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리 "정치색 밝힌 적 없다…난 피해자" [인터뷰]

머니투데이 김나라 기자 ize 기자 2024.03.28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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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1980'서 시대의 아픔 겪는 소시민 역 열연

/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사진=제이앤씨미디어그룹


"난 정치색 프레임의 피해자."

배우 김규리(44)가 자신을 둘러싼 정치적 구설수에 억울함을 호소, 활동에 대한 뜨거운 열의를 드러냈다.

김규리는 지난 27일 개봉한 영화 '1980'(감독 강승용)으로 무려 9년 만에 스크린 주연으로서 관객들을 만났다. '1980'은 1980년 5월 17일 광주 한 가운데, 전남도청 뒷골목에서 중국 음식점을 개업한 철수네 가족 3대와 이웃들의 삶의 터전에 불어닥친 폭풍 같은 이야기를 그린다. 1979년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난 지 5개월 후, '서울의 봄'이 오지 못한 여파가 소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어떻게 망가지게 되는지 담아냈다.



극 중 김규리는 철수 엄마 역할로 열연했다. 철수 엄마는 만삭의 임산부임에도 모종의 이유로 도망 중인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해 가족들을 세심히 돌보는 인물. 언제나 환한 미소를 잃지 않는 맏며느리, 집안의 활력소이자 동네의 궂은일 해결사다. 이에 김규리는 당찬 매력은 물론 절절한 감정 표현과 사투리 연기까지 소화하며 색다른 얼굴을 선보였다.

최근 개봉을 앞두고 아이즈(IZE)와 만난 김규리는 '1980'에 대해 "우리 영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하긴 했지만, 정치 영화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으며 "정치적 이런 것보다 우리에게 있었던 가슴 아픈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걸 이야기한다"라고 메시지를 강조했다.



그는 "실제로 시사회 때 당시 (전남도청 앞 계엄군의 집단 발포) 생존자가 참석하기도 했다. 어떤 한 분이 조용히 오시더니 머뭇머뭇하며 그때 살아돌아오신 분이라고 하시는데, 입에서 단어가 안 나오더라. 두 손을 잡아드리고 '고생하셨다, 감사하다'라는 말씀을 드렸다. 이분들께 위로를 드리고 힘을 드리고 싶었다"라고 진정성을 엿보게 했다.

김규리는 "'1980' 시나리오를 정보 하나도 없이 읽었는데, 제가 느낀 건 놀라움이었다. 그게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라면서 "우는 신이 정말 많았다. 근데 눈물을 애써 만들지 않아도, 그 상황을 생각하면 바로 눈물이 흘렀다. 마지막 장면에선 심하게 오열해서 탈진할 정도였다. 그랬을 거라고만 생각해도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감정신은 힘든 게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나니 어쩌면 누군가가 나를 위해 울어준다면 힘이 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날을 겪은 분들께도 이런 영화가 되었으면 좋겠고, 서로 위로를 주고 힘을 받는 연대감을 형성하는 영화로 다가갔으면 한다. 혼자라고 생각할 때가 제일 두렵고 무섭지 않나"라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김규리 "정치색 밝힌 적 없다…난 피해자" [인터뷰]

하지만 김규리의 작품을 향한 진심이 무색하게, 여전히 대중에겐 '정치색을 띤 배우'라는 선입견이 따라붙는 게 사실. 김규리는 과거 정치적 소신 발언을 서슴지 않고, 최근엔 SNS에 대표적인 진보 성향 인사 김어준과 찍은 인증샷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김규리는 "프레임 안에 넣고 그 사람을 재단하고 쉽게 '쟤는 저런 애야' 설명해버리지만, 규정한다 한들 그렇게 되진 않는다. 우리네 인생이 그리 단순하지 않지 않나. 나도 내 인생이 어떤지 모르는데. 저는 여러 삶을 선택하고 걸어가고 있다. 쉽게 어떻게 보여지든 간에 저는 배우라는 직업을 선택해 어릴 때부터 걸어왔다. '이것도 내 숙명인가' 받아들이고 그냥 걸어가고 있는 거다. 말만 앞서기보다 저는 저대로 마음이 동하면 가고, 지금처럼 계속 살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한다"라고 덤덤하게 얘기했다.

이내 그는 "사실 (정치색 프레임 때문에) 피해를 받은 건 있다. 밖에서 막 뭔가를 만들어내서 절 이용하는 게 힘들었다. 제가 정치색을 드러낸 게 아니라 당한 것이고, 저는 프레임의 피해자다. 김의성 선배님을 생각하시면 될 거 같다. 김의성 선배님이 작품을 할 때 '저 배우 이래서 출연한 걸 거야' 생각하고 보시냐. 그렇지 않지 않나. 선배님은 많이 활동하고 계시지만, 저는 활동이 적을 때도 있고. 아무래도 제가 활동을 더 열심히 해야 이런 말들이 안 나올 거 같다. 그 이야기는 이제 그만하고 싶다. 얼마나 이슈가 없으면 그럴까 싶은데,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김규리 "정치색 밝힌 적 없다…난 피해자" [인터뷰]
한때 뜻하지 않은 공백기를 보내기도 했지만 김규리는 "아주 쉰 건 아니다"라면서 "배우라는 직업이 어떻게 보면 푸릇푸릇, 신선한 에너지를 전달하는 게 무척 중요한 일인데 또 한편으론 늙어가는 연륜, 경력이 쌓여야 나올 수 있는 연기들이 있다. 배우는 화려한 만큼 그림자도 짙다. 그 '총 집합체'가 선배님들인데, 선배님들의 연기를 보면 제 인생에 힘든 일도 경험치로 쌓여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라"라고 존경심을 드러냈다.

