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프터 잡스'-'애프터 이건희' 10년

머니투데이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2024.04.30 0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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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희의 思見]

고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자(좌)와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고 스티브 잡스 애플 공동창업자(좌)와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월트는 어떻게 할까? 월트라면 어떤 결정을 내릴까?' 절대 그렇게 하지 마세요. 그냥 옳은 일을 하면 됩니다."

애플 공동창업자인 스티브 잡스가 최고운영책임자(COO)인 팀 쿡에게 남긴 유언이다. 잡스는 사망하기 1개월여 전인 2011년 8월 11일 팀 쿡을 자신의 집으로 불러 CEO 내정 사실을 알렸다.



그러자 쿡은 "이제 당신 의사를 묻지 않아도 되느냐"고 물었고, 잡스는 "모든 결정은 당신이 하는 것"이라며 창업자 사망 후 '월트 디즈니'라는 회사가 "월트라면…"을 고민하는 결정장애로 어떻게 마비됐는지를 알려줬다.

잡스 타계 후 쿡은 잡스가 매일 아침 들른 애플의 심장부인 디자인팀은 거의 찾아가지 않았다. 반면 잡스는 하지 않았던 대정부 로비에 적극 나섰다. 2명이던 애플의 대관 조직 인원을 50배로 늘리고 자신이 직접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 등을 만나 관계를 형성한 후에는 수시로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대중 수출 통제 품목에 애플 에어팟 등이 포함되자 트럼프 대통령에 전화해 즉시 빼줄 것을 요청하는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애플을 키워나갔다.



원가절감과 효율성 제고 등 공급망 관리에 초점을 맞춘 쿡은 잡스 사후 10년만에 애플의 매출을 3배, 시가총액은 10배 가량 키워 세계 1위 기업에 올려놨다. 뉴욕타임스 애플 담당기자인 트립 미클이 잡스 사망 후 10년간 애플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쓴 '애프터 스티브 잡스'라는 책 내용의 일부다.

잡스였다면 어떻게 했을까라는 고민에 빠지지 않고, 자신이 잘하는 것에 집중한 결과다. 쿡은 그 시점, 그 상황에서 과거 창업자의 뜻이 무엇이었는지를 찾느라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

쿡은 잡스와 철학을 같이 했던 CFO인 피터 오펜하이머를 과감히 정리하고, iOS 개발주역이었던 스콧 포스톨 모바일 SW부문 수석부사장을 '애플 지도' 제작 실패를 이유로 내쳤다. 2019년엔 잡스의 '영혼의 동반자'라고 불렸던 조너선 아이브 최고디자인책임자(CDO)와도 결별했다. 그 결과 애플에 혁신이 사라지고 중국 시장의 부진과 수조원을 투입한 애플카의 실패, 늦은 인공지능(AI) 대응은 쿡의 어두운 그림자로 남게 됐다. 잡스 사후 애플의 10년은 삼성에겐 반면교사다.


내달 10일이면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삼성경영에서 손을 놓은 지 10년이다. 이 선대 회장은 잡스와 달리 후계자인 이재용 회장에게 뚜렷한 유언을 남기지 못한 채 2014년 5월 10일 급성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쓰러졌다. 그리고 6년 5개월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2020년 10월 25일 타계했다.

'이건희' 이후 삼성의 10년은 애플과 달랐다. 쿡이 전세계 공급망을 확대할 동안 이재용 회장은 수형생활과 각종 재판에 발목이 묶여 꼼짝하지 못했다. 미래를 꿈꾸기에는 현실이 너무 험난했다.

그 영향이었을까. 삼성전자 성장은 애플에 크게 못미쳤다. 잡스 이후 10년간 애플 매출이 3배로 됐지만, 이 선대회장이 쓰러진 후 삼성전자는 25% 성장에 그쳤다. 지난해 반도체 부진으로 영업이익은 6조 6000억원에 그쳐 애플의 23분의 1에 불과했다. 글로벌 복합위기 상황으로 삼성의 미래는 녹록지 않다.

삼성의 많은 전직 고위 임원들은 "이건희 회장이라면 어떤 결정을 내렸을까"라며 그를 그리워한다. 하지만 잡스가 떠났듯 이건희 회장도 우리 곁에 없다. 이 혁신가들이 만들어놓은 역사 위에 후배들이 그들과는 다른 새 세상을 만들어가야 한다.

미래를 예견할 수 없을 때는 '지금 옳은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이다. 이 회장과 삼성 앞에는 내달 삼성물산 합병 재판의 항소심 외에도 엄중한 국제정세의 여러 난제가 놓여있다. 이 시기에는 글로벌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뛰어난 리더가 필요하다. 그 역할을 할 수 있는 이 회장에게 여러 난관이 있지만 거침없이 미래를 향해 달려가길 바란다.
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오동희 산업1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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