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발질 몇 번에 고꾸라진 거인…인텔 가치, 엔비디아 16분의 1 수준

머니투데이 이지현 기자 2024.04.29 0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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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재건을 선언하며 투자를 확대하는 미국 인텔의 시장 가치가 엔비디아의 16분의 1 수준까지 추락했다. 기회를 잇따라 놓친 것이 큰 이유로, 새로운 전략으로 고객 확보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20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들러 보며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3월 20일(현지시간)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들러 보며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


인텔의 시가총액은 최근 거래일인 26일(현지시간) 종가 기준 1357억달러(약 187조1303억원)를 기록했다. 이날은 주가가 9.20% 급락했는데, 이는 전날인 25일 장 마감 후 시장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1분기 실적을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인텔의 지난 1분기 매출액은 127억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9% 늘었으나 애널리스트들이 전망치 128억달러에 미치지 못했고, 2분기 가이던스(실적 예상치)도 125억~135억달러를 제시해 예상치를 밑돌았다. 미즈호증권의 애널리스트인 조던 클라인은 이 전망치에 대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나쁜 것으로 (인텔의 실적이) 아직 바닥을 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과거 인텔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중앙처리장치(CPU)를 만들면서 PC 혁명을 이끌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인텔의 시가총액은 2000년대 초 2700억달러를 기록했으며 2020년 1월 2920억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현재 시총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면 인공지능(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시총은 2조1930억달러로 뉴욕 증시에서 3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인텔의 약 16배의 가치다.

CNBC는 "인텔의 문제는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왔다"며 "미국에서 가장 큰 칩 회사였던 인텔이 최근 몇 년간 일련의 헛발질(misstep)로 수많은 라이벌에게 추월당했다"고 지적했다. 특히 매체는 인텔이 2007년 아이폰 출시 이후 모바일 칩에 대한 붐을 놓쳤다고 지적했다. 애플은 첫 아이폰 출시 당시 삼성의 칩을 사용했고 2010년부터는 자체 개발한 아이폰 칩을 출시했다. 이후 5년 만에 애플은 수억 개의 아이폰을 출하하기 시작했으며 2010년 안드로이드폰을 포함한 전체 스마트폰 출하량은 PC 출하량을 넘어서게 됐다.

또한 매체는 인텔이 'AI 붐'도 놓쳤다고 했다. 당초 정교한 컴퓨터 게임을 위해 개발됐던 GPU는 AI 학습과 훈련에 CPU보다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점차 인텔의 칩은 외면받기 시작했고 GPU 분야의 선두자인 엔비디아는 최근 차세대 AI 칩 '블랙웰(Blackwell)'까지 발표하며 그 격차를 더 벌리고 있다. 인텔도 2018년 AI 칩 개발에 나서면서 현재 '가우디 3'이라는 AI 칩을 보유했으나 올해 하반기 매출은 5억달러를 기록하며 엔비디아의 570억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인텔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찾아 팻 갤싱어 인텔 CEO와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애리조나주 챈들러에 있는 인텔 인텔 오코틸로 캠퍼스를 찾아 팻 갤싱어 인텔 CEO와 반도체 웨이퍼를 살펴 보고 있다. /AFPBBNews=뉴스1
CNBC는 "인텔이 고객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기 위해서는 '프로세스 리더십'을 회복하는 데 달려 있다"고 짚었다. 특히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정치 지도자들은 인텔을 '미국의 칩 챔피언'이라고 부르고 있다"며 "다른 반도체 회사들 역시 단일 공급업체에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파운드리 세계 1위인) TSMC의 대안을 원하고 있다" 강조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20일 인텔에 최대 85억달러의 보조금과 대출 지원 110억달러를 제공하기로 예비 합의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2022년 제정된 '반도체 법'에 따른 것이다.

실제 인텔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발판 삼아 파운드리 시장 공략에 나섰다. 펫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리더십 재확보 과정을 '죽음의 행진'이라며 "2026년까지 TSMC를 따라잡겠다"고 밝혔다. 반도체 미세 공정에 집중 투자하며 기술 우위를 확보해 향후 폭발적 수요가 예상되는 인공지능(AI) 반도체를 집중 공략하겠단 구상이다. 올해 2월엔 인텔 파운드리의 첫 번째 기술 콘퍼런스를 통해 마이크로소프트(MS)를 고객으로 확보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원하는 열매를 맺기까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인텔은 지난 1일 웨비나(웹 세미나)를 열어 파운드리 부문의 지난해 매출이 189억달러(약 25조5600억원)를 기록해 1년 전 275억달러에서 감소했다고 밝혔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52억달러에서 70억달러(약 9조4400억원)로 늘었다. 겔싱어 CEO는 이날 "인텔 파운드리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인텔의 상당한 순익 성장을 견인할 것"이라며 "우리는 이런 투명성과 책임감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겔싱어 CEO는 25일 CNBC와 인터뷰에서도 "인텔3 또는 3나노 공정을 사용하는 올해 출시 예정인 서버 칩에 대한 수요가 높으며 경쟁사로 이탈한 고객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그는 "우리는 고객의 신뢰를 재건하고 있다"며 "사람들은 '인텔이 돌아왔다'고 말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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