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연표 휴머노믹스 "물고기 잡는 법 알려주는 사람 경제학"

머니투데이 신재은 기자 2024.04.03 0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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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인사이드]지표 너머 인문학적 성찰과 방법론 결합, ‘기회소득’에 방점

▲지난해 5월 30일 경기도청 1층에서 진행된 AI예술창작단 전시 개막식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도▲지난해 5월 30일 경기도청 1층에서 진행된 AI예술창작단 전시 개막식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제공=경기도


‘왜 경제학에 충실할수록 빈부격차가 심해지는가’

인간을 중심에 둔 경제학인 ‘휴머노믹스(humanomics)’는 이 의문에서 시작됐다. 세계적인 진보학자 페터 슈피겔은 기존의 경제학은 빈부격차를 늘려 서민이 부자를 따라잡을 수 없고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이 될 수 없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그는 저서 <휴머노믹스>(다산북스, 2009)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대안으로 사람 중심 경제학을 제시한다.

개인이 속한 사회에 맞는 교육, 자립을 돕는 교육을 통한 개인의 성장을 강조한다. 모두가 ‘자기 삶의 경영인’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 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면 경제도 함께 발전한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휴머노믹스가 지방자치단체의 정책과 만났다.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지난 2월 16일 열린 경기도의회 임시회 제1차 본회의에서 “2024년 경기도정의 핵심 전략은 휴머노믹스”라고 밝혔다.



그는 “사람 중심의 경제 전략으로 성장 잠재력을 끌어올리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통해 양극화된 계층과 세대에 기회사다리를 놓겠다”고 다짐했다. 사회 안에서 인간의 성장을 지원하는 도정을 펼치겠다는 것이다. 김동연표 휴머노믹스는 ‘시혜’가 아닌 ‘잠재력에 대한 투자’에 방점을 찍었다. 물고기를 주는 것이 아닌 잡는 법을 알려주는 것처럼 시혜적 보상보다는 개인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한다. 고른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장애인, 예술인, 청년…사람에 대한 투자, 사회적 가치를 인정하는 정책
▲지난해 7월 20일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예술인 기회소득 최초 수혜자 7명이 예술인 기회소득 간담회를 가졌다./사진제공=경기도▲지난해 7월 20일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예술인 기회소득 최초 수혜자 7명이 예술인 기회소득 간담회를 가졌다./사진제공=경기도
김 지사가 핵심 사업으로 추진하는 ‘기회소득’ 사업과도 연결된다. 김 지사는 “우리 사회에서 가치를 창출하지만, 보상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일정 기간 소득 보전의 기회를 드리는 것이 기회소득”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소득 보전 부분에 있어서 무조건적인 지원은 없다. 어떠한 방법으로든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을 진행했을 때 그에 대한 보상을 도가 책임지는 개념이다.



도는 지난해 예술인 7000여 명에게 ‘예술인 기회소득’을 지급했다. 도 관계자는 “기회소득을 제공해 창의적인 예술활동을 지원하고 그 결과로 나오는 사회적 가치를 도민과 함께 나누는 것이 정책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도는 올해 사업 규모를 확대한다. 예산이 지난해 132억원에서 207억여원으로 증가했으며, 참여 시·군도 28개로 늘었다. 중위소득의 120% 이하인 예술가 1만3000여 명이 연간 150만원의 기회소득을 받을 예정이다.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 활동 목표를 달성했을 때 지원하는 ‘장애인 기회소득’도 있다. 자기주도적 운동목표 수립과 주도적 가치 활동을 지원한다는 의미가 있다. 도 관계자는 “정도가 심한 장애인이 활동을 통해 활동 범위가 넓어진다든지 할 때 의료비나 돌봄비용 등이 감소하면 그 역시 사회적 가치 창출로 보는 것”이라며 “장애인 가치활동에 대한 최초의 인정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는 올해 장애인 기회소득 지원 대상을 7000명에서 1만 명으로 확대하고, 지원금도 하반기부터 월 5만원에서 10만원을 증액할 예정이다.


청년의 자립을 위한 ‘기회’ 패키지 사업도 추진했다. 대표적인 사업은 ‘경기 청년 사다리 프로그램’이다. 청년들에게 ‘더 고른 기회’를 주기 위한 민선 8기 김 지사의 대표 청년정책으로, 해외 대학 연수 경험을 지원해 사회적 격차 해소와 다양한 진로 개척 기회를 제공한다.