힘든 시기를 겪으며 초연한 자세를 갖춘 김규리. 그는 "어릴 때는 이거 했으면 좋겠고, 저거 했으면 싶고, 이런 사람이 되고 싶고 꿈도 많았다. 근데 살아보니 어느 때는 내가 원하는 길로 가지만 대부분은 계획하지 않은 길로 많이 가게 되더라. 그게 결코 항상 내 인생에 나쁜 것만은 아닌 게, '나한테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싶었던 게 언젠가 뒤돌아 봤을 때는 '나한테 도움이 되네?' 싶더라. 그래서 인생을 놓고 봤을 때 무의미한 일이 하나도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든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만 진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하는 일이 뭐냐면, 인생에 나만 생각했을 땐 단맛만 있길 바라는데 그러면 당뇨에 걸린다는 거다"라고 속깊은 이야기를 꺼냈다.

이어 그는 "인생이 건강해지려면 모진 풍파를 겪고 단단해져야 한다. 상처가 나으면 굳은살이 더 단단해지기에 그렇게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거, 그게 인생인 거 같다. 저뿐만 아닌 모든 사람 인생이 다 그럴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을 보면 애잔하고 안쓰럽다. 한 분 한 분 다 자신한테 주어진 삶을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내가 날 항상 응원하듯이 사람들을 응원해 줘야겠다 생각한다. 저를 응원해 주는 분들께도 정말 고마운 마음이다"라고 따뜻한 위로를 건넸다.

김규리 "정치색 밝힌 적 없다…난 피해자" [인터뷰]
지난 2021년 3월 갑작스럽게 종영해 의문을 자아냈던 tbs FM 라디오 '김규리의 퐁당퐁당'. 김규리는 이와 관련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기도 했다. 그는 "2년간 진행을 맡아왔는데 갑작스럽게 하차 통보를 받았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진 않다. '퐁당퐁당'으로 상처를 위로받고, 소극적이라 움츠려들려 했던 제가 기력도 많이 회복했다. '퐁족'(청취자 애칭) 가족들이 저를 칭찬해 주고 힘을 주고 친구처럼 대해줘서. 저도 엄청 애착이 많아서 2년간 단 하루도 다른 분께 DJ를 맡기지 않고 제가 다 했다. 대본도 직접 썼다. 어떤 때는 청취자분이 딸기 농장을 한다 하면 직접 구입해 선물을 돌리고 했다. 그 정도로 애정이 강했는데, 일주일 전에 통보를 받아 너무 속상했다. 이별할 시간이 일주일뿐이라, 어떻게 헤어져야 할지 몰라서 그게 좀 너무 가슴이 아팠다. 허탈해서 정말 펑펑 울었었다"라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김규리는 "이래서 조심하고, 저래서 조심한다고 되는 게 아닌 거 같다. 나는 가만히 있는데. 그렇지만 뭔가 좋은 일을 하려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한다.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있고 가고자 하는 길이 있는데 그 길을 가려면 수많은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다. 결국 중요한 건 가고자 하는 목표를 향해 가는 거다. 그림으로 우리의 전통을 세계적으로 알리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지금 당장은 제가 힘이 하나도 없어서 못하지만, 힘을 기르기 위해 작가로서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우리나라 전통 장인들을 외국에 모시고 가시는 게 목표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김규리 "정치색 밝힌 적 없다…난 피해자" [인터뷰]
오는 4월 전시회 개최를 앞두며 바쁘게 달려가고 있는 김규리는 "제 정체성은 배우이기에, 작품이 들어오면 최선을 다할 거다. 저뿐만 아니라 아마 요즘 모든 배우가 저랑 똑같은 고민을 하실 거다. 들어오는 작품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 그렇지만 새로운 작품을 만나기 전까지 잘 쉬면서 지내려 한다. 그런 면에 있어선 저한테는 그림이라는 게 있기 때문에 조급함이 들진 않는다"라며 여유를 잃지 않았다.

끝으로 김규리는 "시원하게 깨부수는 액션을 해보고 싶다. 제가 예전에 댄스스포츠 예능 '댄싱 위드 더 스타'에서 몸 쓰는걸(준우승) 보여드리지 않았나. 태권도도 열심히 배웠던 시기가 있었다. (마)동석 오빠가 다니라고 해서 오빠의 복싱장에도 등록했다. 회원제라 딱 50명만 받는다고 하더라. 오빠도 제가 액션을 되게 하고 싶어 하는 걸 아신다. 아직은 전시회 준비로 못 가고 있는데 마치면 다니려 한다. 거기에 제가 그린 호랑이 그림도 걸려 있다(웃음). 저는 궁금하면 우선 가서 배우는 편이다. 근성 있게 하면 (액션물에서) 절 불러주시지 않을까 싶다"라며 열정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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