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 3월 31일 요도호 납치 사건 당시 뉴스 영상 /사진=유튜브 채널 'KTV 아카이브' 캡처](https://thumb.mt.co.kr/06/2024/03/2024032913593014737_1.jpg/dims/optimize/)
괴한들은 항공기관사를 인질로 하여 기장과 부기장에게 북한의 수도인 평양으로 향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요도호가 도착한 곳은 평양이 아닌 김포였다.
![/사진=MBC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방송화면 캡처](https://thumb.mt.co.kr/06/2024/03/2024032913593014737_2.jpg/dims/optimize/)
이때 기장은 기지를 발휘해 "이 비행기는 국내선이라 북한까지 갈 연료가 없다"고 범인들을 설득했다. 요도호는 연료 보충을 위해 후쿠오카 공항으로 향했고, 일본 경찰이 자위대를 보내 활주로를 막는 등 공작을 펼쳤으나 오히려 범인들을 자극시키는 불상사를 초래했다.
다행히 기장의 설득으로 범인들은 여성, 노인, 어린이, 환자를 포함한 승객 23명을 풀어줬다. 그리고 비행기는 다시 평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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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평양" 남하 유도→'평양 도착 환영' 위장 공작
![1970년 3월 31일 요도호 납치 사건 당시 뉴스 영상 /사진=유튜브 채널 'KTV 아카이브' 캡처](https://thumb.mt.co.kr/06/2024/03/2024032913593014737_3.jpg/dims/optimize/)
요도호가 김포 국제공항에 착륙했을 때, 소수의 대한민국 국군은 조선인민군 병사의 복장을 하고 '평양 도착 환영'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내거는 등 위장 공작을 실시했다.
그러나 범인들 중 한 명이 영어로 "여기가 서울이냐"고 물어봤을 때, 군인 한 명이 "그렇다"고 답하면서 김포라는 사실이 발각됐다. 다만 이와 관련해서는 범인들이 김일성 사진을 가져올 것을 요구해 간파당했다는 등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후 일본 정부 측에서 급파된 인사들과 한국 정부, 납치범들간 사흘에 걸친 교섭 끝에 탑승객 전원을 석방하는 대신 당시 운수성 정무 차관이었던 야마무라 신지로를 인질로 잡고 북한으로 넘어가기로 합의했다.
결국 도착한 평양…이후의 삶은?
![요도호 납치사건 범인들 /사진=일본 hatenablog 캡처](https://thumb.mt.co.kr/06/2024/03/2024032913593014737_4.jpg/dims/optimize/)
북한은 범인들의 망명을 받아들였고, 그로부터 이틀 후 요도호는 승무원들과 야마무라 운수성 정무차관을 태우고 귀환했다.
범인들은 북한에 정착하면서 주체사상을 받아들였다. 납치에 가담한 것으로 알려진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일본과 태국 등에 활동하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요도호 납치사건 범인들의 SNS 계정 /사진=트위터 캡처](https://thumb.mt.co.kr/06/2024/03/2024032913593014737_5.jpg/dims/optimize/)
일본 공안당국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북한에는 범인 9명 중 4명이 생존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계정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일본 관광객 유치를 위한 북한 홍보 영상에도 출연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에서의 삶이 행복하다는 것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위해 북한 측 감시 속에 인터넷을 사용하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