어학수업, 액티비티, 팀 프로젝트 등의 체험을 통해 얻은 성장 사례를 공유하고 진로 컨설팅을 진행한다. 과정에 필요한 연수비와 항공료, 숙박비, 식비 등은 도에서 부담한다. 올해는 도 직접사업과 시·군 지원사업을 병행하고 기존 4개 대학 200명에서 올해 11개 대학 330명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미리 해보는 꿈 도전기, ‘경기청년 갭이어 프로그램’도 있다. 관심 분야에 스스로 기획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성과를 공유하는 프로그램이다. 디자인, 교육, IT, 영화·드라마, 음식, 방송 등 분야도 다양하다. 진로 탐색을 위한 프로젝트, 분야별 멘토링, 역량강화 교육 등이 제공된다.

올해는 선발 인원을 800명으로 늘리고, 도전을 이어갈 수 있는 추가 지원금을 제공한다. 사업 종료 후 1년간 경기도 공공기관-참여자 간 취·창업 프로그램도 연계할 예정이다.

소외되는 계층 없도록 AI 기술 적극 활용
▲AI를 활용한 '노인말벗 서비스' 안내포스터/사진제공=경기도▲AI를 활용한 '노인말벗 서비스' 안내포스터/사진제공=경기도
도는 4차 산업혁명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으로 기술을 활용코자 한다. 가장 핵심은 인공지능(AI) 기술이다. 김 지사는 지난 3월 13일 ‘인공지능(AI), 기회와 도전’을 주제로 열린 기회혁신포럼 ‘경기도를 바꾸는 시간’ 행사가 끝난 뒤 사회관계망 서비스(SNS)를 통해 “경기도가 세상의 변화, 그 선두에 있기를 바란다”며 “AI의 중심 경기도가 대한민국의 경쟁력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도는 ‘경기지피티(GPT)’ 추진계획을 수립하며 4차 산업혁명시대 로드맵을 그렸다. 지난해 3월 ‘경기지피티(GPT) 추진 전담 조직’을 구성하고,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주목받는 GPT를 도정에 접목할 계획을 발표했다.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예술교육을 추진하는 ‘지피티 도민창작단’, AI 기반의 경기도 콜센터 운영 등이 포함됐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경기도 AI 창작단’이다. 발달장애인에게 AI를 활용한 작품 창작 방법을 교육해 창작 의지를 마음껏 펼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지적장애와 자폐성이 있는 발달장애인 15명을 모집해 AI를 활용한 예술활동 교육을 진행했다. AI 프로그램에 명령어(프롬프트)를 입력해 밑그림을 그리고, 현업작가와 미대 학생들이 발달장애인과 소통하며 재창작하는 방식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소외된 계층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AI를 활용하는 사회를 실현하는 게 AI 창작단의 궁극적 목표다. 김 지사는 경기도청 1층에서 작품 전시를 둘러보며 “예술 활동은 우리의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도민 삶의 질을 높이는데, 거기에 첨단기술인 AI까지 합쳐졌고, 그 주체자들이 발달장애인이라 대단히 기쁘고 보람차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생성형 AI를 활용해 독거노인의 안부를 확인하는 ‘노인말벗 서비스’도 AI 활용 우수 사례로 꼽힌다. AI 상담원이 정해진 시간에 안부 전화를 걸어 자연스러운 대화를 나누고, 위기 상황을 파악하는 시스템이다.

65세 이상의 도내 거주 독거 노인이 대상이며, 주 1회 정해진 시간에 약 3분간 안부전화를 건다. 통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담당 직원이 직접 전화를 걸고, 이 역시 연결되지 않으면 복지 담당자가 직접 거주지를 방문한다. 또 통화 시 ‘살기 어렵다’, ‘외롭다’와 같은 어려움이나 위기 징후가 감지되면 전화상담을 진행하고, 필요시 경기도 긴급복지 핫라인으로 연결된다.

도는 지난해 6월부터 1061명의 노인을 대상으로 인공지능을 활용한 말벗서비스를 시작해 이상징후 31건을 발견했다. 올해는 5000명으로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다. 도 관계자는 “폭염이나 한파 등 기상상황에 영향을 받지 않고 노인분들의 어려움을 파악할 수 있다”며 “도내 어르신들의 고립 문제와 위기 예방에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장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스타트업, AI 산업 지원
▲지난해 10월 12일 판교 글로벌 비즈센터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비전선포 및 상생협약식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소감말씀 및 비전선포를 하는 모습/사진제공=경기도 ▲지난해 10월 12일 판교 글로벌 비즈센터에서 열린 벤처스타트업 비전선포 및 상생협약식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소감말씀 및 비전선포를 하는 모습/사진제공=경기도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부터 사업화까지 성공할 수 있는 혁신창업생태계를 조성하겠다.”

