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감독과 명배우들이 만든 세월호 영화…"사람과 사랑의 이야기"

머니투데이 대담=황종덕 부국장, 정리=조철희 기자 2024.05.3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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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봉작 <목화솜 피는 날> 박원상·우미화 배우, 신경수 감독 인터뷰…세월호 선체 내부 최초 촬영 극영화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배우 우미화, 배우 박원상(왼쪽부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배우 우미화, 배우 박원상(왼쪽부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 90분.

· 슬프다는 핑계로 외면했던 그날의 기억을 마주할 수 있는 영화. 무던한 태도로 마주보는 세월호 참사 이후 10년, 남겨진 이들의 기억.

· 마냥 마음이 아플 줄만 알았는데, 슬픈 장면들 못지않게 미소 짓게 하는 장면들도 있어서 좋았습니다.



최근 개봉한 영화 <목화솜 피는 날>에 대한 일반 관객들의 관람평이다. 4·16 세월호 참사를 다룬 장편 극영화로 세월호 선체 내부 촬영 등 여러 화제와 함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다양한 영화·드라마 작품에서 매력적인 연기를 선보여 온 배우 박원상과 우미화가 주연해 더욱 눈길을 끈다. <육룡이 나르샤>, <녹두꽃>, <소방서 옆 경찰서> 등 여러 흥행 드라마로 알려진 '스타 PD' 신경수 감독이 연출했다. '대중적인' 감독·배우 조합의 결과로 '무거운 소재와 주제이지만 무겁지 않게 이야기를 따라가면서 감동과 흥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관람평이 잇따른다.

세월호 소재의 드라마를 구상하던 신 감독에게 영화사와의 협업 기회가 생겨 전격적으로 영화가 만들어졌다. 신 감독은 특히 세월호 선체 내부를 촬영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제작을 서둘렀다. 박원상, 우미화에 이어 최덕문, 조희봉, 김하균, 정규수, 이준혁 등 관객들에 친숙한 명배우들이 신 감독과 의기투합, 대거 출연하면서 영화는 더욱 풍성해졌다. 배우들의 앙상블은 영화 소재의 무거움을 분산시키면서 관객들이 좀더 편하게, 넓은 시야로 스크린을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로 둘째 딸을 잃은 병호(박원상)·수현(우미화) 부부가 아픈 기억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병호는 기억에 집착하다 오히려 단기 기억 상실이 오고, 수현은 딸에 대한 기억을 자꾸 외면하려는 엄마가 된다. 병호는 어느 날 무작정 세월호 선체 안으로 향하고, 수현도 남편을 찾아 선체에 뒤따른다. 병호가 기억을 되찾는 여정이 그려지고, 버스기사(최덕문)나 진도 어민(조희봉) 등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도 이야기에 담긴다.

우미화는 이 영화가 사람과 사랑에 대한 영화라고 했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이야기"라며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 영화 같은 이야기가 나올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원상은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땐 따뜻함, 희망, 그리고 어쩌면 개운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제작진의 진심이 닿아 관객들이 극장으로 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29일 서울 종로구 머니투데이 본사에서 신 감독과 두 배우를 만나 관객들과 공감하고 싶은 <목화솜 피는 날>의 여러 이야기를 들어봤다.





<목화솜 피는 날>은 '기억'에 대한 영화입니다. 앞으로 세월호를, 이 영화를 떠올리며 기억하는 분들이 계실 것 같습니다. 이 영화와 세월호의 기억에 대한 의미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원상 = 오늘 아내가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고 하더군요. 트라우마 같은 기억인데다 10년이 지났기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고 합니다. 저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안함을 느끼기 위해 이 영화를 보는 게 아니라 10년 동안 흐릿해진 기억을, 이 영화를 보면서 다시 잘 기억했으면 좋겠다고요. 그게 바로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작업을 하는 이유라고요.


기억한다는 게 중요한 것 같습니다. <목화솜 피는 날>이 마중물이 돼 다양한 시선들로 그날을 기억하고 이야기를 풀어보는 시도가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많은 관객들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짧고 굵게 만나도 좋겠지만, 가늘고 길게 만나도 좋겠습니다.(웃음)

▶우미화 = 아프고 슬픈 이야기일 거라는 생각하는 분도 계시겠지만 이 영화에 아픈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요, 지난 10년 동안 마음을 함께했던 시민들의 이야기도 있어요. '잊지 않고 그날을 기억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영화예요. 이번에 유가족들을 가까이 뵈면서 머리로만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신경수 =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선체 내부를 볼 수 있는,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그곳을 계속 기억할 수 있는, 유일한 영화 작품이자 기록입니다. 세월호 선체 내부에서 촬영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촬영도 빨리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선체에 들어갈 수가 없게 됐습니다. 선체 내부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을 강요하지 않는다', '담담한 태도다' 등의 관람평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여러 관객들이 일반적인 영화를 볼 때와 같은 분위기로 관람을 할 수 있다고도 말합니다. 극영화이지만 소재의 특수성 때문에 다큐멘터리처럼 보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불식시켰다는 평도 있습니다.


