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삭빵은 제발 게임에서만 하세요[샷집]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24.06.2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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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샷건의 집현전]<12> 캐삭빵: 캐릭터 삭제를 걸고 하는 결투, 현실에선 끔찍한 결과만 낳아

편집자주 한 아재가 조카와 친해지기 위해 유행가 제목을 들먹이며 '샷건의 집현전'이라고 했다죠. 실제 노래 제목은 '사건의 지평선'이었습니다. 아재들이 괜히 아는 체 하다 망신 당하는 일 없도록, MZ세대가 흔히 쓰는 용어들을 풀어드립니다.

캐삭빵은 제발 게임에서만 하세요[샷집]


RPG(역할수행게임) 세계에는 유독 자부심 넘치는 플레이어들이 많습니다. 자신이 시간과 돈을 들여 정성껏 기른 캐릭터에 누구보다 강할 것이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는 이들입니다. 한껏 캐릭터를 키운 이들이 만나면, 처음에는 자신이 더 강하다며 서로 말싸움을 시작합니다. 이윽고 PvP(플레이어간 대결)를 벌이는 장면도 흔합니다.

여기서 한발 더 나가는 살벌한 전투가 있습니다. 대결에서 지는 캐릭터를 영구히 삭제하기로 하는 겁니다. 정말 캐릭터에 공을 많이 들이고 자부심 강한 사람들만 나설 수 있는 싸움, '캐릭터 삭제 빵' 줄여서 캐삭빵입니다.



게임에서 종종 벌어지는 게 캐삭빵입니다. 현실에서 목숨을 걸고 싸울 수는 없으니, 온라인에서라도 한번 붙어보는 것이죠. 단순한 캐릭터만 지우는 게 아니라 계정 자체를 지우기로 약속하는 '계삭빵'도 있습니다.

정작 대부분의 유저들은 캐삭빵을 약속하더라도, 대결에서 진 뒤 말을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캐삭빵 패배 이후 캐릭터를 지운 유저들은 다른 이들로부터 '약속을 지키는 자'라며 칭송 받기도 합니다. 디아블로2나 과거 던전앤파이터 일부 모드에서는 캐릭터가 죽으면 자동으로 초기화되는 캐삭빵 시스템도 존재했습니다.



현실까지 확장된 캐삭빵은 주로 두 집단 또는 개인이 명운을 결고 대결하는 경우를 지칭합니다. 꼭 목숨을 잃지 않더라도 자신의 지위와 권위 등이 급격히 실추할 위험성을 안고 싸우는 것도 캐삭빵으로 분류됩니다. 국운을 걸고 두 나라가 벌이는 전쟁도 일종의 캐삭빵으로 간주됩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정치권에서도 종종 나타납니다. 2011년 오세훈 서울 시장의 무상급식 주민투표는 대표적인 캐삭빵 사례로 꼽힙니다. 무상급식이 뭐라고 시장직을 걸고 투표를 진행했는지 여전히 의문입니다. 손혜원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목포지역 차명투기 논란이 불거질 당시 결백을 주장하며 "재산과 국회의원직, 목숨까지도 내놓겠다"고 외쳤습니다. 다만 대법원에서 차명 매입 혐의에 대한 벌금형을 최종 선고 받았지만 실제로 '캐삭'까지 이어지진 않았습니다.

게이머들은 정성껏 기른 캐릭터가 아까워서, 캐삭빵을 외쳤더라도 패배한 뒤 말을 바꾸고는 합니다. 캐릭터보다 더 중요한 게 현실의 생입니다. 결의와 자신감을 밝히는 건 좋지만, 굳이 아무 때나 캐삭빵을 외치진 않는 게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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