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 폰이라 그랬다면서?" 장기미제 숨은 원인, 멍하니 6개월 지난다

머니투데이 조준영 기자 2024.05.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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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시간의 덫에 빠진 수사]③

편집자주 검찰의 함흥차사 수사가 늘고 있다. 6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장기미제사건은 지난해 6500여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후 2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장기미제가 늘어날수록 검찰의 민생범죄 대응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임종철 디자인기자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할 수 있는 게 있나요. 저희도 마냥 기다리고 있습니다."

재경지검의 한 부장검사는 '디지털포렌식 절차에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것 같다'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최근 사건 수사에서 핵심 증거로 빠지지 않는 디지털 증거를 조사·분석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건 처리가 줄줄이 지연된다는 지적이 이어지지만 검찰 분위기는 해법 모색에 지치다 못해 무기력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무엇보다 디지털증거 분석 기술력의 수준이나 예산의 뒷받침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게 검찰의 하소연이다.



기업 서버뿐 아니라 개인용 PC와 스마트폰 보안도 고도화한 데다 데이터 용량도 빠르게 늘면서 증거물 1건을 분석하는 데 드는 시간 자체가 늘었다. 재경지검의 한 포렌식수사관은 "USB나 스마트폰을 꽂으면 모든 정보가 촤르륵 나오는 건 영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라며 "포렌식 기기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국 데이터는 데이터가 저장된 기기의 출력속도에 따라 나오기 때문에 일단 데이터가 출력되는 것만도 멍하니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장상황도 변수다. 암호를 푸는 데 예상보다 오래 걸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수원지검 방위사업·산업기술범죄형사부는 최근 이틀이면 충분할 것으로 봤던 압수현장에서 암호를 푸는 데 애를 먹어 5일 넘게 압수수색을 벌인 것으로 전해진다.



기업 서버는 대부분 외국에 있다보니 해외 관리자에게 영장을 보내 보안 해제를 요청해도 시차 때문에 응답을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어렵사리 데이터를 확보해도 '참관'이라는 산을 넘어야 한다.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찰은 참여권 보장을 위해 사건 당사자가 입회한 가운데 압수물 선별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검찰 관계자는 "포렌식 절차에서는 당사자와 변호인이 참여해 자료를 한 건씩 꺼내보면서 '범죄혐의와 관련성이 있느냐'를 따지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참관실이 태부족하다는 점이다. 서울중앙지검과 서울남부·동부지검을 제외하면 대부분 참관실이 1개에 그치다보니 대기줄이 길다.

참관실 대신 영상녹화실 등에서 선별 작업을 진행하려면 사건 당사자와 변호인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동의가 수월하게 이뤄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서울남부지검에서는 최근 이런 이유로 압수수색한 이후 6개월 넘게 사건이 방치된 경우도 있었다.

검찰이 궁여지책으로 80여명의 포렌식수사관 중 20명을 참관 전담 수사관으로 지정했지만 여전히 인력이 부족하다.

검찰 한 인사는 "일을 하고 싶어도 일할 방법이 없지 않냐"며 "어떻게든 압수물 분석이 끝나면 검사들이 밤을 새서 자료를 볼텐데 포렌식 결과가 나오지 않으니 볼 게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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