▶신경수 = 극장 안에서 많이 울면서 보고 나서, 극장 밖으로 나가면 감동을 금방 잊게 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습니다. 최대한 담백하고 담담하게 그려서 관객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고 계속 생각할 수 있는 영화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먼저 슬프지 말자'고 배우들과 함께 다짐했습니다.

등장인물들을 신파적인 홈드라마의 단조로운 캐릭터로 그려서는 고정관념과 뻔한 인식을 뛰어넘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병호는 다른 유가족과 싸우기도 하고 좌충우돌하는 인물로, 수현은 세상을 떠난 자식을 추모하는 엄마가 아닌 외면하는 엄마로 만들었습니다. 상상 속에서 윤리적으로 신성시되거나 혹은 악마적으로 여겨지는 인물이 아니고 정말 보통의 우리이기를 바랐습니다.

<목화솜 피는 날>에서 버스기사 역을 연기한 최덕문(왼쪽)과 진도 어민 역의 조희봉<목화솜 피는 날>에서 버스기사 역을 연기한 최덕문(왼쪽)과 진도 어민 역의 조희봉


배우들의 앙상블이 대단합니다. 친숙한 배우들이 잇따라 등장해 반가웠습니다. 모두 흔쾌히 출연하게 된 것인지 궁금합니다. 세월호 소재 작품 출연에 혹시 부담은 없었는지요.


▶신경수 = 모든 배우들께서 흔쾌히 출연에 응해주셨습니다. 예전에 드라마 <녹두꽃>을 연출할 때도 캐스팅이 어렵지 않았습니다. 동학농민운동 소재 드라마였는데, 우리가 알아야 할 이야기이기 때문에 다들 하겠다고 했습니다. 연출자, 작가, 배우 모두 목말라하던 이야기였던 것이죠.

▶박원상 =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의미 깊은 작품을 만든다는 하나의 목표를 함께 바라봤기에 배우들 간의 조화가 매우 좋았습니다. 신경수 감독과 우미화 배우와는 작품으로 만난 게 처음인데 전혀 어색한 게 없었습니다. 이준혁 배우는 당초 캐스팅에 없었는데 깜짝출연해서 놀랍고 반가웠고, 황영희 배우도 작품에 참여하고 싶다며 라디오 진행자 역할로 목소리만 출연했습니다. 목소리만 함께하는 게 미안하다며 회식비를 보태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배우, 스태프들이 십시일반 한 작품이었습니다.

▶우미화 = 세월호 참사 이야기라고 해서 배우로서 선택하기가 어렵다거나 그렇지 않은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배우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사람, 이야기를 만드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하는 것일 뿐입니다.

▶박원상 = 맞습니다. 배우는 이야기꾼입니다. 이야기는 다양해야 합니다. 배우 역시 여러 가지 모양과 특색의 백양(百樣) 백색(白色)이어야겠죠. 세월호는 정치적 시선에서 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의 시선에서 보아야 하죠. <목화솜 피는 날>은 세월호 참사를 차분히, 온전히 바라볼 수 있는 영화입니다. 세월호에 억지로 들어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직접 볼 수 없는 선체를 영화를 통해 천천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감정 절제 등 연기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다른 영화들에 비해 촬영이 매우 빠르게 진행됐다고 들었습니다.


▶박원상 = 직업 배우이니 작업하는 과정은 별로 다르지 않았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이지만 지나고 나서 보니 그 짧은 촬영 회차에 완성을 해야 한다는 게 <목화솜 피는 날>의 병호를 연기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좋은 환경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여유가 있었다면 촬영 없는 날에 내가 감당하지 못하는 게 아닌가 하는 등의 불필요한 고민이나 걱정을 했을 겁니다. 해야 할 작품인 건 분명한데 내가 할 수 있을지 감당할 수 있을지 고민했을 겁니다. 그런 고민들을 했다면 불필요한 에너지 손실이 컸을 거 같습니다. 8회의 촬영 회차라곤 하지만 모두가 십시일반 했기 때문에 현장에 불필요한 것들이 없었습니다.