도는 개인의 성장이 산업의 성장으로 확대될 수 있는 인프라 구축에 나선다. 뛰어난 아이디어를 가진 개인을 지원해 자립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김 지사는 지난 1월 31일 진행된 제3판교사업계획설명회에서 “스타트업 천국의 심장을 이미 있는 제1·2판교 테크노밸리와 함께 제3판교 테크노밸리에서 만들겠다”고 말했다.

제3판교 테크노밸리는 ‘성남금토 공공주택지구’ 내의 7만3000㎡ 부지에 연면적 50만㎡의 규모로 사업비 1조7000억원을 들여 조성하는 민·관 통합지식산업센터다.

김 지사는 제3판교 테크노밸리에서 ‘판교+20 벤처스타트업’ 프로젝트를 실현코자 한다. 판교를 중심으로 3000여 개의 신규 벤처스타트업 육성이 목표다. 이를 위해 도내 스타트업 간 다양한 교류 및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대·중견 기업과 벤처스타트업 간 상생 프로그램도 추진한다. 글로벌 스타트업 투자유치 박람회를 개최하고, 해외전시회와 IR 등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원할 예정이다.

북수원테크노밸리 조성을 통해 국내 최고의 AI지식산업벨트를 구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김 지사는 지난 3월 26일 북수원테크노밸리 개발구상 기자회견에서 “북수원테크노밸리에 AI에 기반을 둔 IT기업과 반도체, 모빌리티, 바이오·헬스케어 연구소 등 미래 산업을 유치할 계획이다. 앵커기업을 중심으로 벤처스타트업, 혁신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과천·인덕원테크노밸리~북수원테크노밸리~광교테크노밸리~용인테크노밸리~판교테크노밸리를 연결해 국내 최고의 AI지식산업벨트를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이곳에는 일자리와 여가서비스, 주거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경기 기회타운’도 조성된다.

도를 넘어 세계로…글로벌 협력 강화
▲지난 2월 27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에릭 테오(Eric Teo) 주한 싱가포르 대사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사진제공=경기도▲지난 2월 27일 경기도청 집무실에서 김동연 경기도지사와 에릭 테오(Eric Teo) 주한 싱가포르 대사가 만나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사진제공=경기도
휴머노믹스 기반 정책의 글로벌 협력을 위해 국제교류도 이어간다. 김 지사는 지난 1월 15일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에 참석, 90여 명의 유니콘 기업 대표자가 참여하는 '이노베이터 커뮤니티' 간담회에 참가했다. 이 자리에서 ‘챗GPT의 아버지’ 샘 알트만 오픈AI CEO와 만나 도와의 협력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또 아랍에미리트(UAE) 경제부 장관과 디지털 분야 기술 협력 방안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도 관계자는 “김 지사가 압둘라 빈 투크 알 마리 UAE 경제부 장관을 만나 경기도-UAE 기업간 교류, 판교테크노밸리 활성화 등 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실무차원의 핫라인 구축에 협의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27일에는 에릭 테오 싱가포르 대사와 만나 도와 싱가포르 간 AI 산업, 새싹기업(스타트업), 청년교류 등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김 지사는 다보스포럼 참석 당시 조세핀 테오 싱가포르 통신정보부 장관과 인공지능·데이터 분야 정책협력 의견을 교환한 바 있다. 또 같은 날 타르만 샨무가라트남 싱가포르 대통령을 만나 도의 청년사다리사업 등 청년 교류에 관한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경기도정의 지향점은 ‘사람’이다. 숫자나 지표로만 말하는 경제학이 아닌 지표 너머의 사람을 본다. 2010년 실천경제학자 바트 윌슨도 휴머노믹스를 제안하며 “경제학에 인문학적 성찰과 방법론을 결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의 주체인 인간의 행동과 그 심리를 이해하자는 뜻이다.

김 지사는 과거 경제부총리 취임식에서 “우리가 언제 한번 실직(失職)의 공포를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장사하는 분들의 어려움이나 직원들 월급 줄 것을 걱정하는 기업인의 애로를 경험해본 적이 있습니까?”라고 직원들에게 물음을 던졌다.

정책이 가지고 오는 수치의 변화뿐만 아니라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강조한 것이다. 민선 8기 경기도의 캐치프레이즈인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가 더욱 와닿는 이유다. 그 중심에 김 지사의 휴머노믹스가 있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4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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