 영사콜센터가 그해 11월15일 문을 열었다.
또 외교부는 2007년부터 이라크를 여행금지 최고 단계 구역(흑색 경보)으로 지정했다. 이라크를 여행할 예정인 사람은 여행금지를 준수해야 하고, 체류하고 있는 사람은 즉시 대피하거나 철수할 것을 권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