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알리에 쿠팡과 이마트 직원이 간다면

머니투데이 유엄식 기자 2024.04.0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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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 20년 차 부장이 희망퇴직을 신청해 6억원 받고, 바로 알리로 이직하면 최상의 시나리오 아닐까요"

최근 유통업계 관계자들과 만나면 심심치 않게 듣는 얘기다. 농담으로 흘려듣다가도 정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국내 대형마트 1위 이마트가 창사 31년 만에 전사적 희망퇴직을 진행 중이고, 11번가를 비롯한 국내 e커머스 업체도 경영난에 빠져 직원을 줄이는 상황인데 지난해부터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한 중국 e커머스 업체 알리익스프레스(이하 알리)가 경력 직원들을 대거 영입 중이어서다.

국내 법인을 키우려는 알리는 우수 인재에 대한 욕심이 큰 것 같다. 조직을 최대한 신속하게 정비하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업계 최고 수준의 연봉에 최소 5년 근속 보장' 조건을 제안받은 업계 관계자의 '경험담'도 전해 들었다. 최대 경쟁사인 쿠팡 직원들을 영입 대상으로 물색한다는 소식도 접했다. 임원급 인사는 레이 장 알리 코리아 대표가 직접 면담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이미 11번가를 비롯한 국내 e커머스 업체에서 상품기획(MD), 마케팅, 기획, 홍보 등 다방면에서 경력을 다져온 직원들이 알리로 직장을 옮겼다. 실적 압박으로 허리띠를 졸라맨 국내 유통사를 떠나 앞으로 투자를 늘릴 회사를 선택한 것이다.

미국에서 아마존을 위협하는 중국 e커머스 테무(Temu)도 알리에 이어 국내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향후 유통업계 인재 영입전이 가열될 전망이다.



이런 현실을 가장 걱정스럽게 지켜보는 업체는 이마트를 제치고 유통업계 1위로 올라선 쿠팡이다. 쿠팡도 사업 초기에 기존 유통사의 견제를 받았고, '로켓배송' 시스템을 전국으로 확대하기 위해 적자를 견디며 물류망에 10여년간 6조원대 자금을 투자했다. 이에 더해 3년간 3조원대 자금을 추가로 투입할 계획이다. 영업이익이 줄거나, 손실이 나면 사업을 정리한 오프라인 유통사와 차별화한 행보다.

쿠팡도 우수 인재 영입에 공을 들여왔다. 동종 업계뿐 아니라 제조, 물류 관련 대기업에서 경력을 쌓은 임직원들이 조직에 참여하며 현재의 성장 시스템 구축에 기여했다. 이제 막 이익을 내기 시작한 쿠팡이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그들의 성공 방식을 벤치마킹하려는 알리와 테무가 가장 두려운 존재 일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알리를 비롯한 중국 e커머스 업체가 과거 2010년대 중국 게임사처럼 국내 개발 인력을 영입해서 1~2년간 노하우만 빼먹고 해고하는 '토사구팽' 행태를 취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런 예상에도 불구하고 국내 유통사 핵심 인력들이 자리를 지킬 것인지는 의문이다. 애국심을 들이대는 식으로 중국계 기업으로의 이직을 막을 수 없는 노릇이다. 알리는 현재 운용 중인 해외직구를 넘어 국내에 직접 물류센터를 구축하고, 한국 기업이 만든 우수 제품을 해외에서 팔겠다는 '큰 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쿠팡, 이마트 등 유통 경쟁사 핵심 인력이 가세하면 파급력은 더 커진다. 국내 유통 생태계의 유통자급률이 낮아질 때 발생할 문제들을 챙겨봐야 할 시점이다.
[우보세]알리에 쿠팡과 이마트 직원이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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