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쓴 배터리 '가루' 만들었더니 "돈 되네"…폐배터리 '이렇게' 다시 쓴다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김훈남 기자 2024.05.06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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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RE, 배터리<1회>: 돌아오지 않는 배터리 (下)

편집자주 "건전지를 또 써?" 어린 시절 장난감 미니자동차에 들어갔던 AA 사이즈 충전지는 신세계였습니다. 한번 쓰고 버리던 건전지를 다시 쓸 수 있다니. 지금은 장난감이 아닌 진짜 자동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를 다시 쓰는 시대가 눈 앞에 다가왔습니다. 전기차가 진정한 의미의 '친환경차'가 되기 위해선 전기를 생산하는 과정은 물론 전기차 배터리의 생산과 폐기, 재사용·재활용에 이르기까지 전주기에 걸친 순환경제 조성이 필수적입니다. 머니투데이는 2022년 '오염의 종결자 K-순환경제' 시리즈를 시작으로 매년 주요 순환경제 분야를 조명하고 올바른 순환경제 모델을 고민해왔습니다. 올해의 주제는 배터리. 앞으로 30년 뒤 600조원 시장으로 성장할 사용 후 배터리 시장을 고민해봅니다.

"600조원 시장 잡아라"…기업들이 '폐배터리' 놓칠 수 없는 이유
배터리 3사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현황/그래픽=이지혜배터리 3사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 현황/그래픽=이지혜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은 폐배터리 재활용 사업을 통한 순환경제 구축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단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의 일환이 아니라 미래 먹거리 사업 확보 및 재활용 의무화 흐름에 대응하기 위한 취지다.

2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 자원의 선순환 체계인 '클로즈드 루프'(Closed Loop)를 구축할 수 있도록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사용이 불가한 배터리나 공정 스크랩을 분쇄·융해해 배터리의 원재료를 추출하고, 이를 생산 단계에 재투입하는 개념이다.



2022년 LG에너지솔루션의 중국 난징 사업장은 '클로즈드 루프' 체계 구축을 완료했다. 2025년까지 한국, 유럽, 미국 등 글로벌 전 사업장으로 이를 확대한다는 게 회사의 목표다. 전지 폐기물을 철저히 관리하기 위한 시스템과 회수시설 역시 운영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 코발트 생산 기업인 화유코발트와 배터리 리사이클 합작법인을 세우기도 했다.

삼성SDI는 국내, 말레이시아, 헝가리 등에 공정 스크랩 회수 체계를 구축했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스크랩을 재활용 전문 기업이 수거한 뒤 니켈·코발트와 같은 광물 원자재를 추출하는 시스템이다. 회수 자원은 배터리 소재 파트너사로 전달된 후 제조 공정에 재투입된다. 사용 후 폐기된 전기차 배터리를 에너지저장장치(ESS) 등 다른 제품의 배터리로 재사용하는 방안 역시 거론된다.



특히 폐배터리 재활용 전문 기업인 성일하이텍과 파트너십을 구축했다. 삼성SDI는 성일하이텍의 지분 8.71%를 보유하고 있다. 성일하이텍이 삼성SDI 천안과 울산 공장에서 발생하는 불량품·폐기물을 재가공한 뒤 다시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향후 중국·미국 등으로 재활용 공장 거점을 늘린다는 계획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사용 후 배터리 활용 전기차 충전소LG에너지솔루션의 사용 후 배터리 활용 전기차 충전소
SK온 역시 폐배터리 사업에 신경쓴다. SK온 헝가리 법인은 작년 말 폐배터리 재활용 전처리 사업을 영위하는 자회사 볼트사이클 온(Voltcycle On)을 설립했다. 유럽 내 규제 강화 분위기를 고려해 친환경 배터리 생산 공정을 내재화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방침이다. 불량품, 스크랩 처리에 SK온이 직접 관여할 수 있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SK그룹 차원에서 SK에코플랜트와의 시너지 역시 기대된다. SK에코플랜트는 자회사 SK테스를 앞세워 친환경 사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폐배터리에서 회수한 금속을 배터리 제조에 다시 투입하는 완결적 순환체계를 구축하는 게 목표다. SK테스 라스베이거스 공장을 북미 서부지역의 리사이클링 전초기지로 활용하는 계획도 검토 중이다.


