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걸리던 수사, 2년 각오한다"…뉴노멀 된 수사지연 원인은

머니투데이 박다영 기자, 조준영 기자 2024.05.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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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시간의 덫에 빠진 수사]②

편집자주 검찰의 함흥차사 수사가 늘고 있다. 6개월 넘도록 처리하지 못한 장기미제사건은 지난해 6500여건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뤄진 2021년 이후 2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었다. 장기미제가 늘어날수록 검찰의 민생범죄 대응 여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장기미제 사건 늘어나는 검찰 수사 지연 원인/그래픽=이지혜장기미제 사건 늘어나는 검찰 수사 지연 원인/그래픽=이지혜


"수사지연이 '뉴노멀'이 됐어요. 장관이 나서 해결하겠다고 하지만 단기간에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검사들이 몇이나 될까요."

검찰이 6개월이 넘도록 수사하는 사건 수가 지난해 6500건을 넘기면서 역대 최다를 기록한 것을 두고 검찰 출신 한 법조인이 꺼낸 얘기다. 검찰 내 구조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수사지연이 일상화된 만큼 문제 해결이 쉽지 않다는 말이다. 이 법조인은 "수사권 조정 이후 현장에서 체감하는 사건 처리 기간은 2배 이상 늘었다"며 "고소해서 사건이 처리되기까지 기간을 전에는 1년 정도로 생각했는데 (검수완박 후) 지금은 2년이 넘을 수 있다는 걸 각오한다"고 말했다.



수사지연이 일상이 된 원인으로는 2021년 검·경 수사권 조정과 2022년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행 이후 검찰과 경찰 사이에 책임 소재가 불분명해진 점을 지목하는 목소리가 많다. 과거에는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검사가 4개월 안에 기소든 무혐의 종결이든 처리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받기 때문에 어떻게든 결론을 냈지만 이젠 경찰에 보완수사를 명목으로 돌려보내면 아무 책임이 없는 게 맹점이라는 것이다.

애초에 경찰이 수사를 제대로 했느냐는 문제를 논외로 하면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 요청을 할 경우 사실상 사건을 처리한 것으로 분류되고 새로운 사건으로 분류되면서 보완수사를 요청한 검사가 책임지는 사건이 아니게 된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검사가 보완수사를 요청하는 것만으로 책임을 덜 수 있게 됐으니 골치 아픈 사건은 대거 '핑퐁 사건'이 되고 결국 장기미제가 되는 것"이라며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지고 사건을 담당하는 사람이 계속 바뀌니까 검찰에서도 사건이 어디로 갔는지 찾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전했다.



또다른 검찰 출신 변호사는 "검찰에 수사지휘권이 있었을 때는 검사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청한 뒤에 보완수사가 길어지면 직접 담당 경찰에 연락해서 소통하고 도움을 주거나 협력했는데 이런 통로 자체가 없어지니까 사건이 공중에 뜰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제도적인 요인 외에 사건이 복잡해지면서 수사가 어려워진 것도 수사지연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보이스피싱이나 디지털 성범죄 등 첨단기술이 결합한 사건이 늘어난 데다 일반 사건에서도 휴대폰 기록 등 디지털 증거를 확보해 조사·분석하는 것이 수사의 핵심이 됐다.

텔레그램 '박사방'에서 성착취 영상물을 제작·유포한 혐의로 2021년 징역 42년을 확정받은 조주빈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검찰은 당시 수사를 위해 박사방 가담자들의 텔레그램을 비롯한 메신저, 휴대폰 사용기록 분석과 가상화폐로 받은 범죄수익을 추적하는 데 대규모 인적·물적 수사력을 투입했다.


최근 늘어난 유사수신·전세사기 사건의 경우 피해자가 많게는 수백, 수천명에 달해 일일이 조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길어진다는 점도 수사 난제로 꼽힌다.

법조계에서는 업무 범위가 넓어지고 수사 난도가 높아지지만 수사 인력은 10년째 그대로라는 지적도 나온다. 검사정원법에 따른 검사 인력은 2014년 이후 2292명으로 10년째 동결됐다.

법조계 한 인사는 "이른바 '기수 파괴 인사'가 단행되면 선배 기수가 검사직을 내려놓던 과거와 달리 정년을 채우고 퇴직하는 검사들이 늘면서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할 인력을 효율적으로 배치하기도 쉽지 않다"며 "세상이 복잡해지고 사건은 늘어나는데 의사 수만 늘릴 게 아니라 검사 수가 적당한지도 고민할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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