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빠진 수제맥주, 쓴맛만 남았다…그들은 왜 몰락했나

머니투데이 지영호 기자, 이재윤 기자 2024.05.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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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로에 선 수제맥주(上)

편집자주 편의점 냉장 코너를 장악했던 수제맥주 브랜드들이 설 자리를 잃고 있다. 돈버는 수제맥주 회사를 찾아보기 어렵다. 상장 1호 축포를 쐈던 수제맥주회사는 헐값 매각도 여의치 않을만큼 망가졌다. 기회는 있다. 밀가루, 구두약같은 콜라보 제품으로 '펀슈머(fun+consumer)'의 흥미만 쫒던 수제맥주 시장이 품질경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다. 몰락이냐 재도약이냐 기로에 선 수제맥주 시장의 변화를 추적해본다.

판 키우다 가랑이 찢어져…잘나가던 수제맥주, 거품 꺼졌다
①수제맥주 실적 들여다보니 빅6 모두 적자…생존경쟁 시대

김 빠진 수제맥주, 쓴맛만 남았다…그들은 왜 몰락했나


지난해 국내 주요 수제맥주 기업들이 모두 적자 늪에 빠졌다. 수제맥주의 인기에 힘입어 투자 규모를 늘리며 외형확장에 몰두한 전략이 사실상 실패로 끝났다는 게 중론이다. 한편으로는 수제맥주 시장 재편의 시기가 도래한 만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다면 새로운 성장 기회가 마련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15일 머니투데이가 주요 수제맥주 기업의 지난해 실적을 분석한 결과 실적이 공개된 주요 기업이 모두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매각 절차를 진행 중인 제주맥주가 매출 224억원에 110억원 적자(이하 연결기준)를 기록해 가장 적자 규모가 컸다.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기업 특례상장)을 통해 수제맥주 기업으로 2021년 코스닥에 첫 입성한 제주맥주는 계속된 적자로 내년 상장폐지 위기에 몰려 있다. 매각 과정도 순탄치 않다. 인수기업이 잔금을 치르지 않아 지난 8일 새로운 이사회가 구성될 주총이 돌연 연기됐다.

2022년까지 수익을 내던 세븐브로이도 지난해 적자로 돌아섰다. 2021년 118억원에서 2022년 49억원으로 절반 이상 줄어들더니 지난해 결국 61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매출 급감이 적자전환의 원인으로 지목된다. 2021년 402억원이던 매출은 지난해 123억원으로 3분의 1토막이 났다. 2020년 대한제분과 손잡고 히트시킨 '곰표밀맥주'가 상표권 만료로 제주맥주에 넘어간 영향이 컸다. 후속작인 '대표밀맥주'는 곰표의 빈자리를 채워주지 못했다.



매출 100억원 미만의 전통 수제맥주 기업들도 상황이 여의치않다. 1세대 수제맥주 기업인 어메이징브루잉컴퍼니는 40억원 매출에 20억원 적자를 기록했고 플래티넘맥주 역시 매출은 59억원에서 69억원으로 소폭 늘었지만 영업손실이 8억원에서 11억원으로 증가했다.

대형 식음료기업의 후광을 받는 곳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인덜지의 수제맥주 브랜드 문베어브루잉을 인수한 교촌치킨이나 핸드앤몰트 브랜드를 가진 오비맥주의 수제맥주 자회사 제트엑스벤처스도 만성적자에 시달리고 있다.

(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박람회 및 드링크서울에서 각종 수제맥주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는 맥주와 프리미엄 전통주를 비롯해 와인, 크래프트 주류, 음료 등 타 주류 및 음료기업들이 참가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024.4.1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 11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대한민국 맥주박람회 및 드링크서울에서 각종 수제맥주가 관람객의 눈길을 끌고 있다. 이번 전시는 맥주와 프리미엄 전통주를 비롯해 와인, 크래프트 주류, 음료 등 타 주류 및 음료기업들이 참가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2024.4.1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명섭 기자
그나마 2022년 영업손실 20억원을 기록한 카브루와 29억원을 기록한 스퀴즈맥주가 각각 8억원과 7억원으로 손실을 줄인 것이 위안이다. 특히 스퀴즈맥주는 같은기간 매출이 53억원에서 88억원으로 늘어나 83억원을 올린 카브루를 제치고 실적 공개 기준 수제맥주 3위 기업으로 뛰어올랐다.


수익성 악화를 가속시키는 배경에는 수제맥주 기업들의 과도한 시설투자와 사업 확장에 있다는 견해가 많다. 그동안 자본시장의 지원을 등에 업은 수제맥주 기업들은 대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늘어난 자본력을 편의점 판매망 확대와 양조장을 사들이는 등 규모 확대에 투입했다. 하지만 편의점 출혈경쟁이 심화하고 10%대 공장 가동률을 보이는 기업이 나타나는 등 적자 규모를 키우고 있다. '뱁새가 황새 쫓다 가랑이 찢어진 격'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업계에서는 이른바 '편의점 맥주'로 전락한 수제맥주 시장에 본격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기대도 나온다. 그동안 수제맥주의 주류였던 포장경쟁(브랜드 경쟁)이 더 이상 소비자의 관심을 끌기 어려워지면서 본격적인 품질경쟁으로 시장이 재편될 것이란 예상이다.

