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 미래는 없다" 한 줄로 끝난 '140분 면담'…환자들 어쩌나

머니투데이 박정렬 기자 2024.04.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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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회장 당선 후 기자들과 인터뷰 모습./사진=[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 사진은 회장 당선 후 기자들과 인터뷰 모습./사진=[서울=뉴시스] 최진석 기자


전공의들이 진료 현장을 이탈한 지 45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 비상대책위원장이 만났다. 지난 4일 윤 대통령은 성태윤 정책실장·김수경 대변인이 배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박 위원장을 만나 140분간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구체적인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 면담에서 의료공백 사태의 '핵심 쟁점'인 의대 증원 2000명에 대한 입장차는 끝내 좁히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의 유화적 제스처에 전공의가 응하며 일각에선 사태 해결의 기대감도 일었지만, 불과 하루도 안 돼 의정(醫政) 관계는 또다시 냉각 조짐을 보인다.



5일 의료계에 따르면 박단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면담에서 지난 2월 19일 전공의 집단 이탈 후 대전협이 제시한 7대 요구 사항을 다시 꺼내 든 것으로 전해진다. 7대 요구사항 중 1·2번 항목은 의대 증원을 전면 백지화하고 의사 수급 추계 기구를 설치해 원점 재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합리적 근거 없이 의대 증원 규모 등 정책을 바꾸긴 어렵다며 백지화 요구는 수용이 어렵다는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전공의협의회 7대 요구안/그래픽=이지혜대한전공의협의회 7대 요구안/그래픽=이지혜
박 위원장은 면담이 끝나고 2시간여만에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 의료의 미래는 없다"며 '한 줄 평'을 남겼다. 짧지만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하며 면담의 성과가 없다는 점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대통령실도 같은 날 "대통령은 향후 의사 증원을 포함한 의료 개혁에 관해 의료계와 논의 시 전공의들의 입장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짧은 입장을 밝혔다. 별도의 브리핑은 없었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의대 증원 문제에선 입장차가 있었지만, 첨예하게 대립해 온 양측이 처음 마주 앉은 데 의미가 있다"고 했다.



/사진=페이스북 캡처/사진=페이스북 캡처
의료공백 사태의 '열쇠'를 쥔 전공의가 정부를 향한 비판적 입장을 다시 밝히면서 의료공백 사태는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전협은 면담에 앞서 내부 공지를 통해 "요구안 수용이 불가하다면 저희 쪽(전공의)에선 '대화에는 응했지만 여전히 접점은 찾을 수 없었다'로 대응 후 원래 하던 대로 다시 누우면 끝"이라고 했다. 정부와 7대 요구안이 협의가 이뤄질 경우 전체 투표를 진행해 최종 결정을 내릴 방침이지만 박 위원장의 글로 미뤄 투표 안건이 아예 상정되지 않을 수도 있다.

대통령과 전공의의 면담 후 의사들의 투쟁 의지는 오히려 한층 격해진 모습이다. 임현택 차기 대한의사협회장은 대통령과 전공의 면담 당 일 SNS에 "아무리 가르쳐도 이해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라는 글을 썼는데 정부를 향한 메시지일 것이란 의견이 적지 않다. 5일 오후 2시 현재까지 이 글에는 "탄핵", "장·차관 경질", "불통" 등 정부를 겨냥한 부정적 댓글이 250개 넘게 달렸다. 같은 날 임 차기 회장은 "박민수 (보건복지부) 차관 파면 없이는 이 사태 해결은 어려울 것입니다"는 글을 쓰며 정부를 재차 압박했다.

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외래 진료를 줄이기로 한 첫날인 5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서원구 한 대학병원 로비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청주=뉴시스] 조성현 기자전공의 집단 이탈 사태로 외래 진료를 줄이기로 한 첫날인 5일 오전 충북 청주시 서원구 한 대학병원 로비가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청주=뉴시스] 조성현 기자
의료 현장은 진료·경영 모두 '비상'이 걸렸다. 전공의가 떠난 후 병원에 남은 전임의·교수 등 전문의의 업무 부담이 커지면서 의료진의 번아웃(소진)이 우려된다. 전국 의대 교수들은 지난주부터 사직서 제출과 진료 단축 등으로 '2000명 증원'에 반대 의사를 표명해왔다. 고범석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 공보담당 교수는 "예약 환자 진료가 거의 마무리된 만큼 다음 주부터는 주 52시간 진료에 참여하는 교수가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장 외래·입원·수술 등 병원 진료의 전반적인 감소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등 '빅5 병원'을 포함해 전국 대학병원은 환자 수 감소로 잇따라 비상경영체제를 선포했다. 병동이 통폐합되고 반강제적으로 무급휴가에 내몰리면서 직원들은 고용 불안을 호소한다. 대한병원협회에 따르면 전공의가 병원을 떠난 2월 19일부터 3월 31일까지 500병상 이상 수련병원 50개소의 의료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4238억3487만원 줄었다. 병원당 평균 84억7669만원이나 감소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의료 수익이 많았던 서울아산병원은 이 기간 의료분야 순손실이 511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4.4.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 1일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대기중인 환자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의대 개혁' 관련 대국민 담화 발표를 시청하고 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정부의 의대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료계를 향해 “더 타당하고 합리적인 방안을 가져온다면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2024.4.1/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사진=(서울=뉴스1) 김성진 기자
의료대란을 바라보는 환자들은 하루하루 속이 타들어 간다. 환자단체연합회는 전날 조규홍 복지부 장관과 간담회 후 논평을 내고 "의료공백 사태 장기화는 중증·희귀난치성 질환 환자에게 엄청난 위협"이라며 "정부와 의료계가 사태 해결을 위해 양보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환자 피해가 발생할 것"이라 말했다. 보건의료노조는 5일 "중증·응급의료 체계가 붕괴해 살릴 수 있는 환자들의 생명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지금은 그야말로 의료 대재앙 상황"이라며 "환자들에게 지금 시간은 곧 생명이다. 정부와 의사단체는 치킨게임을 중단하고 조속한 진료 정상화를 최우선 목표로 실질적 해법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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