배터리 3사는 전기차 시장이 개화한지 약 10년이 되는 2030년을 전후로 폐배터리의 중요성이 커질 것으로 보고 이같이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SNE리서치는 글로벌 폐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2025년 3조원 수준에서 2030년 70조원, 2040년 230조원, 2050년 600조원으로 커질 것이라 내다봤다.

폐배터리 재활용 의무화 속도가 빠르기도 하다. 최근 유럽은 2031년부터 신품 배터리에 재활용 원료를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하는 법을 시행키로 했다. 재활용 없이는 배터리를 팔 수 없는 시장이 열리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폐배터리 재활용은 반드시 걸어갈 수밖에 없는 길"이라며 "수거 등 당면한 과제부터 해결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 쓴 배터리 '가루' 만들었더니 "돈 되네"…폐배터리 '이렇게' 다시 쓴다
천연자원으로 車끌던 캐나다 "전기차 배터리서 자원 공급"
캐나다의 배터리 재생원료 생산기업 '리톤 테크놀로지'(Lithion Technologies)의 진 크리스토퍼 람버트(Jean-Christophe Lambert) 성장·사업 개발 담당(가운데)과 이브 노엘(Yves Noel) 리톤 테크놀로지 부사장 겸 최고사업개발책임자가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주한캐나다 대사관캐나다의 배터리 재생원료 생산기업 '리톤 테크놀로지'(Lithion Technologies)의 진 크리스토퍼 람버트(Jean-Christophe Lambert) 성장·사업 개발 담당(가운데)과 이브 노엘(Yves Noel) 리톤 테크놀로지 부사장 겸 최고사업개발책임자가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주한캐나다 대사관
"캐나다는 광산을 포함해 천연자원이 풍부해 역사적으로 북미지역의 자동차 산업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산업은 전기차로 전환될 것이기 때문에 배터리 순환경제에 투자가 매우 중요해졌습니다."

캐나다의 배터리 재생원료 생산기업 '리톤 테크놀로지'(Lithion Technologies)의 진 크리스토퍼 람버트(Jean-Christophe Lambert) 성장·사업 개발 담당은 배터리 순환경제에서 재생원료 공급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존 북미지역 내연기관 자동차 산업에서처럼 전동화(전기화)와 순환경제 전환 이후에도 안정적 재생원료 공급이 필수적이라는 얘기다.

이브 노엘(Yves Noel) 리톤 테크놀로지 부사장 겸 최고사업개발책임자와 진 담당은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배터리 순환경제 조성에 필요한 기술력과 정책, 산업적 협력에 대해 설명했다.

2018년 설립해 캐나다 몬트리올에 본사를 두고 있는 리톤 테크놀로지는 전기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 재활용 기술업체로 사용 후 배터리를 분리·파쇄 후 새 배터리 원료를 만드는 기업이다.

캐나다 최초로 배터리 재생원료 사업을 상업화했고 배터리에 들어간 케이스같은 부품부터 블랙파우더(전자제품 등을 파·분쇄한 검은가루)에서 추출한 리튬·니켈·코발트·망간까지 95%에 달하는 성분을 재생원료로 쓸 수 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캐나다의 배터리 재생원료 생산기업 '리톤 테크놀로지'(Lithion Technologies)의 진 크리스토퍼 람버트(Jean-Christophe Lambert) 성장·사업 개발 담당이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주한캐나다 대사관캐나다의 배터리 재생원료 생산기업 '리톤 테크놀로지'(Lithion Technologies)의 진 크리스토퍼 람버트(Jean-Christophe Lambert) 성장·사업 개발 담당이 지난달 24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머니투데이와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주한캐나다 대사관
진 담당은 "전 세계적으로 기후변화와 맞서 싸우고 있고 각 정부는 그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배터리 공급망에 우리(재생원료 기업)가 들어가면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캐나다에서 나온 천연자원은 여전히 제련소로 보내지거나 한국 등 해외에 수출되고 있다"며 "아직은 배터리 산업에서 순환경제가 구축된 것이라 보긴 어렵지만 완전한 순환을 만들기 위해 기술을 개발하고 업계간 협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순환경제 조성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초기 사업 위험부담을 분산하기 위한 금전적 지원은 물론 보다 효율적인 폐자원 활용을 만들 수 있는 수거시스템 등이다. 진 담당은 "퀘벡 정부는 우리회사의 투자자"라며 "과거 퀘벡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기술을 개발하고 확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사용 후 배터리가 매립지로 가지 않도록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수거, 재활용시설로 가져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배터리가 안전한 환경에서 수집과 운송을 통해 재활용시설로 갈 수 있도록 틀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재활용 시설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사회적 수용성을 개선해야 한다"며 "대중이 배터리 재활용의 의미와 중요성에 대해 이해하고 올바른 방식으로 수행하는지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브 부사장은 "전기차 공급망 역시 지역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에너지 전환과 전동화 등의 목적인 탄소중립을 고려하면 지역에서 생산한 배터리는 생산 지역에서 재활용될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수명이 다한 배터리나 배터리 생산에서 나온 부산물을 활용해 북미와 유럽 지역 공급망으로 되돌릴 것"이라며 "지역 공급망을 개발하려는 노력에 대해 분명한 열망이 있다"고 말했다.

