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상 칼럼] 왜 회사를 쪼개려 할까

머니투데이 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 원장 2024.04.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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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유효상 유니콘경영경제연구원장 /사진=유효상


금년 4월 초, 롯데알미늄은 물적분할을 통해 롯데인프라셀, 롯데패키징솔루션즈라는 2개 회사를 새로 설립하고, 이차전지 소재사업과 패키징 부문을 기존 기업에서 떼어냈다. 1개 회사를 3개로 쪼갠 것이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한화는 물적분할로 한화모멘텀을,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한화인더스트리얼솔루션즈를 인적분할로 신규로 설립했다. 2개 회사가 4개가 된 것이다. 3월 말 SK디앤디도 SK이터닉스를 인적분할로 신규로 만들었다. 1개 회사를 2개로 만들었다. 작년에는 동국제강이 인적분할로 동국제강과 동국씨엠을 신설하고 기존회사를 동국홀딩스로 회사명을 변경했다. 1개를 3개 사로 분할한 것이다. 또한 효성그룹은 지주회사인 ㈜효성을 인적분할 하여 또 다른 지주회사인 ㈜효성신설지주(가칭)를 새로 만들기로 했다. LG화학은 LG에너지솔루션에 이어 또다시 물적분할 카드를 꺼낼 전망이다. 고부가가치 첨단소재 등 미래 유망 사업만 남기고 전통적인 석유화학 사업 전반을 잘라내서 별도 회사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이렇게 최근 들어, 대기업들의 기업분할(물적분할, 인적분할) 사례가 부쩍 늘고 있다. 기업분할은 M&A의 반대개념으로 한 회사에서 2개 이상의 사업을 영위하는 경우, 여러 가지 이유로 새로운 회사를 세워 사업을 나누는 것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회사에서는 분할 목적을 업종 전문화, 지배구조 개선, 기업가치 재평가 및 주주가치 제고, 그리고 특정 사업부문 매각을 통한 재무구조 개선이나 핵심 사업에 집중하기 위함이라고 공시한다.



기업을 분할하는 방식에는 인적분할과 물적분할 두 가지가 있다. 물적분할은 기존회사 A가 B라는 회사를 새로 만들어 A에 있던 사업부문을 떼어내 B로 이전하고 B의 주식 100%를 소유하는 방식이다. 신설회사 B는 기존회사 A의 자회사가 되는 것이다. 반면 인적분할은 기존회사 A를 A-1과 A-2라는 회사로 쪼개고 A의 사업을 A-1과 A-2로 나누는 것이다. 이때 A-1과 A-2의 주식은 A의 지분비율대로 똑같이 배정된다. 그러나 A-1과 A-2는 법적으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금감원에 따르면 2023년 상장사의 물적분할 추진 건수는 19건으로 2022년(35건)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감소했다. 지속적으로 매년 늘어나다 2020년 말 LG에너지솔루션이 LG화학에서 물적분할되는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거센 항의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후, 금융당국이 소액주주 보호 명목으로 물적분할 관련 공시 강화, 주식매수청구권 부여, 분할된 자회사의 엄격한 상장심사 등을 천명하면서 급속히 건수가 줄어들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작년에 물적분할에 반대한 주주들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했으나 총 발행 주식의 단지 0.9%만이 권리를 행사했다. SK바이오사이언스는 SK케미칼에서, 카카오게임즈, 카카오뱅크, 카카오페이는 모두 카카오에서, 스튜디오드래곤은 CJ E&M에서, 삼성웰스토리는 삼성에버랜드에서 물적분할된 회사다.



반면 인적분할을 실시하여 기존 기업과 신설 회사 모두를 상장시키는 사례는 갈수록 증가하는 추세다. 2023년에만 9개 회사가 분할 후 재상장을 했다. 참고로 2022년 2건, 2021년 6건, 2020년 5건이었다. 특히 지주회사 설립 붐이 불면서 급증하기 시작했다. LG생활건강은 LG화학에서, 이마트는 신세계에서, SK스퀘어는 SK텔레콤에서 인적분할된 회사다.

그러나 금년 들어서는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모두 활발하게 진행되는 모습이다. 그럼 언제 물적분할을 하고 언제 인적분할을 할까?

인적분할은 주로 지주회사를 만들거나, 경영권을 나누기 위해 실행한다. 분할된 신설법인도 요건을 충족하면 즉시 상장되기 때문에 기존 주주의 불만이 상대적으로 적고, 주가에 호재라 하여 대체로 환영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분할된 회사의 주가는 크게 엇갈린다. 미래 전망이 밝은 사업을 갖고 간 회사의 주가는 오르지만, 성장성이 적은 사업이 주력인 회사는 상장과 동시에 주가가 급락할 수 있다.


한편, 물적분할은 주로 대규모 자금조달이나 구조조정이 필요한 경우 진행한다. 미래 유망사업을 자회사로 만들면, 대규모 자금조달이나 우수인력을 확보하기 쉽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 사업부문 매각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 특히 비핵심 사업 또는 실적이 저조한 사업을 분리 매각하여 재무상태를 개선시키고 핵심 사업에 경영자원을 더욱 집중할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SK, 카카오, LG 등 몇몇 기업 사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면서 '사회악'이라는 프레임이 형성되기도 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16년 이후 2023년 상반기까지 이뤄진 인적분할 재상장 사례 45건을 분석한 결과, 주식가치가 분할 이전보다 상승한 경우는 24%(11건)에 불과했다. 인적분할 기업의 76%는 오히려 주식가치가 하락한 것이다. 지금까지는 획일적으로 물적분할을 하면 주가가 떨어지고, 인적분할을 하면 주가가 올라간다는 주장이 많지만, 단지 한 두 사례가 침소봉대 돼 회자되어 있는 것에 불과하다.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을 공시하는 회사들은 한결같이 선택과 집중, 경영 효율, 시너지 효과, 경쟁력 강화를 강조한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표면적인 이유와는 달리 계열사를 늘려서 자산규모를 키우고, 지배력을 강화한 후 총수 자녀들이나 형제간에 경영권 승계와 계열분리가 목적인 경우가 의외로 많다. 한국 대기업 총수 지분율은 매우 낮기 때문에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자녀에게 경영권을 넘기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분할 과정에서 현물 출자, 유상증자 등을 통해 일단 지분율을 높이고, 2단계로 회사를 쪼개서 나눠 갖는 그림을 그리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다른 주주의 지분은 줄어들게 된다.

지배력 강화는 통상 인적분할에 따른 자사주를 통해 이뤄진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 자사주를 보유하여 신설회사의 신주를 배정받아 존속회사의 대주주가 추가 투자 없이 신설회사에 대한 지분율을 높이는 것이다. 아울러 현물출자 유상증자가 함께 이뤄져 지배권을 더욱 확대한다. 그래서 많은 회사들이 분할 직전 자사주를 사들이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것은 '어떻게 쪼개는 것이 아니고, 왜 쪼개는가'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선의의 목적으로 사용될 때 의미가 있는 것이다. 재벌기업의 투명성이 과거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기 때문에 회사분할 취지와 이유를 주주들에게 솔직하고 구체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지배구조 투명성은 대한민국 경제에서 가장 시급하게 개선해야 할 당면과제다. 더 이상 재벌기업이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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