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이 법조인을 연기하면 왠지 드는 믿음

머니투데이 신윤재(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4.05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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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팡플레이 '하이드'서 명불허전 연기 선사

사진=쿠팡플레이사진=쿠팡플레이


한 배우가 여러 작품에 걸쳐 쌓아온 이미지는 그 배우의 자산이 된다. 이를 보는 사람에게는 ‘신뢰’가 되기도 한다. 그 배우가 택한 작품이라면 당연히 내용이나 연기에서나 만족스럽다고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 중에서 특정한 역할에 몰두해온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다. 배우의 연기가 하나의 장르가 되고, 장르는 역사가 된다.

우리는 어떤 역할을 생각하면 한 명의 배우 이미지를 떠올릴 수 있다. ‘형사’라고 하면 빗속에서 용의자를 잡아 “밥은 먹고 다니냐”고 말하는 ‘살인의 추억’ 송강호의 모습을 떠올리고, ‘살인마’라고 하면 “내가 너 좋아하면 안 되냐?”하고 날카롭게 내뱉는 ‘악마를 보았다’ 최민식을 떠올릴 수 있다. 또 ‘엄마’의 이미지를 떠올리면 여러 작품에서 다채로운 엄마의 모습을 보인 김해숙의 모습을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여성 법조인’의 이미지라면 누구를 생각할 수 있을까.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당신의 클릭 몇 번으로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배우 이보영은 3월23일부터 공개되기 시작한 쿠팡플레이의 시리즈 ‘하이드’에서 검사 출신 변호사의 강단을 보여주고 있다.

이보영이 처음 법조인 역할을 했던 작품은 KBS2 ‘내 딸 서영이’였다. 극 중 인권변호사로 거듭나는 이서영을 연기했다. 이 작품으로 큰 인기를 얻고 난 다음인 2013년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도 법조인이었다. 여기서 그는 꿋꿋한 성격에 생활력이 강한 장혜성 변호사를 연기했다. 다음에는 2017년 SBS ‘귓속말’의 신영주였다. 원래 형사였던 신영주는 극의 마지막회 로스쿨을 거쳐 변호사가 된다.



사진=쿠팡흘레이사진=쿠팡흘레이
‘하이드’에서의 모습이 공식적으로는 네 번째 법조인인 셈이다. 원래부터 아나운서 시험을 준비한 적이 있던 이보영의 정확한 딕션과 다수의 법조인 연기를 하면서 쌓인 공력은 ‘하이드’에서 본격적으로 터져 나온다.

‘하이드’는 단란한 가정, 아무것도 부러울 것 없던 삶을 살던 여자 나문영이 어느 날 갑자기 남편 차성재(이무생)가 사라지면서 그를 추적하며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마주하는 상황을 다룬 작품이다. 나문영은 역시 이보영의 명성대로 13년 검사를 지내다 변호사로 전업한 인물이다. 하지만 로펌대표 차성재와 함께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키우면서 극 중에서는 좀 더 전업주부에 가까운 인물이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남편이 사라지고, 심지어는 사망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면서 그에게 위기가 닥친다. 현재 5회까지 공개된 작품에서는 결국 남편이 기업형 조직폭력배의 협박을 받고 비위에 가담했다는 사실이 공개되고, 이를 벗어나기 위해 위장사망을 계획했다는 상황이 등장한다. 나문영은 남편이 남긴 채무를 해결하고, 채무를 독촉하는 조직폭력배 마강(홍서준)을 정리하기 위해 치밀한 법리를 내세운다.

70억원의 빚을 졌다고 주장하는 마강에게 나문영은 70억원짜리 소장을 내밀어 채무를 갚으려 한다. 결국 그가 살인사건을 사주하고 사건의 은폐를 주도했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반전을 꾀한다. 드라마 4회에 등장하는 재판장면은 그동안 침착하고 차분하게 법리를 주장하는 연기를 다수 해왔던 이보영의 공력이 빛나는 순간이다. 어느 날 갑자기 편안한 일상이 썰물에 밀려 나가듯 사라지고, 그 안을 차고 들어온 의심과 불안은 이보영의 얼굴에서 선명하게 떠오른다. 그는 어느덧 ‘법조인 역할’로만이 아닌 배우 이보영으로서 극을 틀어쥘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다.

사진=쿠팡플레이사진=쿠팡플레이
일부에서는 그의 이러한 연기가 다소 비슷비슷하다는 말도 많이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법조인 연기를 제외하더라도 이보영은 연구원(마더), 방송작가(신의 선물-14일), 재벌가의 사모님(마인), 마케터(대행사) 등 전문직의 연기를 많이 해왔다. 대부분의 역할이 차분하고 다소 부티가 나는 가운데서도 강직한 인물이었기에 우리는 드라마 속 이보영의 모습을 한결같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그도 다양한 작품에 대한 욕심을 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실제 망가지는 연기를 하고 싶어 김은희-장항준 부부의 데뷔작 ‘위기일발 풍년빌라’에 출연하기도 했다. 블랙코미디 장르를 통해 부침을 겪었던 그가 ‘애정만만세’를 통해 똑 부러진 이미지로 일어서게 되자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하기로 한다. 다채로운 배역의 소화는 그만한 공력이 있어야 함을 깨닫고, 가지고 있는 매력을 가장 잘 살리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렇게 지난 시간이 어느새 20여 년이다. 그는 실제 엄마로서의 육아에 몰두하던 기간 2~3년을 제외하고는 꾸준하게 작품에 나섰고, 그 작품에서의 성공을 이끌었다. 그리고 하나 같이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인물들을 연이어 연기하면서 안방극장에서 여배우가 장치화되는 일을 가장 앞선에서 막았던 배우이기도 하다. 엄밀히 말해 그의 첫 번째 OTT 도전작이기도 한 ‘하이드’는 이보영의 지평을 조금 더 넓혀주는 작품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가 아플 때 약국을 찾으면 약봉지에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이 표현을 이보영의 스타일대로 바꾸면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약은 약사에게 법조인 연기는 이보영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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