이브 부사장은 "재활용이 쉽도록 잘 설계된 배터리팩 등은 디자인 비용뿐만 아니라 재활용 기술을 더 효과적으로 만든다"며 "새 배터리팩을 만드는 설계자와 (재활용 기업이) 더 많이 대화하고 협업을 강화해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전기차는 폐차하지만 돈되는 배터리 어떻게 돌아오나
경기 시흥 한국환경공단 수도권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에 전기차용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가 보관돼 있다. /시흥(경기)=이기범 기자 leekb@경기 시흥 한국환경공단 수도권 미래폐자원 거점수거센터에 전기차용 사용 후 배터리(폐배터리)가 보관돼 있다. /시흥(경기)=이기범 기자 leekb@
전기차는 수명이 다하거나 수리 불가능한 사고가 나면 폐차장으로 향하지만 탑재된 배터리는 그렇지 않다. 차를 구동하기에 부족해 졌을 뿐 잔존성능에 따라 얼마든지 다른 용도로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혹여 수명을 다했더라도 새로운 배터리의 원료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게 배터리다.

전기차에서 나온 사용 후 배터리는 크게 '재사용'되거나 '재활용'된다. 우선 전기차를 폐차하면 차체나 다른 부품과 달리 배터리는 별도로 분리해 잔존성능을 검사한다. 한국환경공단에서 수행하는 SOH(State of Health, 잔존수명) 평가는 배터리를 완전히 충전한 뒤 방전시키는 방식으로 진행한다. 방전용량을 기본용량 값으로 나눈 SOH 값이 60%를 넘으면 재사용 배터리로, 60% 미만이면 재활용으로 분류한다.

잔존성능 평가에서 분류한 재사용 배터리는 셀 단위로 나눠 전기차보다 적은 출력이 필요한 기기에 사용한다. 전동오토바이나 자전거같은 소형이동장치의 동력으로 쓰거나 캠핑·가로등용 ESS(에너지저장장치), 무정전전원공급장치(UPS) 등으로 쓰는 식이다.

잔존성능이 부족해 재활용 배터리로 분류되면 배터리의 부품을 분리한 뒤 파·분쇄를 거쳐 블랙파우더(전자제품을 가루형태로 분쇄한 것)로 만든다. 블랙파우더에서 니켈과 망간, 코발트 같은 재활용 가능한 금속 성분을 추출한 다음 새 배터리 제조 공정에 투입하게 된다.

전기차 시장이 열린 지 10년가량 지난 데다 택시 등 운행이 잦은 상용 전기차량 증가 등으로 전기차의 사용 후 배터리는 본격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배터리업계는 전기차 수명이 한 사이클을 지나 본격적으로 폐차가 시작되면 2040년에 전기차용 폐배터리가 4만대 분량가량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미국과 EU(유럽연합) 등이 재생원료 사용비중 상향등 배터리 순환경제 정책을 강화함에 따라 전기차 폐배터리의 재활용 배터리 소재 추출 기술과 활용도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정부와 배터리 업계에서는 사용 후 배터리 산업이 2050년 600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배터리 순환경제의 성장은 단순히 배터리 재사용·재활용 기술을 벗어나 △재사용배터리 거래 △사용 후 배터리 운송·해체·분리 △민간영역에서의 배터리 잔존성능 검사 △안전성 검사 △배터리 여권 등 전주기 이력 추적 등 주변 산업도 육성된다는 의미다. 재사용과 재활용 기술력을 갖춘 기업을 육성하는 한편 제도적·정책적 보완역시 병행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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