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BNK자산운용 대표
구 한말 고종황제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를 치는 서양 외교관들에게 "그렇게 힘든 일은 아랫것에게 시키지 왜 그리 힘들게 고생을 하시오"라고 말했다는 일화가 있다. 그렇다. 원래 일은 불과 몇백 년 전만 하더라도 노예들의 몫이었다. 히브리어로 일은 '노예'와 같은 단어였고 중세까지 프랑스든 독일이든 일은 고통과 고생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르네상스 이후 마틴 루터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선하고 일하지 않거나 열심히 일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적으로 열등하다"고 말했다. 더 나아가 장 칼뱅은 "일은 신의 은총이자 구원의 수단"이라며 프로테스탄티즘(Protestantism)은 일을 '소명'(calling)으로 격상시켰다.
일에 대한 직장인들의 부담감, 거부감은 수천 년간 깊게 새겨진 DNA 때문일까? 몸속 저 안쪽에서부터 올라오는 네거티브한 느낌은 어쩔 수 없나 보다. 얼마 전 한 HR기업에서 조사한 바로는 직장인 두 명 중 한 명이 '조용한 퇴직'(Quiet Quitting) 상태라고 한다. 조용한 퇴직은 미국에서 온 개념인데 실제 직장에서 퇴사하지는 않고 최소한의 업무만 처리하며 회사에 기여하려는 의지가 없는 것을 말한다. 조용한 퇴직를 하는 첫 번째 이유가 '회사의 연봉과 복지 등이 만족스럽지 못하기 때문'(33%)이라고 했다. '일하는 것 자체에 열의가 없어서'(30%)를 포함한다면 전체의 세 명 중에 두 명이 호구지책으로 일(Job)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실제 동료가 조용한 퇴직을 하는 것에 대해 전체의 3분의 2가 '긍정적'이라고 대답했다고 하니 정말 이제 '조용한 퇴직'은 시대적 흐름인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일이 주는 가치에서 소명의식까지는 아니더라도 커리어로서 자기성취감을 가져보면 어떨까? 단지 호구지책, Job으로서 일을 하기엔 너무나 크고 소중한 가치가 많다. 경험상 연봉이나 성과급, 승진, 이런 거는 그냥 다 따라온다. 일은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대문이다. 거기서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되고 새로운 것을 배우게 해준다. 단지 호구지책의 봉급쟁이로 살아서는 느낄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