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만 있는 게 아니야…'AI시대' 삼성의 또 다른 무기

머니투데이 오진영 기자 2024.04.01 0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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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김다나 디자인기자/사진 = 김다나 디자인기자


삼성전자 반도체(DS) 사업부가 인공지능(AI) 열풍의 핵심인 HBM(고대역폭메모리) 시장에서 '투트랙'(병진노선) 전략을 펼친다. 조직을 개편해 기술력 확보에 나서면서 HBM이 필요 없는 제품 개발에도 적극 뛰어든다. HBM 경쟁이 지나치게 심화됐고, 매출 비중이 아직 높지 않다는 판단이다. 엔비디아의 독점 구조를 해소하겠다는 계산도 깔렸다.

31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메모리사업부에 HBM 개발 전담팀을 새로 구성했다. 규모는 확정되지 않았으나, DS 사업부 내 주요 인력들을 끌어모은 조직이다. 삼성전자는 2019년 HBM 전담 조직을 없앴다가, 최근 고객사의 수요가 급증하자 다시 팀을 만들었다. 경계현 DS부문장(사장)은 "HBM 전담팀을 꾸미고, 품질과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없앴던 조직의 부활은 삼성전자 내에서 잘 일어나지 않는 일이다. 기술 진보가 빠른 반도체·가전 업종을 영위하는 삼성전자의 특성상 기술 수준이 뒤처지거나, 시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을 때 과감하게 조직을 해산하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AI 수요가 폭증하기 전 시장에서는 HBM이 기판 크기를 키운 GDDR 메모리와 성능 격차가 크지 않아, 수익성이 낮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고 말했다.

삼성전자의 HBM 전담팀 재구성은 과거의 오판을 씻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SK하이닉스에 내준 HBM 1위를 되찾아 오면서 점유율을 뒤집겠다는 목표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글로벌 HBM 시장에서 SK하이닉스의 점유율은 50% 이상이지만, 삼성전자도 35~40%를 차지하고 있다. 전담팀이 현존 HBM보다 한 세대 진보한 HBM3E, HBM4 제품에서 성과를 내면 반전을 노릴 수 있다.



업계의 시선은 삼성전자가 HBM 투자 확대와 동시에 HBM이 필요없는 제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는 것에 쏠린다. 최근 삼성전자는 자체 개발한 AI 가속기 '마하 1'의 개발 사실을 공개하며 '마하 2'의 개발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AI의 학습과 추론에 사용되는 특수 목적의 하드웨어인 AI 가속기는 HBM이 꼭 필요한 제품이지만, 삼성의 '마하 1'은 HBM 없이도 사용이 가능하다.

아직까지는 삼성전자의 AI 가속기 성능이 입증되지 않았고, 네이버 외에 뚜렷한 공급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면 엔비디아 제품을 대체할 수 있다는 데에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엔비디아는 현재 AI 가속기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다만 AI 가속기의 품질 검증에만 성공하면 봇물 터지듯 수주가 잇따를 수 있다는 장밋빛 전망도 존재한다. 지나친 엔비디아 의존도를 우려해 대안을 찾는 빅테크 기업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삼성전자의 '투트랙'은 한 자릿수인 HBM의 낮은 매출 비중, 심화되는 경쟁과 증가하는 AI 가속기 수요 등을 복합적으로 고려한 전략이다. 투자 확대로 HBM 출하량·점유율을 늘리는 동시에 AI 가속기 경쟁력을 끌어올려 미래를 준비하겠다는 의도다. 삼성전자의 중장기 로드맵(추진 계획)에 따르면 올해 HBM 출하량 목표치는 지난해 대비 최대 2.9배 증가했으며, 2028년에는 23.1배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HBM 시장점유율을 확대하면서 '마하'의 대형 고객사를 조기 확보할 수 있다면 국내외의 경쟁사보다 빠르게 관련 매출을 확대하고, 점유율을 높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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