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푼돈'만 쓰고 반도체 기술 빼가는 중국 기업…반복되는데 왜 못 막나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이강준 기자 2024.05.28 04:40
글자크기
/그래픽 = 이지혜 디자인기자/그래픽 = 이지혜 디자인기자


중국 기업들의 한국 반도체 업체 기술 빼가기 시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중국 기업들이 자체 연구개발에 힘쓰기보다 선발업체 인력을 포섭하는 데 주력하고 있는 것이다. 반도체는 국내 수출1위 품목으로 반도체 기술 보안은 곧 국내 전체 산업경쟁력과 직결된다. 최근 인공지능(AI) 열풍으로 고대역폭메모리(HBM)·파운드리(위탁 생산) 2나노 공정 등 첨단 반도체의 중요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기술유출 행위에 대해 더 강력한 처벌 기준을 세우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례는 반복될 것이라고 업계는 지적한다.

반도체 업종의 기술 유출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첨단 기술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다. 중국 기업은 최근 몇 년간 5나노 이하 선단(첨단) 공정과 메모리 기술 투자를 늘려 왔지만, 여전히 기술 수준은 국내 기업과 격차가 크다. AI 서버에 사용되는 HBM의 경우, 중국 기업은 이제 막 2세대 제품을 내놨지만 우리 기업은 4~5세대를 넘어 6세대 제품 개발에 투자하고 있다.



적은 비용으로 고급 기술을 쉽고 빠르게 확보할 수 있는 기술 탈취에 눈독을 들일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중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의 임직원을 스카웃하면서 도움이 되는 고급 정보를 요구하는 대신, 높은 직위와 금전적 보상을 약속한다. 반도체업계 핵심 관계자는 "공정 기술 개발에 필요한 수백억~수천억원의 비용에 비하면 이들에게 주는 수억~수십억원은 푼돈"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단속이 불가능하다는 점도 문제다. 반도체 업종 특성상 국내는 물론 해외 사업장과 계열사, 협력업체 등 유출 경로가 너무 많아 기업이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 여기에 전직 임직원들이 포함되면 범위는 더 넓어진다. 이직을 했는지, 누구와 만나는지, 어느 나라로 갔는지도 파악이 안 된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기업의 팹(공장)에 근무하는 직원을 노리는 브로커들도 적지 않다. 이번에 기술유출 혐의로 경찰에 붙잡힌 SK하이닉스의 전직 팀장급 직원도 상대적으로 감시가 덜한 해외 법인에서 근무하다 화웨이로 이직한 사례다. 국내 기업이나 수사기관의 입장에서 사각지대라고 할 있는 상하이에서 3000페이지가 넘는 반도체 공정기술이 새나갔다.

마지막으로는 처벌 수위가 여전히 낮다는 점도 기술유출을 조장하는요인으로 꼽힌다. 지난 3월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반도체 기술을 유출하면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도록 하는 양형기준을 최종 의결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의 처벌에 그치는 사례가 많다. 지난 10일에도 국내 기업의 반도체 웨이퍼 제조 관련 핵심 기술을 중국 상하이에 유출한 산업 스파이 4명은 법원으로부터 징역 1년~2년 6개월을 선고받는 데 그쳤다.

톱니바퀴가 헛도는 사이 기술 유출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산업부에 따르면 지난해 반도체 분야 산업기술 국외유출 건수는 15건으로, 최근 5년간 가장 많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위원은 "마이크론으로 HBM 기술을 유출해 벌금을 부과받은 사례를 보더라도, 개인에게는 큰 금액일 수 있으나 (유출 기업이) 대납을 하면 부담이 아닐 수 있다"며 "양형 기준을 높여 '기술 유출을 하면 나에게 불이익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