▶신경수 = 송중기 배우는 예고편만 보고도 '이게 8회차 촬영 영화라고요?' 하고 놀랐습니다.(웃음)

▶우미화 = 배우로서 수현에 접근하는 데는 어려움이 좀 있었어요. 연기는 답이 없지만 그 슬픔, 아픔, 지난한 삶을 어떻게 담아낼 수 있을까, 불가능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리고 유가족분들에게 누가 되면 안된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여러 생각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처음 생각했던 건 내가 울지는 말아야겠다는 거였어요. 우미화 개인이 울어서는 안된다는 생각, 가장 경계하면서 출발했습니다.

작품 속에서도 수현이 아픔을 드러내는 장면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저 밑 어딘가에 그것을 밟아 놓고 견디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겠구나 싶었어요. 현장에서 울컥할 때가 있었지만 우미화가 우는 것 같은 생각이 드는 순간 죄스러웠습니다. 복받칠 때가 있었죠, 선체에 들어가면서도 감정이 올라왔어요. 선체에 유튜버와 다투는 장면에선 분노하고 울분이 많았었는데 감독님이 조금 눌러서 가보자고 하셔서 한 번 더 촬영을 했었죠.

스타 감독과 명배우들이 만든 세월호 영화…"사람과 사랑의 이야기"


영화 개봉 초기 극장을 찾은 관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이제 앞으로 계속 극장을 찾아줄 관객들에겐 어떤 공감을 제안하고 싶습니까.


▶신경수 = 용기를 얻었다, 묵은 감정이 풀렸다, 위안을 받았다고 말씀해 주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병호가 수현에게 '눈물 나면 눈물 나는 대로 살아'라는 대사가 있는데, 그 대사처럼 살겠다고 말씀하신 분도 계세요. 이 영화 하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큰 아픔이 있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이 영화를 보고 어떤 해소의 경험 같은 것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왜 이렇게 힘든 걸 또 봐야 하나, 이런 생각은 안해도 됩니다.

▶박원상 = GV(Guest Visit·관객과의 대화)를 하면 분위기가 무겁기는 합니다. 애써 객쩍은 소리를 해서 웃음을 끌어내려고 해도 쉽지 않긴 해요. 일반 관객, 불특정 다수를 만나기에 어려운 일인 겁니다. 어떻게 많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모실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진심이 닿기를, 그래서 관객분들이 움직여 주시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목화솜 피는 날>을 보러 극장에 가고 싶은데 망설이는 분들에겐 조금만 용기를 내 찾아오시면 영화를 보고 극장을 나설 땐 따뜻함, 희망, 그리고 어쩌면 개운함 같은 것도 느낄 수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가늘고 길게 오래도록 관객들이 <목화솜 피는 날>을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외면하는 건 결코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시선만 거둔다고 해서 있는 게 사라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정면에서 마주 대하는 게 가장 건강하고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요. 목포신항에 있는 세월호도 늦지 않게 제자리를 찾아서,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찾아와 볼 수 있다면, 특히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사회가 건강해지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 큰일을 겪고도 우리에게 남는 게 없이, 다음에 똑같은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일은 제발 없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우미화 = <목화솜 피는 날>은 서사의 힘이 강한 작품입니다. 아프게만 보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저는 계속 우리 작품은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하고 다녀요.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이런 이야기가 나올 수 없어요.

마음으로 만든 이 영화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위안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작게나마 느끼신 것 같아서 그게 너무 감사했어요. 유가족들의 바람은 결국 우리 사회가 안전한 사회가 되는 것 아닐까요. 안전한 사회는 누구 한명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주위 친구나 지인들이 영화 관람 인증샷을 저에게 보내면서 '고맙다', '나도 잊고 있었어'라고 하는데, 앞으로 계속 여러 관객들이 <목화솜 피는 날>을 보면서 이런 마음을 갖겠구나 싶어 영화에 참여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경수 = 3가지 바람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선 세월호 유가족분들이 이 영화를 통해 위안을 받으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일반 시민들이 미안해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배우는 사람들에게 <목화솜 피는 날>이 세월호를 소재로 하는 영화 중에 꼭 봐야 할 작품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배우 우미화, 배우 박원상(왼쪽부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영화 <목화솜 피는 날> 신경수 감독, 배우 우미화, 배우 박원상(왼쪽부터) /사진=이기범 기자 lee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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