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광장]어떤 의미

머니투데이 혜원스님 구리 신행선원 선원장 2024.04.15 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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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모든 것에 의미부여하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었을 것이고 그것이 인간의 지능이 고도로 발달하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어떤 의미와 관념을 아로새기는 것에서 생존을 위한 행위부터 추상적 예술행위로까지 발달했다.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의미가 아름답게 꽃을 피웠지만 그 속에 전쟁과 학살, 차별과 학대, 사기꾼과 온갖 다툼도 함께 왔다. 동물의 왕국과 같은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면 어지럽고 혼란스러운 것 같은 인간사회도 생존을 위한 투쟁의 범주에서 보면 얼핏 이해가 가는 측면도 있다. 아무튼 그 의미라는 것은 고정돼 있지 않다. 죽비자화라는 화두를 보면 한 선사가 죽비를 들고 대중에게 이르길 "이것을 죽비라고 해도 안 되고 죽비가 아니라고 하여도 그르친다. 대중은 일러보라"고 묻는다. 의미와 관념의 근저를 간지럽히는 저런 화두들이 선사들의 일화들에서 자주 등장한다.

나는 누구인가.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하나의 개체들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나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가 목말라하며 갈구하는 의미들은 어떤 것들인가. 때로는 그 의미들에 환희하며 기뻐하고 때로는 좌절해 자살을 선택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들은 세상에서 지워져야 한다고 여기고 어떤 의미들은 실재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좇아간다. 의미는 변한다. 그렇다고 허망하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이 변하지 않고 머물기를 집착하는 것이 허망한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의미도 없다면 그것만큼 의미 없는 삶도 없을 것이다. 우리 각자는 스스로 의미를 규정하고 추구하며 살아간다. 그 의미 속에서 행복도 불행도 일어난다. 그것은 게임의 룰을 정하고 게임에 임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의미란 있는 것일까. 우리나라의 자살률은 압도적으로 높다. 제발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다. 그 의미라는 것은 언제나 변하기 마련이지 않은가 말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그 어떤 의미도 고정불변한 것은 없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열광하며 목숨을 걸고 추구한 이념이나 사상도 몇 년 혹은 몇십 년이 지나보면 허망한 일들이 돼버리고는 한다. 그 많은 똑똑한 양반도 저런 허망한 일들을 너무도 진지하게 벌이지 않는가. 어떤 의미에 집착할 것인가. 의미를 상실하면 또 다른 의미를 세우면 된다. 그 과정이 고통스러운 것은 당연하겠으나 의미가 어떤 의미인지를 잘 알고 있다면 고통 속에서도 다시 싹은 튼다. 의미를 추구하며 살아가지만 그 속에 과도한 집착은 하지 않는 여유로운 삶을 살아간다면 좋겠다. 그 속에 우리는 훨씬 풍부하고 다양한 의미를 꽃 피울 수 있을 것이다.

꽃이 피는 계절이다. 그래서 꽃이 지는 계절이다. 모두 사실이지만 꽃이 진다고 좌절하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꽃은 원래 없었지만 피었기에 지는 것이다. 모든 의미도 마찬가지다. 원래 의미가 없었지만 의미가 만들어졌기에 변하고 사라지기 마련이다. 피고 지는 꽃처럼 모든 의미도 역시 그러하다. 의미가 사라졌다면 그것은 그 의미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의미를 세울 자유가 생겨난 것이다. 그 어떤 의미도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고 그 속에 지나치게 고통받지도 말라. 밖으로 의미를 갈구하지도 말고 스스로 어떤 의미가 되지 못한 것을 자책하지도 않는 것. 그 어떤 의미로부터도 자유로워지는 것이 스스로 삶이 여유로워지고 편안해지는 길이며 그것이 어떤 의미든 용기를 내어 추구하는 시작이 될 것이다. 작은 의미에 자신을 묶어두지 말고 마음을 여는 것이 삶을 슬기롭게 살아가는 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도 억지로 되는 것은 아니다. 밖으로 나가 꽃도 보고 풀도 보고 새싹을 쏟아내는 나무들도 보고하면 저절로 그 어떤 의미들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자연과 가까이 지내야 한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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