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샌디는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작은 개였다. 10살 생일을 앞두고 있었다. 기념으로 여행도 앞두고 있었다. 신나게 놀며 축하해줄 참이었다. 아침에 눈 뜨면 발밑에 누워 있던 강아지. 샌디 보호자의 말마따나 '내 수명의 절반을 나누고 싶을 만큼' 끔찍이 아꼈던 강아지. 그런 가족이었다.
그날 79세 할아버지(샌디 보호자의 아버지)가 샌디와 산책을 나섰다. 용마산 산책로를 따라 경기도 구리시에 있는 시루봉 인근까지 걸어갔다. 매일 다니는 산책 코스였다.
샌디 보호자의 아버지, 79세 할아버지가 반려견 샌디와 용마산을 산책하다 앉아서 쉬었다는 바위 모습./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바로 그때였다. 산 어딘가에서 개 2마리가 샌디에게 죽일듯이 달려들었다. 샌디는 무서워 도망갔다. 개들은 샌디를 빠르게 쫓았고, 물려가다시피 사라졌다. 놀란 할아버지는 샌디를 구하려 쫓아가려다 넘어져 다쳤다. 순식간에 실종된 뒤였다. 사건이 발생한 등산로 아래쪽은, 구리 아치울마을 방향이었다고 했다.
10년 생을 함께하고 황망하게 떠난 샌디가 남긴 흔적들./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우중에도, 혼절 직전의 상황에서도 가족들은 샌디를 찾아 나섰다. 3일 동안 샌디 가족, 지인, 이웃, 사단법인 유행사(유기동물 행복 찾는 사람들) 봉사자들까지 동원됐다. 실종 전단을 붙이고 산속을 계속 헤맸다.
샌디를 화장하기 전 나눴을 마지막 인사.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는 상황에서 얼마나 많이 울었을까./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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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로 며칠을 비 맞으며 추운데 우릴 얼마나 기다렸을까. 심장이 찢어지는 것처럼 아팠어요. 샌디에게 너무너무 미안했어요. 집안엔 여전히 샌디의 흔적, 체취가 가득한데…"
5월 4일에 시간이 멈췄다던 샌디 보호자의 말이었다. 그는 샌디의 가장 좋은 언니이기도 했다.
그날, 그 산에 '사냥개'가 풀려 있었다
샌디가 좋아하던 간식과 장난감, 그리고 유골함. 행복했던만큼 아팠을 거였다./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그런데 샌디를 찾던 도중에 등산로 아래쪽에 서너 마리 개들이 모여 있는 걸 목격했다. 인근 아치울 마을 주민들에게 물으니 "멧돼지를 포획하는 사냥개들"라고 했단다. 대부분 이에 대해 잘 아는 분위기였다.
가지고 와서 안 주고, 안 주면서 장난감을 던져 달라던, 샌디와의 행복했던 추억./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샌디 가족들이 관할 지자체인 구리시청에 문의했다. 구리시 환경과 담당자는 멧돼지 포획을 위해, 그날 사냥개를 풀었던 건 인정했다. 그러나 포획단 사냥개들이 활동한 동선, 위치, 시간 등을 감안했을 때, 사냥개가 한 일이 아니라 했다. 들개로 추정된다고 했다.
공원에서 바람을 쐬다 웃는 샌디 모습./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아버지가 샌디와 매일 산에 가시고, 3~4년을 다니시는데 들개를 보셨다고 한 건 한 번도 없었거든요. 그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주민에게 알리지도 않고 사냥개를 주말 대낮에 풀었다는 거예요. 미리 알았다면 산에 안 갔을텐데…사냥개들이 사람을 해칠 수도 있는 건데 너무 황당합니다."
또 지난 1월에, 사냥개가 등산로 인근을 돌아다니는 걸 목격했단 이들이 찍었다는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냥개인 걸로 확정 지을 순 없으나, 산을 돌아다니는 개가 있는 모습이 찍혔다.
구리시 "사냥개가 했다는 근거 없어, 들개 소행으로 추정"
반려견 샌디가 죽은, 구리시 용마산 등산로 인근에서 사냥개가 돌아다니고 있어 주민이 찍었다는 사진. 사냥개인지 들개인지는 명확히 확인되지 않았다./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들개 소행'으로 추정한 이유에 대해선, 멧돼지 포획단 사냥개가 아닌 걸로 보여서라고 답했다.
