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호, 30년 지나도 불타는 로커 열정 'THE ROCKER'

머니투데이 김성대(대중음악 평론가) ize 기자 2024.05.2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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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통 헤비메탈로 달리는 열정의 30주년 기념앨범

사진제공=프로덕션이황사진제공=프로덕션이황


사람들은 흔히 보이고 들리는 것만 존재한다고 믿는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건 세상에 없는 걸로 간주하는 것이다. 하지만 안 보이고 안 들려도 존재하는 건 분명히 있다. 비록 소소한 규모와 영향력일지라도 그 안에선 나름의 연대와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대중음악의 경우, 주류 매체들이 아이돌과 트로트 음악을 90퍼센트 이상 다룬다 해서 나머지 10퍼센트로 버티는 다른 장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엄연히 하는 사람이 있고, 찾는 사람도 있다. 멸종 위기에 처한 생물이 보호받아야 할 가치가 있듯, 이들도 없어져선 안 될 ‘다양성’의 소중한 한 조각이다.

흔히 ‘록의 시대는 갔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시대가 저물었다고 장르 자체도 저물진 않는다. 장르는 그 자리에 있다. 다만 즐기는 사람들이 줄었을 뿐. 좋든 싫든 새로운 것만 좇는 힙스터가 아닌 이상, 사람은 누구나 취향이라는 걸 가지고 산다. 누구나가 가진 것이므로 취향은 각자가 다르게 마련이다. 시대에서 밀려난 장르들은 그런 다채로운 취향의 관심으로 연명된다. 그중 한결같은 취향을 고수해 온 사람이 있다 했을 때, 비주류 장르에게 그 사람의 관심은 의리의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해외 중장년 스타 뮤지션들의 콘서트 장에 함께 늙어가는 팬들이 만원을 이루는 모습은 그래서 참 아름답고 한편으론 부러운 광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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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사실 이 글은 록의 시대는 갔지만 록이라는 음악은 살아있다는 말을 하기 위한 구실이다. 그 계기는 김경호의 열한 번째 앨범 ‘로커(THE ROCKER)’. 이름 석 자를 듣는 순간 미국의 헤비메탈 밴드 스트라이퍼의 마이클 스위트를 떠올리게 하는 찬란한 음색과 아찔한 고음, 두꺼운 바이브레이션이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김경호에게 더없이 어울리는 앨범 제목이다. 마이크를 부여잡고 열중쉬어 자세로 하곤 했던 폭발적인 헤드뱅잉은 또 어떤가. 자신의 이름을 걸었던 1집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내세운 11집까지, 김경호는 그렇게 30년을 앞만 보며 달려왔다.



앨범은 시작부터 정통 헤비메탈로 내달린다. 거리의 시인들의 노현태가 피처링한 ‘The Rocker’다. 물론 로커에게 타협은 없다. 이어지는 ‘Warming Up’은 강력한 시작을 더 강력하게 몰아간다. 후련하고 가치 있는 시대착오다. 두 곡으로 으름장을 놓았으니 한숨 쉬어갈 타이밍. 4집을 열었던 셀프 리메이크 곡 ‘For 2000 Ad’엔 김종서, 윤도현, 박완규, 정홍일, 윤성기, 곽동현이 함께 해 김경호의 데뷔 30주년을 빛내주고 있는데(김종서는 후배를 위해 앨범에서 가장 무드 있는 발라드 ‘지나간다’를 선물하기도 했다), 이는 반드시 영상과 함께 감상하길 권한다. 한국 록계 베테랑 싱어들이 총출동한 만큼, 한 명 한 명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다.

사진=프로덕션이황사진=프로덕션이황
집단 피처링은 긍정으로 똘똘 뭉친 마지막 곡 ‘We shine’이라는 곡에서도 펼쳐진다. 이번에는 김경호를 동경해 온 팬들과의 콜라보로, ‘For 2000 Ad’와는 색다른 감동이 있다. 강약을 조절하며 한 걸음씩 내딛는 신작엔 ‘Going My Way’ 같은 브라스 디스코 록 트랙도 있어 듣는 맛을 돋운다. 아울러 ‘For 2000 Ad’와 같은 앨범에서 가져온 또 하나 셀프 리메이크 곡 ‘화인’은 원곡보다 키를 낮추었지만 무얼 불러도 강렬했던 세기말 김경호를 추억하게 해주고, 김태원을 흠모하는 차원에서 다시 부른 부활의 ‘비밀’은 슬럼프에 빠졌던 박완규를 부활시킨 곡의 힘을 김경호를 통해 재확인시켜준다.


비록 전성기는 지났지만 앨범 ‘THE ROCKER’는 우여곡절의 30년을 감당한 김경호가 ‘살아남은’ 지금을 기념하는 작품이다. 그 옛날 ‘마지막 기도’를, ‘금지된 사랑’과 ‘나를 슬프게 하는 사람들’을, ‘Shout’와 ‘Rock the Night’를, ‘나의 사랑 천상에서도’와 ‘아름답게 사랑하는 날까지’를 기억하는 이들에게라면 이 생존은 분명 남다른 감정을 갖게 할 터다. 그것은 또한 아이돌과 힙합, 트로트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대한민국 대중음악계에서 록이 이대로 꺾일 순 없다는 시퍼런 반격이기도 하다. 90년대 얼트 록 넘버 ‘다시, Fly’의 가사처럼 “긴 어둠을 지나” 록이라는 장르가 한국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그의 긴 노력이 부디 헛되지 않길 빈다.

건강한 문화는 다양성을 먹고 자란다. 다양성이 질식된 곳에서 ‘선진 문화’란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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