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삼성전자, 좋은 직장과 좋은 기업 사이

머니투데이 한지연 기자 2024.05.17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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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 주 6일 근무·임금 동결, 경비 절감 등 긴축 경영

삼성전자가 최근 실적 부진에 따른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내놓은 방안이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1등 기업'의 해결책이라기엔 다소 어색하다. 시대 역행적 발상이란 지적이 안팎에서 나온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실리콘밸리 기술스타트업과 정반대의 행보"라고 했다.

그 기저에 경직된 조직 문화가 있다. 도전에 따른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지나치게 경쟁적인 문화가 자리 잡았단 얘기다. 공개되지 않는 평가기준, 인사 적체, 원활하지 못한 소통 등도 대표적인 조직 문화 악화의 원인으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좋은 복지로 2020년~2023년 4년 연속 포브스 선정 '세계 최고의 직장'이란 타이틀을 거머쥐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같은 기간 세계 1위 메모리 반도체 기업 자리를 위협받게 됐다. 인공지능 바람에 올라탄 HBM(고대역폭메모리)을 비롯, 차세대 D램 경쟁에서 주도권을 빼앗기고 파운드리 1위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졌다. 지난해엔 전 세계 스마트폰 점유율(출하량 기준) 1위를 13년만에 애플에 내줬다. 그 사이 회사의 동력인 직원들의 주인의식은 희미해졌다.

최근 만난 삼성전자 반도체(DS)부문의 한 직원은 자사를 "좋은 직장이지만, 좋은 회사는 아니다"고 말했다. 높은 임금에 훌륭한 복지를 갖춘 만큼 밥벌이로 선택하기엔 좋은 곳이지만, 꿈을 가지고 일할 곳은 아니라는 차가운 평가가 뒤따랐다. 또 다른 직원은 "말해도 바뀌는 것이 없다"며 현장 실무자와 경영진 간의 간극이 크다고 했다. 이들은 임직원이 힘을 합쳐 같은 목표를 추구하는 목적 의식이 사라지면서, 특히 젊은 직원들 사이에 시키는 일을 때우는 것에 그치는 분위기가 만연하다고 했다. '삼성맨'이란 자부심은 '삼무원'(삼성+공무원)이란 자조로 바뀌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2022년 10월 회장 취임을 앞두고 "인재 양성에 흔들림이 있어선 안 된다"고 했다. 올해 초 '삼성 명장'들과 만난 자리에선 "기술 인재는 포기할 수 없는 핵심경쟁력"이라며 "미래는 기술 인재의 확보와 육성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이같은 인재 경영 철학이 현장에서 구현되고 있는지 돌아볼 때다. 삼성과 삼성의 인재들을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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