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0차문화'와 상생의 문화 경제

머니투데이 김헌식 대중문화 평론가 2024.04.09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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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김헌식(대중문화 평론가)


여러 번 들르는 N차문화가 있는데 이제 0차문화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0차문화는 유명 식당이나 카페 등 명소에 예약대기를 걸어놓고 근처 주변을 방문하거나 산책하는 행위들을 말한다. 1차로 시작하기 전에 앞서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집단적 흐름이 0차문화라고 할 수 있다. 어차피 기다려야 하는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문화적 현상이다. 특히 유명한 곳일수록 대기시간이 길기에 더욱 그 시간을 활용하고자 한다. 0차로 방문하는 공간이라고 해서 0차공간이라는 개념도 생겨났다. 앱이나 태블릿PC를 통해 편하게 예약할 수 있는 디지털 시스템이 갖춰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경제와 문화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웨이팅(줄서기) 문화의 일반화가 간접배경으로 작동한다. 그들에게 줄서기는 공정함이다. 그 누구도 줄서서 기다리면 원하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그 성과는 누구나 한 번쯤 경험하고 싶은 체험이다. 과거의 관점에서 보면 줄을 서서 꼭 음식을 먹어야 하는가 싶지만 어느새 주변에서 줄을 서는 모습을 흔하게 본다. 관점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가치소비가 증가하면서 이런 풍경이 바뀌었다. 자신에게 뭔가 가치가 있다면 불편이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 젊은 세대일수록 자신에게 가치 있는 것은 꼭 성취하고 싶은 심리가 커졌다. 비록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그 시간을 아깝지 않게 보내고 원하는 목적을 이루겠다는 심리가 작용한다. 더구나 저성장 시대에 성장한 젊은 세대일수록 경제적이고 실용적이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대기하는 시간에도 뭔가 보람차거나 재미있는 일을 즐기겠다는 심리가 있다. 합리적이면서도 꼼꼼한 계획과 실천이 중심이다. '갓생' 트렌드 관점으로 볼 수 있다. 비록 사소할 수 있지만 일상에서 소소한 즐거움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물론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을 수도 있다. 하나의 놀이문화라고 여길 수 있기 때문이다.

0차문화의 요건은 SNS 업로드가 필수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이들이 꼭 가고 싶어하는 곳일수록 대기시간이 길어지니 포기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0차문화를 활용한다면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 그 때문에 주변에서 견딜 수 있는 곳들을 미리 파악한다면 큰 성취를 위한 꿀팁이 된다. 이러한 꿀팁 업로드는 반드시 과시나 자랑을 위해서만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기록이면서 타인과 꿀팁을 공유하는 특징이 있다. 이러한 0차성취는 단순히 혼자 간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공유하며 후회의 감정을 줄여주는 역할을 한다. 더구나 맛집이 있는 지역은 이른바 문화적 스필오버 효과(Spillover Effect)를 얻을 수 있다. 말 그대로 주변으로 흘러넘치는 경제효과라고 말할 수 있다. 주변 상점에 다니면서 공예품이나 굿즈를 살 수도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간식 등도 구매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지역경제가 같이 활성화하는 효과가 일어나기 때문에 공존공생의 외부효과를 생각할 수 있는 것이 0차문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명소가 생긴다는 것은 시기의 대상이 아니라 지역경제 전체에 바람직한 일이 된다. 명소 주변에 같이 즐길 수 있는 곳들까지 연계될 수 있도록 체계화하는 작업도 필요한 것이다.



다만 자체 즐길거리를 만드는 예도 있는데 이러한 점은 지역경제의 상생 차원에서 재고될 점이 있을 것이다. 또한 양극화 현상이 우려되기도 한다. 디지털 정보기기 사용률이 50~60대부터는 떨어지기 때문이다. 0차문화를 즐길 수 있는 팁의 공유가 필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한국은 늘 변한다. 빨리빨리문화 때문에 웨이팅문화가 설 자리 없다던 과거와 달라졌다. 이에 맞춰 0차문화는 새로운 놀이면서 경제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효과의 최대화를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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