한 수제맥주 관계자는 "기존 '편의점용 수제맥주'는 수제맥주의 크래프트 정신인 독립성, 소규모, 전통성을 버리고 대형화에만 몰두했다"며 "그동안 맛있는 맥주 생산을 고민해 온 진짜 수제맥주 기업에 새로운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뜨거웠던 만큼 빨리 식었다…수제맥주 몰락의 이유
②과도한 마케팅·유통 구조한계 넘지못해…수제맥주의 실패

연도별 주류 제조면허 현황/그래픽=김현정연도별 주류 제조면허 현황/그래픽=김현정
뜨겁게 달아올랐던 수제맥주 시장이 침체기에 접어들었다.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수제 맥주 시장은 본질적인 맛과 브랜드 보단 마케팅에 의존하면서 내실을 다지지 못했고 편의점에 종속된 유통 구조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는다. 일부 수제 맥주 제조사들이 무리하게 몸집을 불리면서 예견된 실패라는 지적도 나온다. 결과적으로 수제 맥주의 옥석 가리기가 시작됐다.

◇맥주 제조면허 3배 늘어…적자에도 '마케팅 전쟁'으로 출혈경쟁

수제 맥주가 인기를 끌자 제조 업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세청에 따르면 맥주 제조면허는 지난해 기준 196개로 2013년 61개에서 3배 넘게 늘었다. 맥주 제조면허는 지난해까지 최근 10년 동안 매년 10곳 이상 늘어나는 추세다. 따로 구분하고 있진 않지만 늘어난 맥주 제조면허는 대부분 수제 맥주 제조사로 추정된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무리한 '마케팅 전쟁'이 벌어졌다. 수제 맥주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적자를 내고 있으면서도 감당하기 힘든 광고·마케팅을 진행해 출혈 경쟁을 벌였다. 업계에 따르면 매출액 대비 광고비는 평균 1~3% 수준이며, 주류업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5~8% 선이다. 하이트진로·오비맥주 등 대기업들도 매출액 대비 광고비를 평균 7~8%선으로 운영 중이다.

주요 수제 맥주 제조사들은 매출액의 10% 이상 쏟아 부었다. 제주맥주는 지난해 광고선전비로 29억6900만원을 사용해 매출액 대비 13.2%를 사용했다. 세븐브로이맥주는 지난해 매출액이 124억원으로 전년 대비 62% 줄었으나, 광고비 18억7600만원으로 오히려 2배 이상 늘리면서 영업적자를 기록했다. 전체 비용(판매비와 관리비) 중 28%에 달하는 수준이다.

매출액 100억원 이하 수제 맥주 제조사들도 적자를 보면서 광고에 집중했다. 경쟁이 치열하던 2021~2022년에는 더 심화됐다. 스퀴즈맥주는 2022년 10억1700만원의 광고비를 사용해 매출액(53억원) 대비 19.2%를 썼다. 카브루는 2021년과 2022년 각각 16.3%, 12.1%의 매출액 대비 광고비를 사용했다. 2022년 기준 플래티넘맥주의 매출 대비 광고비 비중은 7.1%, 어메이징브루잉가 9.5%다.
주요 수제맥주 제조사 광고비 비중/그래픽=조수아주요 수제맥주 제조사 광고비 비중/그래픽=조수아
◇수제 맥주=저렴 인식 바꿔야…주류경쟁 심화, 인플레이션도 발목

편의점에 의존 할 수 밖에 없는 유통 구조적 문제도 수제 맥주 시장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4캔에 만원'이란 가격 정책은 수제 맥주의 성장을 이끌었지만 오히려 독이 됐다. 대형마트에서도 경쟁적으로 낮은 가격으로 수제맥주를 공급했다. 수제 맥주 업계 관계자는 "저렴한 맥주라는 이미지로 각인됐다. 저렴해야 한다는 생각을 바꾸기가 너무 어렵다. 아무리 팔아도 실제로 남는 게 없다"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에 초점을 맞추다보니 수제 맥주 본연의 독특한 맛과 브랜드의 가치는 뒷전으로 밀렸다. 특히 신제품도 비슷한 맛에 음료나 빙과 등의 향을 입힌 '콜라보 제품'으로 제한됐다. 포장(패키지)만 바꾸는 이른바 '캔 갈이'가 유행했다. 연매출 20억~30억원 안팎의 수제 맥주 제조사들은 편의점에 공급할 물량을 맞추기도 어렵고 수익 내긴 더욱 어려웠다. 수제 맥주는 점차 소비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수제 맥주가 숨고르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소비자들의 입맛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위스키와 하이볼, 와인과 저도주 소주 등이 인기를 끌면서 주류 시장의 경쟁은 더 치열해졌다. 주류 시장을 주도하는 젊은 소비자들의 취향이 변화하고 있다는 게 수제 맥주 시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수제 맥주 업계 관계자는 "소비자들의 선택이 훨씬 더 까다로워졌다"고 말했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영향으로 소비 심리가 위축됐고 원재료 가격도 올라 수익성이 개선 되기 어려워졌다. 맥주 원재료인 홉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데 글로벌 원자재 가격과 물류·인건비 상승으로 단가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지난해 오비맥주는 원재료 가격 인상을 이유로 출고가를 6.9% 가량 인상했다. 규모가 작은 수제 맥주 제조사들이 받는 압박은 더욱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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