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악 강진에도 '대규모 참사' 피한 대만…25년 뼈 깎는 노력 있었다

머니투데이 김종훈 기자 2024.04.03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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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21일 대지진, 부실공사 눈감아준 인재로 드러나며 내진 규제 집중 강화

3일(현지시간) 대만 화롄에 위치한 빌딩이 지진으로 쓰러져 소방대원들이 구호작업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뉴스13일(현지시간) 대만 화롄에 위치한 빌딩이 지진으로 쓰러져 소방대원들이 구호작업을 벌이고 있다. /로이터=뉴스1


대만은 1999년 9월21일 발생해 2400명의 목숨을 앗아간 '921 대지진' 이후 지진 피해 최소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이런 노력은 당시 지진 이후 최대 규모의 강진이 3일 덮쳤음에도 그때만큼의 참사가 일어나지 않은 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나온다.



2400명 목숨 앗아간 921 대지진, 부실공사 인재
미국의소리(VOA) 등 외신을 종합하면 대만은 921 대지진 때 극심한 인명피해를 입은 것은 '인재'라는 결론 아래 규제 개선에 주력해왔다. 당시 사망자 2400명 외에도 1만1000명이 부상을 입고 건물 5만채가 파손됐다. 이중 8500채가 완전히 무너졌고 다른 6200채도 붕괴된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였다고 한다.

대만 중앙연구원 린쭝홍 사회소 학자에 따르면 건축물 피해가 컸던 것은 하중을 받는 하부 구조물 설계가 대부분 엉망이었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1980년부터 1990년대 초까지 부동산 열풍이 불면서 빠른 분양을 위한 부실공사가 만연했고, 정치인과 지방 관리들이 뒷돈을 받고 이를 묵인했다고 한다.



부실공사와 비리가 밝혀지자 비판 여론이 들끓었고, 이는 국민당 독주 체제가 무너지는 계기가 됐다. 921 대지진 후 2000년 3월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은 처음으로 승리를 거뒀다.

이후 대만은 지진, 태풍 등 자연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법률개정 작업에 착수했다.

대만 내진설계의 상징 타이베이101
대만 타이베이101 빌딩 내 내진설계(제진) 장치 '댐퍼보이' /사진=머니투데이DB대만 타이베이101 빌딩 내 내진설계(제진) 장치 '댐퍼보이' /사진=머니투데이DB
먼저 재해 대처 매뉴얼인 '기초 실행계획'부터 바꿨다. 원론적이고 추상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국가부터 지방자치단체까지 구체적이고 세세한 대응 계획을 수립하게 했다. 또 지역사회가 먼저 나서 자연재해 대응책을 고민하도록 교육했다.


건축법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내진 설계를 강화하는 한편 내진 설계가 힘든 건축물에 대해서는 완충 시설을 추가하게 했다. 대표사례가 대만 고층 랜드마크 타이베이101이다.

타이베이101은 509m 높이의 초고층 빌딩으로 2004년 완공 당시 세계에서 제일 높은 마천루였다. 2002년 3월31일 대만 북부 지역에서 7.1 규모의 강진이 발생했을 때 인근 저층 건물들이 쓰러진 반면 타이베이101은 공사 중이었음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타이베이101의 내진성이 강한 것은 660톤짜리 추 '댐퍼보이' 때문이다. 지진이 발생하면 댐퍼보이가 건물과 반대방향으로 흔들려 건물이 쓰러지지 않게 균형을 잡아준다.

그 사이 지진 피해가 없던 것은 아니다. 2016년 대만 남부 타이난에서 규모 6.4의 지진이 발생, 웨이관진룽 빌딩이 무너져 이 빌딩에서만 110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또 2018년 화롄 지진으로 10층짜리 마샬호텔이 붕괴해 호텔 직원 2명이 사망하고 200여명이 부상을 당했다.

"1층부터 무너지더라" 저층부 안전관리 강화
대만 국가실험연구원(NARL)은 웨이관진롱, 마샬호텔 모두 1층부터 무너졌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보통 1층은 열린 공간으로 활용되는 탓에 벽과 기둥이 적어 내진성이 떨어진다는 것. 2022년 새 규정을 도입, 저층부를 중심으로 안전진단을 진행하고 필요한 경우 보강공사를 받게 했다. 또 지진 피해가 특히 우려되는 지역에 설계 규제를 별도로 도입했다. 이 방식대로 설계할 경우 건축물 내진성을 20~30% 향상되는 반면 건축비용 상승분은 5%에 불과하다고 NARL은 밝혔다.

또 NARL은 지진으로 지하수와 토양모래층이 뒤섞이는 액상화 현상을 집중 연구, 건축현장에서 액상화 위험을 특정할 수 있도록 안전기준을 개발했다. NARL은 "신축 건물이 대규모 지진에도 붕괴하지 않고, 중간 규모 지진에서 수리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며 소규모 지진은 손상 없이 견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했다.

AFP통신은 "강력한 건축 규제와 재난 안전의식 덕분에 대규모 참사는 면한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보도 당시 집계된 사망자는 1명이었으나, 한국 시간 오후 4시 기준 7명까지 늘었다. 부상자는 700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이번 지진이 화롄에서 남동쪽으로 25km 떨어진 해역이 진원지였던 데다 오전 8시께 발생해 주민의 신속한 대피가 가능했다는 점도 피해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 영향 준 것으로 보인다. 921대지진은 진원지가 섬 내부였던 데다 새벽에 발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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