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2022년 재개발로 문을 닫은 을지면옥이 2년여 만에 다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처음 냉면에 입문한 곳이다. 재영업 사흘째인 지난 4월24일 오픈시간 전부터 사람이 길게 줄을 섰다. 다들 그리웠던 것이다. 다행히 일찍 도착한 덕분에 문이 열리자마자 입장했다. 천장이 높아 쾌적하고 조명도 환하다. 새 건물의 넓고 깨끗함만큼 비싼 냉면 가격도 낯설다. 맛만 그대로다. 맛이 변하지 않으니 추억도 그대로다. 지난날 다 허물어져가는 건물에서 냉면과 제육을 안주 삼아 낮술을 마신 기억들이 내게도 청춘의 삽화로 끼워져 있다. 소주 한 잔 마시고 제육 한 점 입에 넣은 후 사발 들고 육수 한 모금, 그리고 면을 한 젓가락 집어 후루룩 빨아들이니 이곳은 다시 허름한 2016년 봄날의 면옥, 나는 그리운 이와 함께 마주앉아 있었다.
누구에게나 소울푸드에 대한 기억에는 엄마가 있다. 몇 해 전 인터넷에서 많은 사람을 울린 글이 있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담가주신 김치가 냉장고에 딱 한 통 남았는데 차마 먹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걸 먹어버리면 이제 이 세상에 '엄마 김치'는 사라지게 되니까. 평양냉면이 내 30대의 소울푸드라면 유년의 소울푸드는 경양식 돈가스다. 초등학교에서 상장이라도 받아오면 부모님 손잡고 경양식집에서 먹던, 세계지도의 아프리카 대륙을 닮은 그 돈가스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 지금도 가끔 먹는데 일식 돈가스는 영 낯설어서 경양식 돈가스만 고집한다. 하지만 어릴 적 먹던 그 맛을 내는 집은 드물다.
냉면을 먹으려면 땡볕 아래에서 줄을 서야 하지만 엄마의 음식은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다. 다만 언제까지나 먹을 수는 없다. 그래서 소중하다. 이제는 엄마가 해준 음식에서 시간의 쇠잔한 나이테가 보인다. 그믐으로 기울어가는 달빛이 보인다. 사람의 일생이란 따뜻한 밥 한 끼 먹기 위해 온 세상을 떠돌아 헤매는 일이 아닌가. 아까시 냄새가 달큰한 이 계절, 나는 그 밥 한 끼를, 눈물겨운 엄마 집밥을 또 먹었다. 그러니 잘 살아야 한다. 잘 살아봐야겠다. 내년 생신에는 투플러스 한우를 사드릴 것이다. 이병철 시인(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