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연중 80% 할인에도 안 팔리는 상품

머니투데이 김진형 산업2부장 2024.04.09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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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엔덱믹 이후 고물가가 전세계적인 흐름이 되면서 싼 제품을 찾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더 강해졌다.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살 수 있는 할인 행사엔 줄을 선다. 온라인, 오프라인 가릴 것 없이 유통기업들은 거의 연중 할인행사를 펼치고 있다.

하지만 80% 할인에도 안 팔리는 상품도 있다. 반값 할인만 해도 엄청난 할인률인데 무려 80% 싸게, 그것도 연중 세일 중인데도 안 팔린다.



할인 행사를 벌이고 있는 유통기업들 스스로다. 이마트의 PBR(주당순자산비율)는 0.16(4월5일 기준)이다. 기업의 주가가 순자산가치보다 84% 할인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코스피 상장 주식 840개 중 이마트보다 PBR이 낮은 종목은 양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극소수다. 이마트와 함께 대형마트의 양대 축인 롯데쇼핑도 다르지 않다. 롯데쇼핑의 PBR는 0.21이다. 한국 증시의 PBR이 전체적으로 저평가돼 있지만 이들 기업의 PBR은 코스피 상장기업 평균의 5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대형마트들의 캐치프레이즈는 'ELDP'(Every Day Low Price)다. '365일 가장 싸게 쇼핑할 수 있는 곳'이란 의미다. 아이러니하게도 대형마트가 판매하는 상품 중 '리얼' 에브리데이 로우 프라이스는 대형마트 주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주가가 이렇게 싼데도 주식시장의 소비자인 투자자들이 외면하는 데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온라인 쇼핑 전성시대에 맞춰 빠르게 변화하지 못한 것이다.

신영증권은 최근 리포트에서 "(이마트가) 온라인과 오프라인 중 어느 쪽에 힘을 실어야 할지 여러 해 동안 갈팡질팡했고, 장보기몰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카테고리도 잘 하고 싶은 욕심을 버리지 못해 이도 저도 잘 해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또 "G마켓 옥션을 무리하게 인수했지만 물류 통합을 이루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영업권 상각과 손상차손으로 회계장부를 얼룩지게 만들고 있다"고 꼬집었다. 이 리포트의 분석이 모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한채양 이마트 대표도 최근 "냉정한 자본시장은 이마트의 위기를 강하게 경고하고 있다"고 밝혔다.

물론 오프라인 중심의 대형마트들이 고전하는 것은 한국만의 현상도, 이마트나 롯데쇼핑만의 문제도 아니다. 그렇다고 달라진 시대 탓이 변명이 될 수는 없다. 오프라인 쇼핑 채널의 대표격인 미국 월마트는 미국 경영전문 매체 패스트컴퍼니가 선정한 '올해 (2024년) 가장 혁신적인 소매기업'에서 이커머스 기업들을 제치고 1위 꼽혔다. 혁신의 아이콘이 된 월마트의 주가는 최근 3년간 약 30% 상승했다.


대형마트들도 변화를 시도해 왔지만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팬데믹은 온라인 쇼핑을 빠르게 확산시켰고 대형마트들의 변화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모든게 대형마트의 실책이라고 하기엔 억울한 측면이 있다. 혁신과 변화의 발목을 잡아온 규제의 효과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2년 시작된 대형마트의 일요일 영업과 새벽배송 금지는 10년이 지나서야 변화가 시작됐다. 조례를 바꿔 의무휴업일이 평일로 전환되는 지자체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새벽배송을 허용할 법 개정은 아직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대형마트들이 규제에 발목잡힌 사이 한국 시장에 상륙한 중국 이커머스 '알테쉬(알리익스프레스, 테무, 쉬인)'은 규제의 사각지대를 파고 들고 있다. 안전인증 없는 제품, 온라인 유통이 금지된 제품을 유통시켜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온라인 채널에 비해 오프라인 대형마트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지만 이제는 온오프 가릴 것 없이 국내 유통채널 전체가 해외 기업들에 역차별을 받는 상황이다.

이마트는 최근 창사 후 처음으로 전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고 있다. 11번가는 지난해에 이어 두번째 희망퇴직 절차가 진행 중이다. 직원들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배경에 이들 기업의 경영진의 실책 외에 기울어진 운동장 탓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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