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집마다 AI가 분리수거하는 날 온다…도시광산 일구는 혁신기업

머니투데이 김성진 기자 2024.04.28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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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구로구의 에이트테크 조립 시설 전경./사진=김성진 기자.서울 구로구의 에이트테크 조립 시설 전경./사진=김성진 기자.


서울 남구로역에서 20분쯤 걸으면 6층짜리 누런 빛깔의 건물을 발견하게 된다. 1980년대에 구로디지털단지 일대에 생긴 전형적인 아파트형 공장으로, 본래 공장과 영상 촬영 스튜디오로 쓰이던 건물이다. 2020년 당시 30대 중반이던 박태형 대표가 여기에 중소기업 '에이트테크'의 간판을 걸었다. 캐나다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코딩에 빠져 지내다 한 해킹대회에서 수상을 하기도 한 박 대표는 국내에서 재활용 선별 작업을 아직 손으로 하는 점에 착안해 인공지능(AI) 재활용 선별 로봇 사업을 시작했다.

초기에는 여느 창업자처럼 자기 호주머니를 털어 경영했지만 이후엔 정부의 정책자금을 지원받아 회사를 본궤도에 올렸다. 현재 인천과 경기 성남시, 남양주시 등 지방자치단체들에 로봇을 납품해 지난해 약 23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AI 재활용 선별 로봇을 상업적 판매한 것은 에이트테크가 처음이다. 37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에이트테크의 올해 매출 목표는 70억~80억원이다.



에이트테크의 '에이트론'은 쓰레기 더미 속에서 페트와 폴리에틸렌, 유리, 캔 등을 골라내는 로봇이다. 페트병도 뭉텅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추후에 재활용할 수 있게 △투명 페트 △갈색 페트 등을 세부 구분하는 등 모두 45종의 폐기물을 구분할 수 있다. 로봇 팔 대신 공기흡입으로 순간 진공상태를 만드는 방식이라 폐기물이 손상되지 않는다. 로봇은 1분당 평균 100여개 폐기물을 선별한다. 같은 양의 폐기물을 수작업으로 구분할 때보다 속도가 약 240% 빠르다.
에이트테크의 에이트론./사진=김성진 기자.에이트테크의 에이트론./사진=김성진 기자.
에이트론의 AI를 개발하는 데 학습시킨 데이터는 약 460만개다. 오류 가능성이 있는 폐기물 이미지 학습 대신 적외선 사진을 찍어 스펙트럼 이미지 학습을 통해 오차율을 낮췄다. 직원 8명이 데이터마다 페트인지 폴리에틸렌인지 하나씩 라벨링을 해 거둔 결실이다. 그 성과를 인정받아 에이트테크는 지난해 KT가 선정하는 코리아 AI 스타트업 100에 선정됐고 환경부의 녹색산업 활성화 유공포상도 받았다.

지금까지 국내 폐기물 선별은 수작업으로 진행해 속도가 느리고 정확성도 떨어진다. 선별되지 않은 플라스틱 등은 매립, 소각한다. 박 대표는 "이 같은 처리 방법으로는 2~3차 환경오염이 발생하게 된다"며 "폐플라스틱을 재활용하려는 기업이 재생 원료 생산에만 관심을 갖고 선별 공정 개선은 등한시한다"고 말했다.



박태형 에이트테크 대표가 지난 25일 이노비즈협회 행사에서 취재진에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해외 출장 중이라 화상 회의로 참여했다./사진=김성진 기자. 박태형 에이트테크 대표가 지난 25일 이노비즈협회 행사에서 취재진에 사업 구상을 설명하고 있다. 박 대표는 해외 출장 중이라 화상 회의로 참여했다./사진=김성진 기자.
에이트테크는 폐기물 선별 시장을 선도하기 위해 인천 서구 경서동에 공장 부지를 계약하고 올 하반기 중 '로봇자원회수센터'를 시범 가동한다는 목표로 내부 설계를 하고 있다. 20대가 넘는 에이트론과 컨베이어 밸트로 기존 선별장에선 30%에 불과한 재활용률을 80%로 높이는 것이 목표다. 박 대표는 "로봇으로 인력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성 향상이 필요한 선별장의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구인난을 해소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이트테크는 SK에코플랜트와 업무협약을 맺고 아파트 단지 등 공동주택마다 지하에 개별적으로 설치할 재활용 폐기물 선별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는 가정마다 AI가 자동 분리수거를 해 배출 단계부터 선별 솔루션을 제공하는 사업 모델을 구상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자원을 소진하지 않고 폐기물 속에서 추출하는 '도시광산'을 충분히 구현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에이트테크는 올해 안에 서울 송파구에 로봇 팔이 두개인 듀얼 에이트론 1호기를 설치할 예정이다. 로봇 추가 계약과 설치 예약도 꾸준히 접수받고 있다. 국내에 등록된 특허는 10건이고, 해외 특허도 6건 출원했다. 기술 혁신을 인정받아 지난해 중소벤처기업부의 이노비즈인증을 획득했다. 박 대표는 "향후 단순한 로봇 공급사가 아니라 국내 재활용 선별장을 위탁 운영하고 설계 컨설팅을 하는 등 플랜트 단위의 운영사로 성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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