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민 스파크랩 공동 대표/사진=스파크랩
지난 11년 동안 총 21회의 데모데이를 개최하면서 빠지지 않고 듣는 질문이다. 스파크랩은 1년에 두 번 초기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각 기수마다 약 16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은 국내 주요 투자자 앞에서 진행되는 비공개 데모데이로 마무리된다.
스파크랩은 데모데이 피치의 효율 극대화를 위해 고유의 공식을 구축해냈다. 단 5분만에 투자자의 머릿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후속 미팅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포트폴리오사의 데모데이 피치를 돕고 있다. 일각에서는 '스파크랩 포트폴리오 회사들의 데모데이 피치가 정형화돼 있다'는 지적도 나오지만, 그만큼 효과적으로 전달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8가지 요소에 대한 답변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본격적으로 첫 번째 단계로 발표 대본을 작성하게 된다. 이때 대본 완성도를 떨어뜨리는 가장 대표적인 원인은 소위 말하는 TMI(Too Much Information, 너무 많은 정보)와 자료 재활용이다. 데모데이 피치는 투자자로 하여금 그 자리에서 자사의 사업에 대한 모든 이해와 투자 결정을 이끌어내는 단계가 아니다.
핵심 8가지 요소를 5분 분량의 스크립트로 작성하면 보통 폰트 사이즈 12를 기준으로 A4 한장 반 정도의 양이 나온다. 직접 준비해보면 자료를 길게 만드는 것보다 핵심만 남겨 간결하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작업인지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 작업은 창업자에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의 본질에 치열하게 파고들 수 있도록 하는 값진 경험을 선사한다.
스크립트가 완성되면 슬라이드(Pitch deck, 피치덱) 작업에 들어간다. 슬라이드 제작의 첫 번째 공식은 매우 간단하다. 바로 '한 슬라이드 당 한 가지 포인트만을 전달한다'이다. 투자자를 설득하고자 하는 욕심에 한 페이지에 많은 데이터와 자료를 욱여 넣으면 안된다. 화려한 동영상이나 애니메이션 효과도 금물이다. 피치덱은 발표를 거들 뿐이지 주인공이 돼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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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공식은 '한 슬라이드 당 발표는 10초' 공식이다. 우스갯소리로 '데모데이 피치의 가장 큰 적은 카카오톡'이라는 말이 있다. 듣는 사람이 지루함을 느껴 카카오톡을 여는 순간 그 발표 준비에 쏟은 노력은 물거품이 돼버린다는 의미다. 지속적인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스파크랩은 슬라이드 한 장의 발표 시간이 10초를 넘기지 않도록 자료를 준비한다. 총 300초라면 총 슬라이드 수는 30장을 준비하는 것이다.
대본과 피치덱 준비가 완료되면 그 이후는 모두 연습에 달렸다. 단순히 대본을 외우는 데서 나아가 슬라이드를 넘기는 타이밍까지 완벽하게 맞춘다. 수십번 연습을 반복하며 대본을 발표자의 것으로 만들어야만 행사 당일 자신감이 묻어나는 피치를 할 수 있다.
데모데이 피치의 공식은 간단해 보이지만, 준비하다 보면 정말 쉽지 않게 느껴질 것이다. 스타트업의 성공을 결정짓는 가장 큰 요소는 놀랍게도 '타이밍'이다. 기회가 왔을 때 잡는 이들만이 급류를 타고 신속히 다음 성장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회사의 사활이 걸린 투자 유치 기회가 찾아왔을 때 꽉 잡을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