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안암로에 위치한 고려대학교 전경. /사진=머니투데이DB, 고려대학교 제공
당시 경향신문 보도에 따르면 시체는 그 전 날 전선 공사를 위해 강의실 천장에 올라간 전기공에 의해 발견됐다. 수많은 학생이 강의를 듣는 지성의 공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남성의 시체가 오랜 기간 방치돼 있던 것이다.
학교 당국은 허씨 시신이 너무 오래 방치됐던 탓에 뼈만 남았다고 알렸다. 고인은 복장을 단정하게 입고 하늘을 향해 곱게 누워있는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는 낡은 영어책을 베개로 삼았고, 옆에는 숨지기 직전 복용한 것으로 보이는 빈 약병이 있었다.
명문대 한복판에서 발견된 시체, 고인의 정체가 11년 전 실종됐던 사람이었다는 점 등 여러 이유로 이 사건은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겼다. 주요 언론에 뉴스가 타전되고 관련 기사를 접한 한 젊은 소설가는 당시 시대상을 버무려 단편 소설을 써냈다.
이렇게 발표된 소설이 시인 겸 소설가 오탁번(1943~2023)이 써낸 1973년작 '굴뚝과 천장'이었다. 굴뚝과 천장은 4·19 혁명부터 5·16 군사 정변까지의 대학가 모습, 역사 속 지성인과 학생들이 겪는 좌절 등을 이야기로 녹여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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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작가 역시 허씨와 마찬가지 고려대 출신으로 모교 강단에 섰다. 고려대 출신으로 모교의 강단에 섰던 오탁번 교수는 2018년 문화일보 기고문을 통해 과거 굴뚝과 천장을 집필하던 때의 '나'를 회상했다. 그는 기고문에서 "나도 (대학교) 재학 시절엔 학교를 끝까지 다녀야 하나, 당장 때려치워야 하나를 놓고 고민했다"며 "매 학기 학생운동의 격랑이 몰아치던 시기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바로 그 시간에도 실종된 그(허모씨)는 (강의실) 다락방 천장에 죽은 채 누워 있었던 것"이라며 "발단, 전개, 갈등, 위기를 거쳐 대단원에 이르는 (작품의) 서사 구조 속에 작품의 주인공인 그와 작가인 나의 인생관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 오탁번 교수는 2010년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