2013년 12월에 사살된 멧돼지, 사냥한 사냥개.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사진=뉴시스
그럼에도 이를 확실히 밝힐 물증이 부재한 상황. 사냥개에 통상 다는 GPS로 당일 동선 기록을 살피면 되지 않느냐고 묻자, 관계자는 "안타깝게도 기계가 비에 맞아 작동이 안 돼, 그날 포획단이 사용을 못 했다고 했다"며 "GPS 역시 장착 의무는 아니"라고 했다.
토요일 대낮에 사냥개 풀어놓은 문제…고지나 출입 통제 없어
지난 2012년 8월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창덕궁에 나타난 멧돼지 한마리가 포획된 모습. 소방서가 멧돼지 출현 신고를 받고 12명의 소속 대원들을 급파했고 사냥개를 이용해 멧돼지를 잡았다.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뉴스1
다만 향후 관련 사고를 막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게 있어 보였다.
멧돼지 포획을 위해 4일 2시간 동안 풀었다던 사냥개. 활동 장소는 등산로가 아니라 했으나, 동선상 주민들이 다니는 길과 겹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구리시 관계자는 "사냥개를 등산로에서 풀어 놓은 건 아닌데, 거기까지 날아갈 순 없으니 등산로를 지나갈 순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2015년, 포항에서 유해조수포획기동반이 사냥견과 함께 농작물 피해를 입힌 멧돼지 포획에 나서는 모습. 기사 내용과는 무관함,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사진=뉴스1
그런데 포획단 활동과 관련해 안전을 위한 구체적인 매뉴얼은 없었다. 어느 시간대에 해야 하는지, 한다면 주민들이 조심할 수 있게 알아야 하는데 관련해 알리거나 주민 출입을 통제할 의무도 없게 돼 있었다.
구리시청 관계자는 "(그런 매뉴얼이 있었다면) 입산 통제 등을 했을 텐데 그런 게 없었다. 지금까지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면 고민했을 텐데 그동안 없었고, 이번 기회를 계기로 사냥개 활동, 홍보, 통제 등에 대한 부분도 고민해보겠다"고 했다.
대구 북구청, 사냥개 반려견 습격 사고 후 "낮 시간대 포획 못 하게 해"
2019년 2월, 북한산에선 멧돼지를 잡기위해 풀어놓은 사냥개가 주민의 반려견을 물어 죽이는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사고 후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진 럭키./사진=뉴스1
2021년 11월엔 대구 북구 함지산 근처 산책로에선 반려견과 산책하던 부부가, 사냥개의 공격을 받았다. 사냥개는 반려견 목을 물어뜯었다. 이후 발견했을 땐 반려견의 숨이 끊어져 있었다.
관할 지자체인 대구 북구청은 이후 사냥개를 포함해 멧돼지 포획 관련 매뉴얼을 정비했다. 북구청 관계자가 말했다.
"주간엔 사냥개를 안 보내고 야간 위주로 하는 걸로 바꿨습니다. 사람 없는 지역에서 풀도록요. 그것도 안전하게 목줄을 끌고 다니며 멧돼지를 쫓을 용도로만 하게 매뉴얼을 만들었고요. 주간에 급박한 상황이 생기면 119나 경찰쪽에 요청해 현장에 나가달라고 하고, 현장 통제가 됐을 때 개를 풀고 하도록 바꿨습니다. 보완할 수 있는 건 계속 보완하려 합니다."
셀 수 없이 많은, 행복했던 샌디와의 기억들./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샌디 보호자가 말했다.
"너무나 소중했던 저희 집 막내딸 샌디에게, 제가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건, 이 사실을 알리고 앞으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비록 저희 샌디는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지만 많은 분들의 관심과 동참 부탁드립니다."
침대 아래에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샌디./사진=샌디 보호자 제공
이어 "현장에선 개 없이 멧돼지 사냥이 힘들단 목소리가 있어서, 한 번에 개를 쓰지 말라고 못 하더라도, 이게 문제란 걸 인식하게 하는 게 시작"이라고 했다.
샌디 보호자가, 사냥개를 동원한 멧돼지 포획을 반대한다며 올린 '경기도 청원'. 1만명 이상 동의하면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대답한다./사진=경기도청원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